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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의 연구

조선시대 성리철학의 회고

by 신동훈 識 2026. 4.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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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암 송시열

 
필자가 쓰는 글 중에 조선시대 성리철학 논변을 너무 폄하하는것 아닌가 하는 지적이 있을수도 있겠다.

필자도 이런 입장을 처음부터 견지한 것은 아니었고, 

더우기 성리철학 자체가 대단한 철학체계로 완성도와 수준이 세계사적으로도 매우 높고, 

동양철학이 도달한 최고 정점이라는데는 이의가 없다.

다만 이런 성리철학을 향유했다는 것과 학술적으로 성리철학을 개발하고 확립했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 아니겠나. 

필자는 조선시대 성리철학 논변 전반을 위에서 부터 아래까지 한번 훑어 내려온 바 있는데, 

소위 이기론에 관해서는 조선 벽두의 입학도설부터 시작해서, 

조선후기의 이른바 호락논쟁, 인물성 동이논쟁에 이르기까지

논쟁의 시말이 전부 송나라 유학자, 그 중에서도 특히 북송대에 이미 이야기가 다 끝난 이야기들을

한국땅에서 재연한데 불과하다는 이야기를 장담할 수 있다. 

전부 모두 북송대 논변에서 다 나온 이야기고, 

여기에는 조선의 유학자들이 털끝 하나 보탠바 없다. 

이 점을 무시하고 성리철학, 이기론의 문구에만 집착하여 들어가다 보니, 

조선의 유학자들의 철학 논변이 자발적으로, 내재적으로 이루어진 것 같은 착각을 의도했건 아니건 불러일으키게 되는데, 

솔직히 조선의 유학자들의 성리철학 자체에 "##학"이라고 이름 붙일 만한 이론을 스스로 개발하여 확립한 이가 있는가 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고 장담할 수 있다. 

(심지어는 다산경학이라고 이름 붙인 다산의 경학 조차 창의적 부분이 크게 결핍되어 있다는 것은 
유학서를 조금만 본 사람들이라면 금방 파악할 수 있다)

물론 중국에서 다 끝난 논쟁이라고 해서 조선에서 수백년 후에 재현되지 말라는 법 있냐, 라고 한다면 할말은 없는데, 

이를 역사서에서 찾아보면 알수 있는 것과, 

대대적으로 현창하는 일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 아니겠는가. 

조선시대 성리철학의 논변사는 우리 역사에 담담히 사실로 기록되어야 할 부분이지, 

후손들이 돈과 시간을 써가며 현창해야 할 부분은 전혀 아니라고 생각한다. 

 
*** [편집자주] ***

 
같은 맥락에서 삼봉 정도전의 불씨잡변을 거론해야 한다. 성리학적 관점에서의 불교 비판 시원을 열었다 하는 이 불씨잡변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그 이전 중국에서 나온 각종 불교 비판론과 옹호론을 짜깁기한 데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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