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후기가 되면,
소위 전통의 양반 집안에서는 족보나 호적이 불만 스럽기 짝이 없었을 것이다.
족보에는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정말 양반이라 할 만한 집안만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서얼, 중인, 향리에 심지어는 평민들까지 모두 수록되었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시간이 흐르며 서자라고 박아 놨던 족보 기록까지
서얼들의 반대로 전부 삭제되기 시작하니
족보만 들여다 봐서는 도대체 구별이 안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또 한가지 호적도 마찬가지로,
양반이라고 하면 결국 벼슬하지 않으면 직역이 유학, 업유, 업무 등인데
그 중 하층 양반들에게 주어진 업유 업무야 그렇다고 쳐도
유학까지도 서얼이나 중인들이 차지하기 시작하여
그 숫자가 급증하기 시작하니 호적을 들여다 봐서는 내가 얼마나 잘 난 놈이고 우리 집이 얼마나 대단한지 보여줄수가 없었다는 말이다.
이렇게 해서 각광을 받기 시작한 것이 바로 청금록, 향안이다.
쉽게 말해서 족보에 이름 들어가고 호적에 유학이라 적혔다고 해서 양반이 아니라,
청금록 향안에 이름 석자 적혀 있어야 진짜 양반이라는 이야기는 이렇게 해서 나오게 되었다.
그런데 이 향안도 안전한 도피처가 아니라서,
노상추일기를 보면 서자집안에서 향안까지 차지하고 들어가는 이야기가 나온다.
족보도 마찬가지로 어느 집안 족보 해봐야 온갖 신분의 사람들이 다 들어오니
그 중에서도 정말 뼈대 있는 집안의 계보만 따로 추려 족보를 만드니 그것이 "만성보" 혹은 "만가보"이다.
만성보 혹은 만가보라 해서 이 것이 모든 집안 족보 다 모아놨다는 소리가 아니다.
수록된 집안에서도 정말 잘나가는 집안의 직계 족보만 추려 실었고,
거기서 조금만 엇가지로 나가거나 후손이 시원찮으면 여지 없이 잘라 빼버렸으니,
만성보 만가보는 실제로는 부계 족보의 모습을 띤, 조선전기 족보처럼 사회적 신분을 보여주기 위한 족보라 할 수 있다.
이 청금록이나 향안이 소위 뼈대 있는 사족들 사이에 각광을 받게 된 이유를 그래서 우리는 곰곰히 따져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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