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문가들은 오랫동안 런던 내셔널 갤러리 National Gallery에 소장된 한 그림이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ürer의 진품 초상화를 복제한 여러 작품 중 하나라고 간주했다.
그런데 최근 한 책에서 이 복제품이 바로 진품이라고 주장한다.
15세기 화가 알브레히트 뒤러는 26세 무렵 아버지 大알브레히트Albrecht the Elder 초상화를 그렸다.
이 초상화 초기 복제품은 최소 7점 이상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오랫동안 전문가들은 진품이 분실된 것으로 추정했다.
그런데 최근 몇몇 학자가 내셔널 갤러리 소장 복제품 중 하나가 사실은 뒤러의 진품이라고 주장하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그들의 연구 결과는 최근 <알브레히트 뒤러: 회화 전집, 드로잉 및 판화 선집Albrecht Dürer. The Complete Paintings. Selected Drawings and Prints>에 실렸다.

“단순히 말해서, 이 작품은 예술적, 기술적 면에서 탁월하며 모작 흔적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고 이 책 주 저자이자 비엔나 알베르티나 미술관 큐레이터인 크리스토프 메츠거Christof Metzger는 아트넷Artnet의 비비안 초우Vivienne Chow에게 말했다.
1471년 독일 뉘른베르크Nuremberg에서 태어난 뒤러는 헝가리 금세공사goldsmith의 아들이었다.
아버지 알브레히트 뒤러는 아들에게 자기 직업을 가르쳤지만, 뒤러는 다른 길을 택했다.
그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라파엘과 같은 이탈리아 동시대 화가들의 영향을 받았으며, 내셔널 갤러리에 따르면 그는 “북유럽 르네상스의 전형적인 화가”가 되었다.
런던 타임스the London Times의 엠마 예먼스Emma Yeomans는 2024년에 뒤러를 “역대 가장 기술적으로 뛰어난 화가 중 한 명으로 여겨진다”고 평했다.
문제의 초상화는 '화가의 아버지The Painter’s Father'로 알려져 있다.
작품 상단에 새긴 글귀에 따르면, 이 초상화는 1497년에 그린 70세(아버지) 알브레히트 뒤러를 담았다.
내셔널 갤러리 기록에 따르면, 이 작품은 "뒤러의 소실된 원작을 16세기 후반에 복제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박물관 측은 16세기와 17세기에는 유명 화가 작품을 복제하는 일이 흔했다고 한다.
뒤러가 1528년에 사망한 후, 그의 그림 복제품에 대한 수요가 증가했다.
간략 정보: 알브레히트 뒤러의 서명
1490년대에 뒤러는 자신의 이니셜을 양식화한 서명을 작품에 사용하기 시작했다. 앨러스테어 스마트는 2024년 크리스티 웹사이트에 기고한 글에서 이 독특한 모노그램이 "매우 귀중하고 가치 있게 여겨져 그의 작품을 복제하는 화가들이 일상적으로 위조했다"고 언급했다.
1636년, 뉘른베르크 시의회는 영국의 찰스 1세에게 두 점 그림을 선물했다.
하나는 뒤러의 자화상으로 현재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Prado Museum에 있으며, 다른 하나는 <화가의 아버지>다.
1904년 내셔널 갤러리가 <화가의 아버지>를 소장하게 되었을 때, 직원들은 이 작품이 1639년 왕실 재산 목록에 기록된 작품과 일치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 목록에는 "옛 헝가리식 검은 모자를 쓰고 짙은 노란색 가운을 입은 남자의 초상화로, 그의 손은 넓은 소매 안에 숨어 있으며, 붉은색 바탕에 갈라진 듯한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고 묘사했다.
메츠거는 아트 뉴스페이퍼의 마틴 베일리에게 내셔널 갤러리 소장본이 "노련한 붓놀림과 탁월한 유약 기법이 돋보이는 작품"이라며, "노화한 피부의 아주 작은 디테일까지 표현해냈다"고 말했다.
메츠거는 자신의 저서에서 <화가의 아버지>의 상태가 "최적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인물의 얼굴은 "매우 잘 보존되어 있어 그림의 이전 뛰어난 품질이 여전히 눈에 띈다"고 썼다고 아트 뉴스페이퍼는 전했다.
하지만 미술관 측은 이 작품이 뒤러의 진품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미술관 기록에 따르면, 그림의 갈색빛이 도는 분홍색 배경과 "여러 겹이 칠하는 대신 한 번에 두껍게 칠하는 특이한 기법"은 뒤러의 전형적인 기법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기법은 "전반적으로 얼룩덜룩한 효과"와 함께 물감에 균열을 일으켰고, 이는 후대의 복원 작업으로 덮였다.

내셔널 갤러리 전 부관장이자 독일 회화 큐레이터였던 수잔 포이스터Susan Foisterh에 따르면, 이러한 균열은 매우 중요한 세부 사항이다.
2024년 갤러리의 독일 회화 카탈로그에서 포이스터는 뒤러의 그림에서는 이러한 균열이 발견된 적이 없다고 지적하며, "뒤러의 기법은 일반적으로 흠잡을 데 없이 매끄러운 표면을 만들어냈다"고 아트 뉴스페이퍼에 전했다.
그녀는 또한 작품에 적힌 글귀가 "뒤러의 작품답지 않다"고 평했다.
하지만 메츠거는 복원 작업의 문제라고 주장했다.
그는 아트넷과의 인터뷰에서 "그림의 배경 전체가 망가졌고, 글귀는 원래 글귀를 바탕으로 매우 조잡하게 덧붙인 것"이라고 말했다.
2024년 카탈로그에서 포이스터는 인물 특징에도 문제를 제기했다.
그녀는 머리카락이 "뒤러 특유의 유려함과 섬세함이 부족하다", 눈동자와 홍채가 "일관성이 없다", "안구 주변의 살결이 최소한으로 묘사되었다"고 지적했다고 아트 뉴스페이퍼는 전했다.
따라서 이 작품은 "뒤러 본인의 작품일 수 없다"고 결론지었다.
<화가의 아버지>는 복제품이라는 점, 상태가 좋지 않다는 점, 그리고 공간 제약 때문에 현재 전시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아트 뉴스페이퍼(Art Newspaper)에 따르면 국립미술관은 이 그림을 추후 다시 전시할 계획이라고 한다.
미술관 웹사이트에는 여전히 작가가 "알브레히트 뒤러의 작품을 모방한 화가"로 표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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