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Michael La Corte, Annika Vosseler, The Conversation

문화재 반환 논쟁, 즉 박물관이나 다른 소장품에 보관된 문화재를 특정 개인이나 공동체에 반환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쟁은 종종 겉보기에는 간단해 보이는 질문, 즉 "누가 그 물건의 소유권을 갖는가?"에서 시작한다.
식민지 시대 맥락에서 이 질문에 대한 명확한 답은 드물다.
획득 과정에 대한 기록은 불완전하고, 논쟁의 여지가 많으며, 대부분 유럽인 관점에서 작성되었기 때문이다.
법적 문서가 존재하더라도, 상호 동의보다는 불평등한 권력 관계를 반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결과적으로 많은 반환 요구는 법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다.
이는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한다.
그 물건이 원산지 공동체에 갖는 정신적, 사회적, 그리고 조상 대대로 이어진 의미가 소유권에 대한 미해결된 법적 논쟁보다 우선시되어야 하는가?
현재 튀빙겐 대학교University of Tübingen에서 뉴질랜드 북섬 동해안 마오리 공동체인 테 아이탕아-아-하우이티Te Aitanga-a-Hauiti로 반환하는 히네마티오로 포우Hinematioro pou 사례는 문화적 가치에 기반한 반환 과정을 보여주는 좋은 예다.
이는 식민지 시대의 획득과 관련된 법적 불확실성보다는 영적인 의미와 관계적 책임감을 우선시하여 결정을 내릴 때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지를 보여준다.
포우pou는 부족의 경계, 이야기, 또는 조상을 나타내는 표식 역할을 하는 조각 나무 기둥이다.
히네마티오로 포우는 서 있는 조상 모습을 묘사한 초기 조각 패널이다.
테 아이탕아-아-하우이티 공동체에게 포우는 서구적 의미의 역사적 유물이나 예술 작품이 아니다.
그것은 아리키ariki (고위 지도자)였던 조상 히네마티오Hinematioro로의 물질적 존재를 상징한다.
포우는 먼 과거의 증거가 아니라 살아있는 사회 질서의 일부다.
마오리 문화 논리에서 그러한 물건은 타옹가taonga로 일컫는다.
타옹가는 물질적인 가치뿐 아니라 정신적, 사회적, 그리고 계보적 가치까지 담고 있는 보물이다.
타옹가는 마나mana와 마우리mauri—자율성과 생명력—를 지니며, 의례적인 관계와 책임감을 필요로 한다.
이러한 의미는 2019년, 250여 년 만에 처음으로 포우pou가 우와와Ūawa (톨라가 만Tolaga Bay)로 돌아왔을 때 분명해졌다.
마치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친척이 돌아온 것처럼 노래와 연설, 눈물과 포옹이 어우러진 성대한 포우히리pōwhiri(환영 의식)가 거행되었다.
이 특별한 순간을 목격하면서 우리와 행사에 참여한 많은 사람은 포우(pou)의 미래 거처 문제가 공동체에게 박물관적인 문제가 아니라 존재론적인 문제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소유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의 문제다.
타옹가taonga가 독일로 오게 된 과정
타옹가가 유럽에 어떻게 오게 되었는지 명확하게 재구성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확실한 것은 1769년 10월, 제임스 쿡James Cook의 첫 번째 태평양 항해 당시 HMS 엔데버호Endeavour를 타고 우아와Ūawa에서 유럽으로 옮겨졌다는 것이다.
이 포우는 마오리 족장 계보와 관련된 조각 포우 중 유럽 소장품에 들어간 가장 오래된 것 중 하나로 널리 알려졌다.
이는 심각한 권력 불균형이 존재한 식민지 시대라는 맥락 속에서 일어난 일이다.
포우가 어떻게 옮겨졌는지도 정확히 밝혀낼 수 없다.
선물, 강제 양도, 교환, 절도 등 다양한 가능성이 있다.
유럽 사료는 명확한 증거를 제공하지 않으며, 원산지 공동체 관점은 유럽에서 충분히 인정받지 못한다.
따라서 폭력 행위에 대한 기록이 없다는 사실이 자발적인 양도의 증거로 간주될 수는 없다.
이 유물이 튀빙겐에 오게 된 경로는 부분적으로만 추적할 수 있다.
쿡 탐험대와 관련된 19세기 과학 및 수집 네트워크를 여러 차례 거쳤을 가능성이 있다.
확실한 것은 1937년, 인류학자, 탐험가, 고고학자, 민족지학자인 펠릭스 폰 루샨Felix von Luschan의 아내인 엠마 폰 루샨Emma von Luschan(1864~1941)을 통해 튀빙겐 대학교 민족학 컬렉션Ethnological Collection에 소장되었다는 점이다.
당시 컬렉션은 인류학자이자 민족지학자인 아우구스틴 크래머Augustin Krämer가 관리했다.
중요한 전환점은 1990년대에 영국 도서관에 소장된 쿡 탐험대 그림을 통해 이 패널이 확인되면서 찾아왔다.
하지만 결정적인 계기는 하우이티Hauiti 이위Iwi[이위란 부족이라는 뜻이다]과의 직접적인 관계 구축이었다.
이후 몇 년 동안 튀빙겐 대학교와 하우이티 부족 간 긴밀한 협력 관계가 발전했다.
2019년에는 포우가 마오리족에게 반환되었다.
이후 독일 호헨튀빙겐 성Hohentübingen Castle에서 공동 기획 전시인 《테 포우 오 히네마티오로Te Pou o Hinematioro》(2025~2026)가 열렸는데, 이는 신뢰가 깊어질 수 있는 파트너십의 표현이었다.
따라서 포우의 반환은 갈등의 결과가 아니라 전시 과정을 통해 더욱 깊어진 장기적인 관계의 결과다.
법적 관점에서 대학은 해당 유물을 반환할 의무가 없었다. 독일 민법에 따라 포우는 대학 소유물로 간주되며, 식민지 시대의 유물에 대한 구속력 있는 반환 규정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최근 독일에서 식민지 시대 유물 수집에 대한 정치적 접근 방식은 변화한다.
최근 국가 지침은 투명성, 출처 연구, 원산지 공동체와의 대화, 그리고 반환을 가능한 결과로 장려한다.
이는 좁은 법적 소유권에서 벗어나 수집 역사에서 식민주의적 권력 불균형을 인정하는 방향으로의 전환을 반영한다.
반환에 관한 결정은 주로 정치적이고 제도적인 성격을 띈다.
이러한 결정은 책임에 대한 질문을 제기한다.
현재의 소장품들은 소장품이 획득된 배경에 대해 어떤 의무를 지고 있으며, 기관들은 유산, 기억, 정의에 대한 세계적 논의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자 하는가?
방대한 소장품을 보유하고 식민주의 지식 생산에 깊이 관여해 온 대학들은 이러한 문제에 특히 큰 영향을 받는다.
식민지 맥락에서 흔히 그렇듯이 법적 역사가 불확실한 경우, 반환은 소유권만으로 결정될 수 없다.
원산지 공동체가 진정한 파트너가 되려면 유산과의 사회적, 정신적, 조상 대대로 이어져 온 관계를 인정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반환 논쟁은 해체하고자 하는 바로 그 위계질서를 영속화할 위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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