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유신은 정실에게서 5남 4녀를 두었다.
딸들은 역사에서 모두 이름이 지워졌지만, 다섯 아들은 모두 현달했으니,
그 이름들을 삼국사기 권 제42 열전 제3 김유신 전에서는 이찬 삼광三光·소판 원술元述·해간海干 원정元貞·대아찬 장이長耳·대아찬 원망元望이라 해서 차례대로 거론했다.
이 아들들이 이른 최고 관위를 보면 대아찬 이상 모조리 재상 급이다.
김유신 당대에도 그 형제들은 신라사를 주름 잡았으니, 그의 동생이 김유신에 버금가는 일세의 전쟁 영웅 김흠순이요, 여동생 중 한 명이 태종무열왕 김춘추의 배필이면서 일통삼한을 달성한 문무왕 김법민의 어머니였다.
김춘추를 모르고, 문무왕을 모르고 신라사를 논할 수 있어도 김유신이라는 이름 없이 우리가 신라사는 얼개조차 구축하지 못한다.
그만큼 김유신이라는 이름이 신라에서, 특히 7~8세기 그 사회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막중하고도 막강했다.
한국역사를 통틀어 이처럼 극강極强의 위광을 누린 사람은 그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다. 그 어떤 왕보다 그가 뿜어내는 빛은 강렬했다.
김유신에게는 이 외에도 첩에게서 낳은 아들로 군승軍勝이라는 1명이 확인된다.
김유신 정도가 되면 첩은 여러 명이었을 것이므로 서자와 서녀는 이보다 훨씬 많았을 것이지만, 유독 군승만 남은 까닭은 서출 중에서는 그가 남긴 족적이 다른 서자들에 견주어 두드러졌기 때문일 것이다.
한데 앞서 소개한 김유신 열전에는 삼광 이하 적자 5명이 모조리 지소 부인智炤夫人 태생이라 한다.
지소는 누구인가?
같은 열전에서는 태종대왕 셋째 딸이라 했으며, 같은 삼국사기 권 제5 신라본기 제5 태종무열왕 2년(655) 겨울 10월조에 이르기를 “왕의 딸 지조智照를 대각찬大角飡 유신에게 시집보냈다”고 했으니 둘이 혼인한 시점이 드러난다.
그렇다면 지조는 어머니가 누구인가?
이에 대해서는 명확한 설명이 없다.
하지만 우리는 그가 김유신의 누이동생 문희文姬 소생일 것임을 확신해도 좋다.
김춘추 소생 중 딸로는 642년 대야성 전투에서 백제군에 무참히 참살된 고타소가 있거니와,
이 고타소는 죽을 시점 나이를 추정하건데 나중에는 왕비가 되어 문명文明이라 일컫게 되는 문희 소생이 아님이 확실하다.
김춘추는 595년생인 김유신보다 9살이 어린 604년생이다.
이런 그가 김유신의 계략에 따라 그의 누이동생 문희와 결합해 혼인 전에 속도위반으로 아들 법민을 밴 것이 625년 혹은 626년 초반기 무렵이다.
다시 말해 김춘추와 문희 사이에 출생한 자식 중에서는 문무왕 김법민이 아들로서는 물론이고 딸까지 합친 맏이다.
둘 사이에 딸은 몇을 두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지소는 셋째 딸이라 했으니, 문희 소생임에 틀림이 없다.
혹여 지소가 후궁 소생일 수도 있지만, 김유신 정도 되는 인물한테 서녀를 부인으로 내릴 수는 없다.
요컨대 김유신은 환갑의 나이에 아마도 20살 안팎이거나 10대였을 조카딸 지소와 혼인한 것이다.
이는 673년 김유신이 향년 79세로 타계하고 무려 39년이 지난 성덕왕 11년(712)까지도 김유신의 미망인이 살아있다는 점에서도 더욱 분명하다.
이해 성덕왕본기를 보면 “가을 8월에 김유신의 처를 부인夫人으로 봉하고 해마다 곡식 1천 섬을 내려주었다”고 했다.
그렇다면 성덕왕은 하필 이때 김유신의 처에게 이런 은전을 베풀었을까?
나는 김유신의 처가 이때 70세나 80세처럼 특정한 나이에 이르렀기 때문이라고 본다.
70세로 본다면 지소는 642년생이다.
맏이 김법민이 626년생이고, 지소가 딸로는 셋째라 했으니, 아마 내 추정이 맞지 않을까 한다.
그렇다면 김유신에게 하가할 때 지소는 만 12세지 않았을까 한다.
이를 너무 어리다고 본다면 혹여 이보다 10살 빠른 632년생일 가능성도 있다.
아무튼 김유신은 자신보다 물경 마흔 살 이상은 어렸을 어린신부를 껴안고는 노익장을 과시하기 시작해 김유신 열전에 의하면 삼광과 원술 이하 아들을 다섯이나 두게 된다.
김유신이 뿌린 씨가 좋았거나, 아니면 그것을 뿌린 밭이 좋았거나, 혹은 그 둘 다였을지 모를 일이다.
한데 이미 내가 졸저 《화랑세기 또 하나의 신라》(김영사, 2002)에서 지적했듯이 삼광 이하 막내 원망에 이르는 아들 다섯이 모두 지소 소생이라는 삼국사기 김유신 열전은 착오다.
저들 중에서도 맏이 삼광만큼은 때려 죽여도 지소 소생일 수가 없다.
지소가 낳은 아들은 원술 이하 4명이다. (2016년 6월 5일)·
'역사문화 이모저모'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화랑세기를 향한 심리의 저항선과 이끌림] (3) 그 짙은 그림자 (1) | 2025.06.05 |
---|---|
[화랑세기를 향한 심리의 저항선과 이끌림] (2) 엄마보다 나이가 많은 아들 (0) | 2025.06.05 |
할슈타트 콜드론cauldron (3) | 2025.06.05 |
인간과 매머드 (4) | 2025.06.04 |
돼지다리 로마 해시계가 품은 비밀 (0) | 2025.06.04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