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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형님 얼굴에 비친 아버지, 그런 형님이 가버리니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5. 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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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 박지원은 시는 잘 짓지 않았다.

그는 알려진 대로 산문에서 유감없는 천재성을 드러냈다.

그런 그의 시 중에서도 무릎을 치게 만드는 몇 편이 있으니 

연암집 제4권 영대정잡영映帶亭雜咏이 수록한 

연암燕岩에서 돌아가신 형님을 생각하다[燕岩憶先兄]

는 만고의 절창이다. 

 
우리 형님 얼굴 덮은 수염 누굴 닮았나?
아버지 생각날 때면 우리 형님 쳐다봤지
이제 형님 그리우면 어딜 봐야 할꼬
두건 도포 걸치고선 냇물 비친 나를 봐야지

我兄顔髮曾誰似 每憶先君看我兄 今日思兄何處見 自將巾袂映溪行
 

저에 부친 한국고전번역원 주석은 다음과 같다.

정조 11년(1787) 연암의 형 박희원朴喜源이 향년 58세로 별세하여 연암협燕巖峽의 집 뒤에 있던 부인 이씨 묘에 합장하였다. 이덕무는 이 시를 읽고 감동하여 극찬한 바 있다. 《過庭錄 卷1》
ⓒ 한국고전번역원 | 신호열 김명호 (공역) | 2004

 

번역은 내가 다듬었다.

당연하겠지만 형님은 아버지를 빼다 박았다.

그래서 아버지가 그리울 때면 형님 얼굴을 봤다.

그 얼굴에서 아버지가 비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형도 죽고 말았다. 

이제 그런 형도 갔으니,

이제 아버지 그리우면, 그리고 죽은 형님 그리우면

물에 비친 자기 얼굴을 쳐다 봐야 한다는 말이다. 

왜?

그 내 얼굴에 아버지 형님 얼굴이 있기 때문이다. 

연암의 아버지 박사유는 1767년, 연암이 서른한 살 때 향년 61세로 갔다. 

그의 호로도 알려진 연암은 과거를 단념?(포기 같지만)하고 은거하던 곳 이름이다.

나는 아버지보다 먼저 간 형님이 있었는데, 그 형님도 없다.

그 형님이 실은 아버지를 빼다박았다. 

아들놈한테서 아버지를 가끔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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