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연구 인생에서 두 번의 혜택을 엘 고어로 상징되는 정치적 운동에 의해 받았다.
물론 필자만 받은 것이 아니라, 필자와 같은 세대,
그리고 그 후 세대까지도 지금 그 영향력 하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요즘 세대는 믿지 못하겠지만, 필자가 대학원생활을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논문을 검색 할 방법이 많지 않았다.
의학도서관에 가면 index medicus라는 두꺼운 백과사전 만한 책이 한쪽 서가를 채우고 있었고,
이것을 사전 찾듯이 뒤져 논문을 찾아내야 했다.
처음 이 index가 나온 것이 1879년이었다고 하니,
의학연구를 하는 이들에게 일종의 나침반 역할을 하고 있었던 셈이다.
필자가 졸업한 대학에도 의학도서관에 가면
이 index medicus가 책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런데 필자가 대학원 생활을 시작했을 무렵에는 이미 인덱스 메디쿠스는 도서관을 장식하고만 있을 뿐,
더이상 사용하지 않는 책이었다.
그 이유는 메드라인(medline)이라는 검색 시스템 때문이었다.
도서관에는 메드라인이라는 검색 시스템이 컴퓨터에 CD의 형태로 물려 있었는데
이것이 초기형의 메드라인이다.
요즘은 이 메드라인이 인터넷에 떠 있어서 자유로이 검색되지만
초기 형태는 바로 이렇게 컴퓨터에 CD가 연결되어 있어 검색하는 형태였다.
조선왕조실록의 초기 검색 버전을 기억하는지 모르곘다.
조선왕조실록이 지금은 온라인에 떠 있지만
최초의 버전은 CD에 담겨 나왔던 것으로 안다.
바로 그런 모양으로 메드라인이 도서관에 설치되어 있었고,
이것을 교수님들이 필요하신 논문 검색을 적어주시면,
필자는 도서관에 달려가 메드라인 검색을 하면,
거기서 해당논문의 초록이 쭉 나온다.
그 초록을 컴퓨터로 출력 (당시에는 도트프린터였다)하여 다시 그 결과를 가져다 드리면
이것이것 논문을 표시해오면,
다시 그 표시된 논문을 찾아 의학도서관에 가서 해당 학술지를 찾아
도서관에 부속된 복사실에서 복사하여 논문을 가져다 드리는 것.
이렇게 하다 보면 정말 조교생활 하루해가 금방 지나갔다.

문제는 필자가 대학원 때만 해도
이 메드라인 시스템은 아주 비싸게 판매되는 유료 버전이었다.
그래서 우리나라 대학 도서관에 이 메드라인 씨디가 비치된 학교가 몇 없었다.
도서관에 아무리 학술지를 비치해놔도 찾는 논문이 어딨는지를 알아야 찾아서 복사를 해서 보던지 할 것 아닌가?
그 검색 시스템이 있는 대학이 국내에 몇 없었다는 소리다.
이 메드라인 시스템은 본문은 커녕 초록만 제공하는 버전이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에서 원하는 논문을 찾아내는 시간을 혁신적으로 줄일 수 있었던 것이다.
당연히 이 시스템은 아주 아주 비쌌고,
아무나 쓸 수 없는 버전이었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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