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앞에서도 한 번 쓴 것 같지만,
우리나라 조선후기 역사는
의도적이건 아니건 간에 이주갑 인상되어 기술된 부분이 있다.
이주갑인상론이란 이른바 일본서기의 초기 기록이 원래 시점보다 이주갑 (120년)이 끌어올려져 기록되어 있다는
일본고대사의 유명한 통설에서 나온 이야기로,
이주갑 인상된 개별 사건이 시대가 내려오면서 결국 다른 나라 역사와 맞아 들어가는 부분이 나오기 시작하니,
120년의 역사가 도대체 왜 끌어올려졌는지에 대한 해석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다.
이와 비슷한 행태가 조선후기사에서도 행해졌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우리나라 16, 17세기에 벌어졌다고 기록된 여러 사건,
특히 자본주의 맹아론 시장경제론에 대한 이야기들은
이 시대의 이야기를 18, 19세기에 얼렁뚱땅 묶어서 조선후기의 변화로 기술을 해 놓으니 착시를 일으켜 그렇지,
실제로는 화폐경제, 시장경제, 자본주의 맹아 등등의 이야기들은
잘해야 18세기 중반 이후, 19세기 들어와서의 이야기들이지
16, 17세기까지 이를 끌어 올리는 것은 천만부당한 일이라는 것은
이 시대에 쓰여진 일기들을 보면 자명하다.
이미 이 시대 연구자들께서는 이 사실을 이미 다들 달 알고 있다고 필자는 보는데,
그럼에도 이런 얼렁뚱땅한 이주갑인상이 아직도 교과서 기술에는 그대로 남아 있다.
어차피 조선시대 후기사는 이른바 식민사관 극복이 대명제이니 좋은 게 좋은 거라고,
그래서 모호하게 기술하는 것인지 뭔지는 모르겠는데,
17세기가 되면 화폐경제와 자본주의 맹아가 완연하다고 한 기술을 믿고
18세기 초반 호적을 봤을 때의 그 당혹감은 말할 수 없을 정도다.
역사에서 식민사학의 극복보다 더 중요한 것은 왜곡과 분식이 없는 팩트에 입각한 기술을 해야 하는것 아니겠는가?
뻥과 과장으로 점철한 역사로 식민사학을 극복해 봐야, 원전을 대면하면 모두 격파되는 그런 식민사학 극복,
그런 것이 도대체 무슨 소용이 있는 것인지 다시 한 번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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