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史論時論

팔레스타인, 이스라엘, 유네스코, 그리고 세계유산

by 한량 taeshik.kim 2018. 1. 21.

팔레스타인이 독립국가로 인정받는 곳은 몇 되지 않은 줄로 알며, 개중 하나가 유네스코다. 팔레스타인이라면 내 세대에는 야세르 아라파트(Yasser Arafat, 1929~2004)와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W. Said, 1935~2003)로 상징한다. 또 에드워드 사이드가 열렬한 팔레스타인 내셔널리스트라는 사실도 팔레스타인을 친숙하게 만들지 않나 한다. 



팔레스타인해방기구 지도자 야세르 아라파트



아라파트와 사이드를 양날개로 장착한 팔레스타인이 거의 유일하게 독립국가로 인정받는 국제무대가 유네스코인 까닭에 이들은 외교 총력을 유네스코로 쏟을 수밖에 없다. 그런 팔레스타인이 이번에 그들로서는 세 번째로 세계유산에 등재한 곳이 헤브론 유적(Hebron/Al-Khalil Old Town)이다. 


팔레스타인은 유네스코 가입 이듬해인 2012년 예수 탄생지 베틀레헴(Birthplace of Jesus: Church of the Nativity and the Pilgrimage Route, Bethlehem)을 사상 처음으로 세계유산에 등재한 데 이어 2014년에는 베들레헴 근교 남예루살렘 올리브와 포도 산지 바티르(Battir) 문화경관(Palestine: Land of Olives and Vines – Cultural Landscape of Southern Jerusalem, Battir)도 세계유산에 추가했다. 



요르단강 서안 헤브론지구



팔레스타인은 앞서 2011년 10월 31일, 프랑스 파리 유네스코 본부에서 개최된 이 국제기구 총회에서 회원국 자격을 얻었다.  총회에 상정한 팔레스타인 정회원 가입안은 193개 회원국 중 173개국이 참여한 결과 찬성 107표를 얻어 가결됐다.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들인 중국과 러시아, 프랑스, 그리고 브라질과 인도, 남아공 등은 찬성표를 던졌으며 영국은 기권했다. 반대표를 던진 국가는 미국을 필두로 팔레스타인과 시종 적대적인 이스라엘, 그리고 독일, 호주, 캐나다를 포함한 14개국에 지나지 않았다. 


팔레스타인을 정회원국으로 인정한 유엔 산하기구로는 유네스코가 처음이다. 


하지만 이는 격렬한 반발을 불러왔다. 무엇보다 유네스코 전체 분담금 중 약 22%를 지원하던 미국이 테러를 지원하는 국가에 대한 지원을 금지하는 국내법을 들어 분담금 지불 정지를 결정했다. 이 일로 유네스코는 극심한 재원 위기에 몰렸으며 이런 사정이 현재까지도 크게 개선되지 않은 것으로 안다.  


외부 세계가 간절히 자신들을 독립국가로 인정해주기를 바라는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유네스코는 그 희망의 빛일 수밖에 없다. 유네스코 회원국 자격을 획득한 팔레스틴은 이에 유네스코를 발판으로 삼아 그들이 독립국가임을 더욱 확고히고 하고자 하는 대외적 상징조치를 잇달아 시도하게 되니, 세계유산 등재도 그 일환으로 봐야 한다. 



팔레스타인, 유네스코 회원국 가입



이런 움직임에서 주목할 것은 팔레스타인이 등재한 3건 모두가 그 등재 절차가 비록 세계유산협약의 이행지침이 규정하는 절차를 모두가 비상절차에 가까운 방식을 채택했다는 사실이다. 보통 세계유산 등재는 시일도 많이 걸리고 심사도 까다롭기 짝이 없지만, 팔레스타인은 그들의 처지, 다시 말해 언제나 이스라엘에 당한다는 약자 논리에다가 그들의 위협에 유산들이 위협에 처해 있다는 점을 내세워 fast-track 제도를 교묘히 이용해 언제나 비정상에 가까운 세계유산 등재를 시도했다.  


이것이 훨씬 빠르고,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패스트 트랙, 우선 이름부터 급박한 느낌을 주니, 세계의 시선을 끌기에도 이보다 더 좋은 등재방식을 찾기는 힘들다. 그들의 전략은 내가 보기엔 크게 성공작이다. 이 제도를 통해 팔레스틴은 이스라엘의 부당성을 널리 홍보했다. 이스라엘 대표단 단장은 이번 세계유산위 의장 단상으로 다가가 의장을 협박하는 장면을 연출했으니, 이보다 더한 이스라엘 부당성을 선전하는 효과가 있을까? 


그런 점에서 어쩌면 더 불쌍한 곳이 이스라엘이라 할 수도 있다. 욕은 욕대로 먹으면서도, 그들로서는 저리 저항하는 방법 말고는 뾰족한 대처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이번 세번째 등재에도 역시나 이스라엘은 온몸으로 저항했다. 저 등재가 있기 이틀 전, 세계유산 보존문제를 다룬 세계유산위에서 기등재한 유산 중 예루살렘 문제를 이미 다루었다. 이 역시 위험에 처한 유산이기도 하다. 


위험에 처한 유산....

그걸로 계속 예루살렘을 묶어둔다는 것은 이스라엘로는 치욕일 수밖에 없다. 내가 현장을 지켜보지 않아, 또 생중계까지 지켜보지 않아 자신은 없으나, 이를 전하는 유대계 언론과 친아랍계 언론, 그리고 중도적인 외신들 보도를 종합하면, 이스라엘이 더욱 민감하게 반응한 분야는 헤브론 유산 등재 자체 보다. 그것의 위험유산 등재다. 이스라엘이 점령한 헤브론 유산은 세계유산 등재와 더불어 곧바로 위험에 처한 유산으로도 동시 등재됐다. 2관왕 타이틀을 쓴 것이다. 실상 위험에 처한 유산이 패스트트랙이라는 등재 편법을 쓰는 일이 많다. 


내 기억이 정확한지 자신이 없지만, 캄보디아 앙코르 유적도 이 방식을 채택하지 않았나 한다. 그렇다면 왜 이스라엘이 위험에 처한 유산에 더욱 민감한가? 논리는 실로 간단하다. 내가 점령 혹은 관리하는 유산인데, 그것이 위험에 처했다? 누구의 탓인가? 말할 것도 없이 그 나라 책임으로 귀결한다. 이스라엘이 용납하지 못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아무 문제 없는데 왜 위험하다 하는가? 바로 이 심리다.


사이드 열풍이 이는 바람에, 그리고 이스라엘은 언제나 침략자, 팔레스타인은 언제나 피해자라는 등식이 우리에게 자리잡았기에(이것도 물론 박정희 시대로 돌아가면 다르지만) 우리 사회 일반은 막연히 팔레스타인=좋은놈, 이스라엘=나쁜놈이라고 생각하지 않는가 한다. 이는 사이드 시각이다. 물론 국내 기독교인들에게 이는 정반대다. 


하지만 한 발 떨어져서 봐야 한다. 팔레스틴에, 혹은 그 이전 이스라엘에 우리를 투영해 우리가 그리는 팔레스틴, 우리가 그리는 이스라엘에 만족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하필 유네스코일까? 국제관계가 철저한 힘의 논리로 지배된다는 거 반복이 필요없다. 상임이사국 다섯 나라가 깽판치는 유엔이 증명하지 않는가?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산하 기구 유네스코는 좀 묘해서 그런 힘의 지배가 상대적으로 덜하다. 팔레스타인이 회원국 자격을 획득한 가장 큰 힘은 쪽수가 많은 아랍권 국가와 아프리카 국가들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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