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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ING HISTORY

오직 박창화朴昌和만 주목한 치술鵄述

by taeshik.kim 2020. 10.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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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도 하도 여러번 얘기해서 지겨울 수 있지만, 또 얘기하련다.

《삼국유사》 왕력편 신라 제18대 실성마립간實聖麻立干 조에는 "(실성)왕은 즉 치술鵄述의 아버지다[王卽鵄述之父]"라는 구절이 있다.

도대체 이 구절이 왜 나왔는지 《화랑세기》 출현 이전에는 그 누구도 알 수 없었다.


《상장돈장》에 등장하는 치술



"치술은 아버지가 실성왕이다?"

So what?

느닷없는 구절이기에 이를 설명할 도리가 어디에도 없었다.

첫째, 치술이 누구인지 알 수가 없었다.
둘째, 치술 아버지가 실성왕인 게 어쩌라고?

한데 박창화가 필사했다는 《화랑세기》에는 이와 관련한 명확한 언급이 보인다.

《화랑세기》에 의하면, 치술은 실성왕 딸로서 남편이 바로 제상이었다. 《삼국사기》에는 박제상, 《삼국유사》에서는 김제상이라고 기록된 바로 그 제상이었다.

이런 《화랑세기》를 보고 놀라 다시 《삼국유사》를 봤다.


《상장돈장》에 등장하는 치술



그 기이(紀異) 제1 '나물왕과 김제상[奈勿王金堤上]' 이야기 마지막 대목이다.

애초에 제상이 왜국으로 떠날 때 부인이 이 소식을 듣고 쫓아왔으나 따라잡지 못하자, 망덕사望德寺 문 남쪽 모래사장 위에 이르러서는 드러누워 길게 울부짖었다. 그래서 그 모래를 장사長沙라고 한다. 친척 두 사람이 부축해서 돌아가려고 하였는데, 부인이 다리를 뻗고 앉아 일어서지 않았다. 그래서 그곳을 벌지지伐知旨라고 한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부인은 남편을 사모하는 마음을 참을 수 없어서 세 딸을 데리고 치술령鵄述嶺 위에 올라가 왜국을 바라보고 통곡하다가 죽었는데, 곧 치술신모鵄述神母가 되었다. 지금도 사당이 남아 있다.

[初堤上之發去也 夫人聞之追不及 及至望德寺門南沙上 放臥長號 因名其沙 曰長沙 親戚二人 扶腋將還 夫人舒脚 坐不起 名其地 曰伐知旨 久後夫人不勝其慕 率三娘子上鵄述嶺 望倭國痛哭而終 仍爲鵄述神母 今祠堂存焉]


《상장돈장》에 등장하는 치술



김제상 마누라가 치술령에 올라 통곡하다 죽어 치술신모가 되었다?????????

김제상 마누라 이름이 바로 치술이라는 명명백백한 증거 아니고 무엇이랴?

같은 《삼국유사》 왕력편에서 "실성왕이 곧 치술의 아버지"라는 언급은 바로 그 본문의 '나물왕과 김제상' 조 이야기에 대한 주석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걸 어느 누구도 몰랐다.
오직 《화랑세기》 필사자 박창화만이 알고 있었던 것이다.

(2017. 10.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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