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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술로 살던 사람이 갑자기 술을 끊었더니

by taeshik.kim 2018. 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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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북송(北宋)시대를 살다간 광세(曠世)의 박학이요, 절세(絶世)의 천재로 심괄(沈括·1031~1095)이란 괴짜가 있었으니, 왕안석(王安石)이란 사람이 일으킨 일대 국가개혁 프로젝트인 변법(變法) 운동에 적극적으로 동조하고 참여한 그가 저술한 문헌으로 지금도 전하면서 널리 읽히고 있는 명저로 《몽계필담》(夢溪筆談)이 있을 지니라.

 

내 오늘은 이 땅의 주당(酒黨)들에게 이 책 한 구절에 수록된 어떤 고주망태 일화를 소개하고자 하노라. 본론에 들어가기 전, 내 주위로 아래에서 말하는 주당과 비슷한 부류가 많으니, 폭탄주에 찌들어 사는 원시인들이 아직 내가 다니는 회사에도 더러 포진하고 있을 지니,

 

이 자리에서 내가 선배가 대부분인 그들에게 이제부턴 인생 똑바로 살라고 훈계는 더 이상 못하겠노라. 대신 나는 그들 주당, 나아가 때로는 고주망태를 방불하는 그들 선배에게 이렇게 외치노라.

 

부디 부디 계속 계속 줄곧 줄곧 맨날 맨말

술만 퍼 마시옵소서.

 

《몽계필담》은 전 26권으로 구성돼 있을 지니, 권(卷)이란 요즘 출판계 용어를 빌리건대 챕터(chapter), or 장章이라 하는 것이니 이 책 卷 第九는 제목이 인사(人事. 개중 하나다)이니, 인사야 말할 나위 없이 사람들에 얽힌 일화를 말할 지니라.

 

일생이 소개된 사람 중 하나가 석만경(石曼卿)이라, 이에 실린 그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을 지니, 이 땅의 주당들이여 이 석만경의 일생이 주는 교훈을 부디 부디 새기면서 오늘 밤도 폭탄주와 함께 할 지니라.

 

석만경(石曼卿)이란 사람은 폭음하기를 즐겼다. 그래서 포의(布衣)인 유잠(劉潛)이란 사람과는 친구가 되었다. 일찍이 석만경이 해주(海州)란 곳에서 통판(通判)을 하고 있었는데 유잠이 그를 찾아왔다. 만경이 석언(石堰)이란 곳에서 그를 맞이하고는 유잠과 함께 고주망태가 되도록 퍼 마셨다.

 

그러다가 밤이 되도록 마시다가 한밤중이 되어 술이 바닥나려 하자 배에 실려 있는 한 말 남짓한 식초(醋)를 발견하고는 이내 그것을 가져다가 술에다가 부어 마셨다. 다음날이 되자 술과 식초까지 모조리 바닥이 났다.

 

석만경은 손님과 어울릴 때마다 통음(痛?)을 하고는 머리를 산발하고 신발을 벗어 놓고는 목가(木枷)를 뒤집어쓰고 앉아버린곤 했는데 그것을 일러 ‘수인’(囚?)이라 했다. 또 나뭇가지 위에서 마시기도 했는데 그것을 일러 ‘소음’(巢?)이라 했다. 또한 곡물 뿌리로 그 자신을 묶어버리고는 머리르 빼어서 술을 마시고 다 마신 뒤에는 다시 목을 목을 넣곤 했는데 이를 ‘별음’(鱉?)이라 했다. 술 쳐 마시고 함부로 놀아대는 꼴이 이와 같았다.

 

또 어떤 때는 구석에 숨었다가 나와서 마시고는 다시 그 구석에 숨곤 했는데 이것은 ‘문슬암’이라 했다.

 

석만경은 하루라도 취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

 

인종(仁宗) 황제가 그의 재주를 몹시도 아껴서 일찍이 대신을 불러 말하기를 석만경에게 술을 끊도록 했다. 연년(延年)이 이 말을 듣고는 술을 마시지 않았는데 그러다가 결국 병을 얻어 죽고 말았다. 

 

石曼卿喜豪飲,與布衣劉潛為友。嘗通判海州,劉潛來訪之,曼卿迎之於石闥堰,與潛劇飲。中夜酒欲竭,顧船中有醋鬥余,乃傾入酒中並飲之。至明日,酒醋俱盡。每與客痛飲,露發跣足,着械而坐。謂之「囚飲 」。飲于木杪,謂之「巢飲」。以束之 ,引首出飲,復就束,謂之「鱉飲 」。其狂縱大率如此。廨後為一庵,常臥其間,名之日「捫虱庵 」。未嘗一日不醉。仁宗愛其才,嘗對輔臣言,欲其戒酒,延年聞之。因不飲,遂成疾而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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