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도 세상 많이 속속들이 다 안다고는 자신할 수 없다.
하지만 필자가 돌아다녀본 바로는 세상에 정말 희안한 정치체가 수두룩 박박하다는 생각을 했다.
엄청난 규모의 대도시를 남겨 그런 유적이 한국이나 일본에 있었다면 대제국 수도라고 부를 만했던
인더스 문명 도시에는 주변에 왕릉이 없다. 지배층도 없다.
딱 비슷한 규모의 집들, 비슷한 모양의 무덤만 보인다.
공산당이 아니면 어떻게 이렇게 사나 싶을 정도의 그런 도시가 무려 5천년 전에 있었다.
그리스를 보자.
우리 가야 소국 정도 될까 말까 한 폴리스가 반도와 소아시아에 가득했다.
이 폴리스는 전제국가로 가는 징검다리였을까.
폴리스는 자신들이 마케도니아나 페르시아 같은 전제국가보다 열등했을 것이라 생각했을까.
아니,
폴리스를 놔두면 계속 발전해서 마케도니아나 페르시아가 됐을까.
이건 그렇게 발전단계로 정의할 것이 아니라 전혀 별개의 정치체가 아닐까.
남미-.
버젓한 대제국을 이룬 잉카제국에 금속기가 없다.
그런데 쌓아놓은 벽의 돌을 보면 면도날도 안 들어갈 정도이다.
기가 막혀 팔짝 뛸 판이다.
이 세상에는 정말 너무나 다양한 정치체가 많고
이런 정치체와 사회는 일원적인 발전 도상에 여기저기 배치할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라
전혀 별개의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한국사를 보면,
가야 소국과 신라는 별개의 그 무엇이었지
통합을 이루지 못한 가야 소국이 신라보다 열등하다는 이야기는
애초에 성립 불가능한 이야기며 전방후원분의 거대함에 그 일본 사회가
한반도 국가보다 우월한 단계였다고도 절대 이야기 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이 세상에는 정말 많은 정치체가 있고 다양한 사회가 있으며
이런 사회와 정치체는 주변 자연환경과 역사적 상황에 적응하기 위해 저마다 다른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었다.
역사의 발전단계나 일원론적 세계관으로 구슬 꿰듯 꿸 수 있는 그런 존재가 아니라는 말이다.
애초에 이런 세계사의 다양함을 직접 목도한 서구의 역사가들은 오히려 다양한 문명의 존재를 설정하였는데,
자기 눈으로 세상을 보지도 못한 한국의 학자들은
오히려 세계사를 일원적으로 파악하고 이 사회가 저 사회보다 열등하네,
통일 국가가 소국단계보다 우월하네,
이런 평을 남발하고 있었다는 말이다.
세상을 직접 목도하면 이런 난폭한 세계사의 일반화는 절대로 시도하지 못한다.
그 다양성과 변칙성에 질려,
역사에 대해 겸허해질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그런 다양성과 변칙성을 목도하지 못한 사람들 만이
용감무쌍하게 세계사의 일반화와 규칙화를 자기 맘대로 시도한다.
이것이 지금까지 한국사가 세계사를 바라보는 방식이 아니었다고 장담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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