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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사진이다.
서울역사박물관이 막 개막한 망우동 특별전 낙이망우樂以忘憂 전에 망우리묘지와 관련한 인물 고하 송진우를 소개하는 코너에 출연했다.
저때는 이미 송설당이 사재를 전부 희사해 송설학원을 만들고 고향 경북 김천에 김천고보를 개교(1931)한 뒤다.
조선총독부와 쟁투를 벌여 마침내 학교를 개교한 송설당이다.
남성 중심으로 기술한 역사를 배신하는 한 장면이다.
개교식인가 초대된 몽양은 김천고보를 영남의 오아시스라 칭했다.
고하 송진우. 그 역시 몽양과 더불어 한 시대를 풍미하고 해방정국에서는 몽양과 마찬가지로 테러에 암살당한 비운의 인물이다.
그들을 좌우협시로 거느린 송설당을 어찌 자리매김할 것인가?
단순히 나이가 제일 많은 연장자라서? 아님 그냥 돈 많은 여성 갑부라서?
아니다.
그는 선각자였고 생평 모은 재산을 교육을 위해 희사한 한국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 중 한 명이다.
여성 남성을 떠나서 그는 위인이다.
그런 이름이 사초에 남지 않는다는 게 말이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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