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이의 몰락은 부분적으로 환경적 부담 때문이었고, 오늘날 우리에게도 교훈을 준다.
by 스테판 블룸Stephan Blum, The Conversation
때로는 번영의 토양 바로 그 속에 붕괴의 씨앗이 뿌려지기도 한다.
트로이의 빛나는 성벽 아래, 땅은 그 야망의 무게에 조용히 갈라졌다.
오늘날 환경 파괴를 떠올리면 석유 굴착 장치, 석탄 발전소, 플라스틱 섬이 떠오른다.
하지만 산업화 이전부터 고대 사회는 이미 생태계를 위기에 몰아넣고 있었다.
한 가지 두드러진 사례는 초기 청동기 시대 트로이에서 찾을 수 있다.
경제적 찬란함의 그림자가 드리운 가운데, 지속적인 생태적 비용이 드리워져 있다.
이 이야기는 단순히 혁신과 성공에 대한 것이 아니라 과도한 확장, 탈진, 그리고 억제되지 않은 성장의 숨은 비용에 대한 경고이기도 하다.
기원전 2500년에서 2300년 사이, 트로이는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서 전설로 기록되기 수 세기 전, 아나톨리아 북서부(현재 터키의 아시아 지역)에서 권력과 실험의 중심지로 부상했다.
전성기에는 인구가 1만 명으로 추산된다.
튀빙겐 대학교 트로이 프로젝트와 함께 수년간 발굴 작업을 진행하면서 나는 생산, 계획, 그리고 조직에 있어서의 신중한 선택들이 어떻게 소박한 청동기 시대 마을을 초기 도시적 특징을 지닌 활기찬 공동체로 점진적으로 변화시켰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트로이의 기념비적인 석조 건물들, 정돈된 거리들, 그리고 독특한 주거 공간들은 변화하는 사회를 반영했다.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는 대량 생산의 등장이 있었다.
메소포타미아 물레를 본떠 만든 물레wheel는 트로이 도기 제작에 혁명을 일으켜 더 빠르고, 더 균일하며, 더 대규모의 생산을 가능하게 했다.
곧 물레로 만든 도기가 주류를 이루었는데, 깊은 홈과 단순화한 마감 처리는 예술성보다는 효율성을 우선시하는 특징이 있었다.
생산량이 증가함에 따라, 더욱 체계적이고 전문화한 노동력에 대한 필요성 또한 커졌다.
장인 정신은 가정에서 작업장으로 옮겨갔고, 노동력은 점점 더 전문화하고 세분화했다.
무역은 번성하여 트로이 주변 광활한 지역인 트로아드Troad를 훨씬 넘어, 정착지의 지역적 범위를 넘어섰다.
점점 더 복잡해지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람들은 표준화한 무게와 행정 인장을 도입했다.
이는 점점 상업화하는 세상에서 조율과 통제를 위한 도구였다.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진보에는 대가가 따랐다.
트로이의 번영을 촉진한 바로 그 혁신들이 점점 더 억제하기 어려운 힘을 촉발했다.
채굴을 통한 번영
트로이의 부는 끊임없는 채굴을 기반으로 구축되었다.
기념비적인 건물들은 인근 채석장에서 수 톤 석회암을 필요로 했다.
한때 비옥했던 강둑에서 진흙을 준설하여 가마와 벽돌 제조에 사용했다.
숲은 목재와 장작을 얻기 위해 벌채되었는데, 이는 밤낮으로 불타오르던 호황을 누리던 도기 산업의 생명선이었다.
농업 또한 급격한 집약화를 겪었다.
이전 세대는 윤작을 하고 밭을 쉬게 했다.
반면 트로이의 농부들은 지속적인 경작을 통해 최대 수확량을 추구했다.
에머Emmer와 아인콘einkorn (척박한 토양에 적합하지만 수확량과 단백질 함량이 낮은 고대 밀 품종)이 주류를 이루었다.
이 품종들은 내한성이 강하고 저장하기 쉬웠지만 영양분이 고갈되었다.
농경지가 가파르고 취약한 경사지로 확장하면서 침식이 심화했다.
고고식물학적 증거가 증명하듯 한때 숲으로 뒤덮였던 언덕은 황무지가 되었다.
가축은 더욱 심각한 부담을 가중시켰다.
양과 염소 떼가 고지대 목초지에서 집중적으로 방목하면서 초목이 파괴되고 토양이 압축되었다.
그 결과 수분 보유량이 감소하고 표토가 무너지며 생물 다양성이 감소했다.
트로이의 번영을 뒷받침한 생태적 균형이 점차 무너지기 시작했다.
기원전 2300년 무렵, 이 시스템은 균열을 겪기 시작했다.
반란이나 갈등으로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는 대규모 화재가 정착지를 휩쓸었다.
기념비적인 건축물들은 버려지고 작은 주택과 소박한 농가로 대체되었다. 권력의 중심은 흔들렸습니다.
이러한 붕괴는 정치적 긴장, 외부 위협, 그리고 사회적 불안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발생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환경적 부담 또한 무시할 수 없다.
토양 고갈, 삼림 벌채, 토양 침식은 물 부족, 자원 부족, 심지어 기근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이러한 모든 요인이 트로이의 안정 기반을 무너뜨렸다.
그 여파로 야망보다 적응이 우선시되었다.
농부들은 작물을 다각화하고, 고수확 단일 재배에서 벗어나 더욱 다양하고 회복력 있는 전략으로 전환했다.
위험은 분산되었고, 토양은 부분적으로 회복되었으며, 공동체는 안정되기 시작했다.
트로이는 사라지지 않았다.
트로이는 적응하고 또 다른 천 년을 위한 새로운 균형을 찾았다.
하지만 이는 트로이가 초래한 위기의 그늘 속에서 이루어졌다.
닳아빠진 풍경에서 얻은 교훈
트로이 이야기는 단순한 고고학적 호기심을 넘어, 거울과 같다.
과거와 현재의 많은 사회가 그랬듯이, 트로이의 경제적 야망은 생태적 한계를 뛰어넘었다.
수확량 감소, 숲 고갈, 산비탈 침식 등 경고 신호가 있었다.
하지만 끝없는 성장이라는 환상은 거부하기 어려울 만큼 유혹적이었다.
오늘날과 극명한 유사점을 보인다.
자원 고갈, 단기적 이득, 그리고 환경 방치는 여전히 우리 세계 경제의 핵심적인 특징으로 남아 있다.
기술은 발전했을지 몰라도 사고방식은 그렇지 않다.
우리는 소비하고, 버리고, 확장하고, 반복한다.
하지만 트로이는 희망의 빛을 비추기도 한다.
과잉 이후의 적응 가능성, 파열 이후의 회복력이다.
지속 가능성은 현대적인 이상이 아니라 시대를 초월한 필수 요소임을 일깨워준다.
트로이는 아무리 독창적인 사회라도 생태적 과잉의 결과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한다.
불균형의 경고 신호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단지 무시하기 쉬울 뿐이다.
우리가 그 신호에 주의를 기울일지 말지는 우리에게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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