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족보 이야기

초기 족보와 표리를 이루는 또 하나의 계보

by 신동훈 識 2026. 5. 5.
반응형

선원록璿源錄, 1681, 61.7x41.6cm, 국립고궁박물관 ⓒ 국립고궁박물관

 
안동권씨 성화보, 문화유씨 가정보와 표리를 이루는 또 하나의 계보가 있으니, 

바로 전주이씨 선원계보이다 (여기서는 편의상 선원계보기략을 예로 들어 설명한다). 

왕실 종친의 족보인 이 전주이씨 선원계보는 몇 가지 점에서 특이한 부분이 있는 바, 

첫째는 왕의 서자를 악착 같이 다 가려내어 정확하게 썼다는 점이다. 

이미 말한 바와 같이 사족들의 족보도 아예 서자를 제외하거나 

서자를 끼워주되 서자라고 족보에 써 버리는 경우가 있었지만, 

그 정도가 선원계보만큼 엄정하지 않다. 

굳이 왕의 서자를 감출 필요가 없는 것이, 

선원계보에 들어가 있는 동안에는 서자라고 해도, 

나중에 대수가 내려가 선원계보에서 나가게 될 때, 어엿한 사족으로 활동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조선시대 태종의 자손 중에, 어떤 집안은 

태종부터 아래로 무려 3대가 서자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었는데, 

이 집안도 사족으로 독립후 문과 급제자가 대대로 나와 최정상급 사족으로 활동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었다. 

만약 이것이 일반 사족이었다면

3대가 서자가 아니라 당대에만 서자라도 

그 아래 후손들은 줄줄이 대를 이어 금고되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왕실 종친과 일반 사족의 가장 큰 차이점이기도 하다. 

(물론 전주이씨도 종친에서 떨어져 나가게 되면 일반 사족처럼 서자들은 금고되었다)

따라서 선원계보에 들어가 있는 한 서자를 감출 굳이 감출 필요도 없고, 

감춘다고 될 일도 아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다음으로 선원계보를 보면 왕실 종친과 결혼하는 경우, 

그 상대 집안의 계보를 꽤 자세히 기록을 남겨 두었다는 점이다. 

대개 사족들의 족보는 성화보, 가정보 등 족보에서는 사위쪽 계보를 자세히 남기지만, 

후기 들어오면서 딸이 결혼한 사위의 이름 정도만 족보에 남기는 데 반해, 

선원계보에서는 그 자손 이름까지 알뜰히 남기고 있다. 

물론 성화보, 가정보처럼 그 외손 아래로 아래로 끝도 없이 이어지는 방식은 아니긴 한데, 

일반 사족들 족보보다는 출가한 딸들의 상대집안 정보가 선원계보에는 꽤 남아 있다. 

여기서 하고 싶은 이야기는 뭐냐, 

여말선초에는 잘나가는 사족들이 자기들끼리 혼맥을 이중 삼중으로 형성하며 

뭉쳐 있었다는 것은 이미 말한 바와 같은데, 

이들은 다시 왕실 종친들과도 혼맥을 형성하여 

위로는 왕실부터 아래로는 사족에 이르기까지 거대한 혼인에 의한 혈족 집단을 이루고 있었다는 것이 특징이다. 

여기서 주의할 것은 여말 선초에서 고려가 망할 때까지는 

이 왕실종친의 피가 개성왕씨에서 흘러들어오지만, 

조선 건국 이후부터는 그 역할을 개성왕씨 대신 전주이씨 종친이 하게 되어, 

조선시대 전기에는 앞에서 이야기 한 것처럼 서울을 중심으로 근교에 살던 유력 사족들이 

자기들끼리 혼맥을 형성하고 이 안에 종친까지 끼어들어 전체가 한덩어리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는 것이다. 

결론이 뭐냐-.

조선 전기 선원계보에 들어가 있던 사람들은 

이리저리 하다 보면 성화보와 가정보에도 연결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왕실 족보와 유력 사족들의 족보가 서로 겹치기 시작한다는 점이 바로, 
조선전기 (영남 사림의 진출 이전) 지배계층의 실체가 되겠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