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의 사무라이에 해당하는 계층이 바로 한국의 사대부, 선비들이라 할 수 있는데
이 두 계급은 서로 간에 닮은 모습이 많다.
아마도 역사적으로 분화되어 성립되는 기원이 비슷해서일 수도 있고,
에도시대 들어오면서 부터는 양국이 유교에 기반한 士族層이 성립하여,
정신적으로도 많이 유사해졌다.
우리는 일본의 할복을 특이하게 보지만,
사실 왕이 선비에게 죽음을 내리는 사약을 보면 그 정신은 결국
동아시아 士族 특유의 刑不上大夫, 禮不下庶人에 기인하는 것을 알게 된다.
사족의 최소한의 자존심을 자살을 내리는 것으로 퉁치는 것이다.
이처럼 양국의 사족은 유교적 젠트리라고 할까,
강렬한 사명감과 자존심에 기반하고 있다고 하지만
막상 이 사족에 안정적으로 자리잡고 있는 이들을 보면,
조선에는 누대 양반 가문,
일본에서는 상급 무사 계층이 될 텐데
이들은 일상생활하기 바빠 사무라이 정신, 사족 정신을
굳이 강조할 필요도 없고 그럴 시간도 없다고 해야 할까.

에도 말기에 오면 메이지 유신의 격랑에서 사무라이의 제대로 된 모습을 보여준 상급무사는 극히 드물었고,
우리의 쇄미록에서 보듯이 조선의 사족들은 매일 집안 재산 관리하기에도 바빴던 것이 실제 모습이었다.
오히려 이러한 사족의 이상적 모습은
저것도 사족인가 싶은 하층 무사, 하층 양반 끄트머리의 사람들 사이에서나
아니면 아예 농민들 사이에서 보이는 바,
이들은 이데올로기적으로나 존재하고 현실에는 찾아보기도 힘든
사족의 모습, 선비의 모습, 사무라이의 모습을 희구하여
오히려 사무라이라고 보기엔 너무 미천하지만
정작 난세에 사무라이 처럼 죽은 이들, 선비처럼 죽은 이들은 모두 이들 속에서 나왔다.
따지고 보면 이것은 한국 일본만 아니라
유럽 미국도 마찬가지라.
영국만 해도 Pride and Prejudice에서 볼 수 있듯이
19세기 초반만 해도 천박한 졸부로 여겨지던 하층 젠트리는
불과 1-2대만 내려가면 영국 자본주의의 주인공으로 등장하여
산업혁명 시대의 폼나는 신사계층으로 자리잡게 되는 것이다.
이상세계의 사족이란 건 현실에 없지만,
이를 희구하는 이들은 그 자리를 탐내는 하층민들로
이들이야말로 이 세상에는 없는 사족의 모습을 부러워하여
실제로 그렇게 살다가 간 사람들이 많은 것은 우연이 아니라 하겠다.
*** [편집자주] ***
선비란 책벌레라는 고정 관념이 강하지만 단재가 갈파했듯은 칼을 찬 사무라이가 원형이다.
이에 적합한 모델이 남명 조식이나 곽재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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