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말기 아간(阿干)으로, 금관성을 장악하고는 성주장군이 된 잡간(匝干) 충지(忠至)의 핵심 참모 중 한 명이었던 듯하다. 충지의 위력을 빌려 김수로 사당을 함부로 강탈해 멋대로 제사를 지내다가 사당 대들보가 무너져 깔려 죽었다. 그의 아들 준필(俊必) 또한 비슷한 행패를 부리다가 갑자기 병이 나서 죽었다 한다.
삼국유사 제2권 기이(紀異) 제2 가락국기(駕洛國記) : 신라 말년에 충지(忠至) 잡간(匝干)이란 이가 있었는데 높은 금관성(金官城)을 쳐서 빼앗아 성주장군(城主將軍)이 되었다. 이에 영규(英規) 아간(阿干)이 장군의 위엄을 빌어 묘향(廟享)을 빼앗아 함부로 제사를 지내더니, 단오(端午)를 맞아 고사(告祠)하는데 공연히 대들보가 부러져 깔려죽었다. 이에 장군(將軍)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다행히 전세(前世)의 인연으로 해서 외람되이 성왕(聖王)이 계시던 국성(國城)에 제사를 지내게 되었으니 마땅히 나는 그 영정(影幀)을 그려 모시고 향(香)과 등(燈)을 바쳐 신하된 은혜를 갚아야겠다.” 이에 3척(尺) 되는 교견(鮫絹)에 진영(眞影)을 그려 벽 위에 모시고 아침저녁으로 촛불을 켜 놓고 공손히 받들더니, 겨우 3일 만에 진영의 두 눈에서 피눈물이 흘러 땅 위에 괴어 거의 한 말이나 되었다. 장군이 몹시 두려워하여 그 진영을 모시고 사당으로 나가서 불태워 없애고 곧 수로왕의 친자손 규림(圭林)을 불러 말했다. “어제는 상서롭지 못한 일이 있었는데 어찌해서 이런 일들이 거듭 생기는 것일까? 이는 필시 사당의 위령(威靈)이 내가 진영을 그려서 모시는 것을 불손(不遜)하게 여겨 크게 노하신 것인가 보다. 영규(英規)가 이미 죽었으므로 나는 몹시 두려워하여, 화상도 이미 불살라 버렸으니 반드시 신(神)의 베임을 받을 것이다. 그대는 왕의 진손(眞孫)이니 전에 하던 대로 제사를 받드는 것이 옳겠다.” 규림이 대를 이어 제사를 지내 오다가 나이 88세에 죽으니 그 아들 간원경(間元卿)이 계속해 제사를 지내는데 단오날 알묘제(謁廟祭) 때 영규의 아들 준필(俊必)이 또 발광(發狂)하여, 사당으로 와서 간원(間元)이 차려 놓은 제물을 치우고 자기가 제물을 차려 제사를 지내는데 삼헌(三獻)이 끝나지 못해서 갑자기 병이 생겨서 집에 돌아가서 죽었다. 옛 사람의 말에 이런 것이 있다. “음사(淫祀)는 복(福)이 없을 뿐 아니라 도리어 재앙을 받는다.” 먼저는 영규가 있고 이번에는 준필이 있으니 이들 부자(父子)를 두고 한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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