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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도 대학 밥을 먹고 있는 사람이니 이런 부분에 있어 책임이 없다 할 수 없다.
대학이 수준미달인 것에
이제 정년 몇 년 남지도 않은 필자도 나름 기여한 것 잘 알고 있다.
그건 그런 것이고,
한국 대학의 문제점에 대해 앞으로 대학 떠날 일 많지 않으니 조금 더 써보겠다.
우리나라 대학의 문제점을 이해하려면 조선후기 지식인과 그 집단에 대한 이해가 필수이다.
이건 마치
일본의 과학과 인문학이 강한 이유는
에도시대 난학과 다른 학문들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분명해지는 것과 같은 것이다.
지금 우리는 한국과 일본의 학문 수준차를 20세기 이후, 혹은 해방 이후 발생했다고 보는 것 같은데
그게 아니고 그 차이는 정확히 말하자면 임진왜란 이후,
17세기 후반 이후 이미 한국과 일본의 학문수준은 뒤집혀 있었고,
그 차이는 국치의 순간까지 점점 확대되었다.
그리고 그 학문의 수준차, 연구의 풍토가 지금까지도 양국의 대학에 영향을 주고 있다.
한국 대학을 이해하려면 조선후기 유림의 지적 풍토에 대한 이해 없이는 불가능하다.
20세기 초반 이미 노벨상 후보가 나온 일본 학계의 수준이
개항이후 두 세대 만에 급조된 것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라는 뜻이다.
에도시대에 대한 연구는
일본인들보다 한국인들이 더 많이 해야 한다.
그 친구들보다 우리가 더 속속들이 알고 있어야 비로소 조선후기 한국사가 제대로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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