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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THESIS

중국 청해성에서 발견됐다는 시황제 시대 곤륜 약초 캐기 바위 글자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5. 9.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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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중국 고고학 역사학이 놀라게 하는 점이 한둘이 아니거니와,

개중 하나가 중요한 발견 발굴은 곧바로 위키피디아나 저네들 바이두 백과사전에 관련 별도 항목을 만들어 바로바로 서비스한다는 사실을 적시하는 현상을 꼽아야 함을 이미 지적했거니와 

이에서 소개할 이른바 일당 진 각석尕日塘秦刻石도 그러해서 이 발견이 공포된 그날 위키피디아에는 '尕日塘秦刻石'이라는 항목으로 그 서비스를 시작했거니와

그렇다면 가일당 진 각석이란 무엇인가?

이를 위해 위선 이 이름을 풀이해야 하거니와 가일당尕日塘이란 이 각석이 소재한 곳을 일컬음이요 진秦이란 그 각석이 작성된 시점을 말하며, 각석刻石이란 글자 그대로 돌에다가 글자나 그림을 쪼은 물품을 말한다. 
 

尕日塘秦刻石高清正射影像图 图片由国家文物局提供

 
따라서 저 소일당 진 각석尕日塘秦刻石은 소일당이라는 곳에 소재하는 진나라 시대 그림 혹은 글자 새김 돌을 의미한다. 

문제는 저 진秦이 어느 왕조를 말함이냐 하는 것이어니와, 저 이름을 쓴 왕조가 하도 많아서 헷갈린다.

이 경우는 결론만 질러버리면 중국 역사상 맨 먼저 제국주의 왕조를 이룩한 시황제의 그 진나라를 말한다. 

다음으로 尕日塘의 尕라는 한자가 문제어니와 이건 우리는 도무지 쓰는 일이 거의 없는 생소 글자인 까닭이다.

이를 국내 자전에서는 작을 '소'라 하지만, 중국에서는 예외 없이ga, 곧 가로 읽는다.

우리는 쓰임이 거의 없으니 저쪽 발음을 존숭해서 가일당이라 쓰기로 한다. 
 

尕日塘秦刻石高清数字线图(局部)图片由国家文物局提供


가일당 진 각석은 이전에는 곤륜 석각昆仑石刻이라 했다는데, 진 시황제가 파견하여 곤륜산에서 채약採藥한 내용을 적었다 해서 곤륜 석각이라 일컬은 모양이라,

곤륜산은 불로 신선이 산다는 곳으로 불노초가 있는 곳으로 지목되었다. 

중국 청해성青海省 과락 장족 자치추果洛藏族自治州 마다현玛多县 찰릉호향扎陵湖乡 탁양촌卓让村이라는 곳에 위치하는 진나라 시대 석각 유적을 말한다.

과락果洛이며 마다玛多며, 탁양卓让이니 하는 지명들 보면 도무지 우리한테 익숙한 정통 한자 문화권이 아님을 단박에 안다. 본래 중국 땅이 아니라는 소리다. 

석각은 저 동네 삼강원 자연보호구三江源自然保护区 안쪽 찰릉호扎陵湖 북쪽 가 산비탈에 위치한다.

삼강원이라 했으니 이 일대에서 세 강이 흐름을 시작하는 곳임을 알겠고, 찰릉호라 했으니 이곳이 바로 호수임을 알겠다.

백두산 천지 혹은 그 기슭에서 압록강 두만강 송화강이 흘러내리듯이 이 호수 혹은 그 기슭에 자리잡은 저 호수에서 세 강이 흐른다 해서 삼강원이라 한 모양이다. 
 

조사 장면

 
문제의 각석은 최근 중국 당국이 조사한 결과 진전秦篆,

곧 전국시대 및 그를 이은 통일 진나라 제국 시대 전서체로, 총 37자를 새겼으니,

그 내용은 오대부五大夫 '예翳'라는 사람이 진 시황제 37년(기원전 210년) 3월 기묘일己卯日에 (어딘가를) 출발해  '곤륜昆仑'에서 약을 채취하라[采药]는 명령을 받은 일을 적었다 한다.

이 석각은 청해사범대학青海師範大學 지리과학학원 교수 후광량侯光良이 2020년 7월에 처음으로 공개했다. 왜 지리학과 교수가?

그는 당시 이를 원나라 시대 또는 청나라 시대 정부가 황하 발원지를 찾으면서 남긴 유적이라 판단했다.

2023년 7월, 중국사회과학원 고고연구소 연구원 동도仝涛가 팀을 이끌고 이 석각을 더 세심히 조사한 결과 이 석각은 진시황 시기 오대부 '예'가 곤륜으로 가서 약을 채취하는 과정에서 남긴 것으로 초기 판정한다.

그는 2025년 6월에 이 발견을 공개했다.

하지만 진위 논란이 극심했던듯 설왕설래하다가 이번에 국가문물국이 나서서 아예 해당 석각이 진나라 시대 각석임을 인정한 것이다.

물론 국가가 인정했다 해서 그것이 곧바로 역사적 사실을 판정하는 것은 아니다.

이 문제는 두고두고 논란이 계속될 것으로 나는 본다. 

이 가일당 진 각석은 중국에서 "현재 알려진 바에 따르면 유일하게 원래 위치에 남은 (시황제 시대) 각석이자 해발 고도가 가장 높은 진대 각석"으로, 각문이 사료에 기록되지 않아 상당한 역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한다.

그 지점을 보면 호수변에서 200미터 떨어진 급경사 아래 해발 4306미터에 위치한다고.

석각 문자를 조각한 바위 면은 총길이 82cm이고, 가장 넓은 곳은 33cm다.

글자는 총 12행 36자에 합문合文 1자를 더해 총 37자로, 문자는 진나라와 전서다. 

국가문물국이 공개한 각문은 다음과 같다. 

“ 皇帝/使五/大夫臣□/將方□/采樂□/陯翳以/卅七年三月/己卯車到/此翳□/前□可/□百五十/里 ”(/는 줄바뀜 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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