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백제 마지막 왕. 창업주인 아버지 견훤을 폐위 유폐하고는 즉위해 나라를 다스렸지만, 고려에 패해 포로가 되고 나라가 없어졌다.
삼국사기 열전 :
삼국유사 권2 기이(紀異) 제2 후백제(後百濟) 견훤(甄萱) : 또 <고기(古記)>에는 이렇게 말했다. 옛날에 부자 한 사람이 있어 모양이 몹시 단정했다. 딸이 아버지께 말하기를 "밤마다 자줏빛 옷을 입은 남자가 침실에 와서 관계하곤 갑니다"라고 하자 아버지는 "너는 긴 실을 바늘에 꿰어 그 남자 옷에 꽂아 두어라"라고 하니 그 말대로 했다. 날이 밝아 그 실이 간 곳을 찾아보니 북쪽 담 밑에 있는 큰 지렁이 허리에 꽂혀 있다. 이때부터 태기가 있어 사내아이를 낳으니 나이 15세가 되자 스스로 견훤(甄萱)이라 일컬었다. 경복(景福) 원년(元年) 임자(壬子.892)에 이르러 왕이라 일컫고 완산군(完山郡)에 도읍을 정했다. 나라를 다스린지 43년 청태(淸泰) 원년(元年) 갑오(甲午. 934)에 견훤의 세 아들, 즉, 신검(神劒)·룡검(龍劒)·량검(良劒)이 즉위해 천복(天福) 원년(元年) 병신(丙申.936)에 고려 군사와 일선군(一善郡)에서 싸워서 패하니 후백제(後百濟)는 아주 없어졌다....병신(丙申; 936)년 정월에 견훤은 그 아들에게 말했다. "내가 신라말(新羅末)에 후백제를 세운 지 여러 해가 되어 군사는 북쪽의 고려 군사보다 배나 되는데도 오히려 이기지 못하니 필경 하늘이 고려를 위하여 가수(假手)하는 것 같다. 어찌 북쪽 고려 왕에게 귀순해서 생명을 보전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그러나 그 아들 신검(神劍)·룡검(龍劍)·량검(良劍) 세 사람은 모두 응하지 않았다.
삼국유사 권제1 왕력 : 견휜(甄萱)이 임자년에 광주(光州)에 도읍했다. 을미년에 훤(萱)의 아들 신검(神劒)이 아버지를 쫓아내고 스스로 즉위했다. 이해에 나라가 없어졌다. 임자년 이후 이때까지 44년만에 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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