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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양웅揚雄의 방언方言이 말하는 조선 방언

by taeshik.kim 2024. 5.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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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웅 방언. 정식 이름이 유헌사자절대어석별국방언輶軒使者絶代語釋別國方言이다.

 

양웅揚雄(기원전 53~기원후 18)은 전한前漢 말기~왕망 시대를 대표하는 최대 부賦 작가라, 백년 전 이 분야 우뚝한 존재로 사마상여가 있었다면, 전한 말기에는 그를 첫손에 꼽는다.

다만, 그 부화浮華 과장하는 문학이 싫다며 훗날에는 그것을 버렸거니와, 그러면서 그 대안으로 이른바 전문 학술 연구에 천착해 철학 분야 우뚝한 서적으로, 심오한 철학원리를 탐구한 태현경太玄經이란 저술을 남기는가 하면, 방언 연구에도 주력해 그 분야 연구를 집대성한 방언方言이라는 불후한 성과물을 제출한다.

정식 이름이 유헌사자절대어석별국방언輶軒使者絶代語釋別國方言인 이 방언은 간단히 말해 당시 지역별 방언 사전이다. 한자를 모국어 혹은 표준문자로 채택한 각 지역에서 드러나는 독특한 말들이 무엇이며, 그에 해당하는 표준어(당시는 서안과 낙양 중심이다)로 해설한다. 

이 방언에는 뜻밖에도 조선朝鮮에서 통용하는 방언들을 많이 채록해 놓았다. 이 경우 이 조선이 어떤 실체인지가 관심 거리가 되거니와, 위선은 일반적인 견해에 따라 낙랑군을 중심으로 하는 이른바 한사군 지역이라 해둔다. 

조선후기 역사가 한치윤韓致奫(1765~1814)이 이 방언에서 보이는 조선과 관련한 방언만 가려 뽑아 그의 해동역사海東繹史 중 제28권 풍속지風俗志에다 채록해 놓았다. 요새야 검색어 한 방으로 저와 같은 작업이 간단히 해결되지만, 그 험난한 작업을 일일이 수작업으로 했으니, 그 피땀나는 노력이 가상하기만 하다. 


해동역사 제28권 / 풍속지風俗志
방언方言

○ 조선朝鮮과 열수洌水의 사이에서는 -조선은 지금의 낙랑군樂浪郡이고, 열수는 요동遼東에 있다.- 어린아이가 울음을 그치지 않는 것을 훤咺이라고 한다. 눈동자[瞳之子]를 우盱라고 하고, 혹은 양揚이라고 한다.

○ 나무의 잔가지[木細枝]를 책策이라고 한다.

○ 솜털[毳] -덮는 것이다.- 을 엽수葉輸라고도 한다. 빨리 가는 것[疾]을 요선搖扇이라고 한다.

○ 부화[化]하는 것을 열涅이라 하고, 혹은 화譁라고 한다. 닭이 알을 품고서 부화하지 않다가 처음으로 부화하는 때를 열涅이라고 하는 것이다.

○ 즙汁을 짐斟이라고 한다.

○ 신발 중에 거친 것[履麄]을 앙각䩕角이라 한다.

○ 부鍑를 혹 전錪이라고 하기도 하고, 병鉼이라고 하기도 한다.

○ 목이 긴 병[罃]을 장瓺이라고 한다.

○ 삽臿을 토𣂁라고 한다.

○ 말뚝[橛]을 단椴이라고도 한다.

○ 가는 것[行]을 시徥라고도 한다.

○ 떨어진 것[離]을 국掬이라고 한다.

○ 고기를 말리거나, 다른 사람의 사사로운 일을 들추어내거나, 소나 양의 내장을 긁어내는 것을 모두 박膊이라고 한다.

○  꾸짖는 모든 말을 위영魏盈이라고 한다.

○ 번민스러운 것[煩懣]을 한만漢漫이라고 한다.

○ 어지러운 것[顚眴]을 진현䀼眩이라고 한다.

○ 모든 세워 두는 것[置立]을 수식樹植이라고 한다.

○ 건너가는 것[過度]을 섭제涉濟라 한다.

○ 복록福祿을 불전祓戩이라 한다.

○ 닭이 품는 것[伏鷄]을 포抱라고 한다.

○ 참새 새끼[爵子]와 병아리를 모두 각𪆪이라고 한다.

○ 시구尸鳩를 복비鶝䲹라고 하고, 또 역𪂉이라고도 한다.

○ 거미[鼅鼄]를 독여蝳蜍라고 한다. 《이상 모두 양웅揚雄의 방언方言》
 
○ 북연北燕과 조선의 사이에서는 초목草木이 사람을 찌르는 것을 책茦이라고 하고, 혹은 장壯이라고 한다.

○ 약을 마시거나 약을 붙였다가 중독되는 것을 로癆라고 한다.

○ 침상 앞에 가로지르는 나무[杠]를 수樹라고 한다.

○ 비貔를 비𧳏라고 한다.

○ 돼지[豬]를 가豭라고 한다. 《이상 모두 상동》


살펴보건대, 《사군지四郡志》에 이르기를, “북연北燕과 조선朝鮮의 사이는 계문薊門 이동에서 패수浿水에 이르기까지의 지역을 말하고, 조선(朝鮮)과 열수(洌水)의 사이는 패수 이남에서 한수(漢水)에 이르기까지의 지역을 말한다.” 하였다. 한漢나라 때 2군郡에 대해서는, 뛰어난 계책이 있으면서 기이한 것을 좋아하였던 자운(子雲 양웅揚雄의 자字)과 같은 자가 있어서 기술記述하였다. 그러나 그가 기술한 여러 조항들은 지금에 와서 고찰해 볼 때에 어느 하나도 비슷한 것이 없다. 삼국三國 시대 이후로는 연대가 점차 멀어지면서 어음語音도 그에 따라 변한 탓에 대조해 볼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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