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국과 이란 간 갈등은 아프가니스탄, 특히 역사적 연관성과 전략적 중요성을 지닌 헤라트Herat 지역에 대한 이해관계 충돌에서 비롯한다.
이란은 헤라트에 대한 지배권을 장악하고자 했다.
러시아-이란 전쟁 이후 이 지역에서 러시아의 영향력 확대를 우려한 영국은 이란의 야망에 반발해 1856년 11월 1일 전쟁을 선포했다.
영국군은 전략적 요충지인 하르그 섬Kharg Island과 항구 도시 부시르Bushire를 점령하고 이란군과 교전을 벌였다.
초기에는 성공을 거두었지만, 영국군은 이란군을 적극적으로 추격하지 않고 다른 중요 지역에 집중해 결국 아흐바즈Ahvaz를 점령했다.

이 전쟁은 1857년 3월 4일 파리에서 평화 조약이 체결되면서 종결되었다.
이 조약에 따라 이란은 헤라트에서 철수하고 아프가니스탄에서의 개입을 제한받았으며, 영국은 이란에서 특정 외교 특권을 획득했다.
이후 영국군은 인도 세포이 항쟁 당시 인도로 복귀했다(알렉산더 미카베리제Alexander Mikaberidze, 2011).
저 전쟁을 앵글로 페르시아 전쟁Anglo-Persian War 혹은 앵글로 이란 전쟁Anglo-Iranian War이라 한다.
이 전쟁은 영국과 카자르 왕조Qajar dynasty가 통치하던 이란 사이에 벌어진 전쟁을 말한다.

주된 쟁점이 된 헤라트는 1856년 이란에 정복되었지만, 반란을 일으킨 에미르emir 주도로 독립을 선언하고 인도에 있는 영국의 보호령과 아프가니스탄 에미리트Emirate of Afghanistan와 동맹을 맺었다.
영국군은 제임스 아웃람Sir James Outram 소장 지휘 아래 이란 남부 해안 부셰르Bushehr 인근 지역과 메소포타미아 남부 지역, 두 전선에서 성공적으로 전쟁을 수행했다.
이 전쟁으로 이란은 1857년에 헤라트에서 철수하고 파리 조약을 체결하여 영국이 이란 남부에서 철수하는 대가로 헤라트에 대한 영유권 주장을 포기했다.


***
그 최고 지도자 하메네이 폭사를 부른 이번 이란 공습에 언제나 미국 이스라엘과 보조를 맞춘 영국이 참전하지 않았다는 점이 이채롭다.
하긴 외우 이정우 선생 말마따나 베트남 파병도 거부했으니 썩 드물지는 아니하다.
다만 이번 전쟁에선 느닷없이 키프러스 공군 기지가 공격받아 한창 영국으로선 열받아 있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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