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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THESIS

하남성 정주 상성郑州商城이 선사한 고고학적 발견들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6. 3.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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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신문大象新闻, 2026년 3월 18일 14:06

정주 상성郑州商城은 현재 하남성 정주 도심에 위치한다.

학자들은 일반적으로 이곳이 상商나라 탕汤 임금 시대에 건설된 "박도亳都"이며, 상나라 초기 수도 중 하나였다는 데 동의한다.

지난 10년간 국가문물국 승인 아래 하남성문물고고연구원河南省文物考古研究院과 정주시문물고고연구원郑州市文物考古研究院은 공동으로 지속적인 발굴 작업을 진행해 일련의 중요한 발견을 이루어냈다.

이러한 발견은 정주 상성의 도시 배치, 기능 구역 설정, 그리고 문화적 의미에 대한 이해를 새롭게 해 주었으며, 상나라 초기 국가 형태와 문명 발전 수준을 탐구하는 데 중요한 실증적 증거를 제공한다.


지도 1: 2015년부터 2025년까지 정주 상성에서 진행한 발굴 프로젝트 위치


정주 상성에서 새롭게 발견된 고고학적 유물

1. 역대 최대 규모 초기 상나라 시대 부고府库 유형 판축대지 건물 유적 발견

이 유적은 정주 상성 내성內城 남서쪽에 위치하며, 총 면적 수만 제곱미터에 달하는 길고 좁은 분토 기지[长条形夯土基址 ]17개로 구성된다.

길이 30~42미터, 폭 9~11미터에 달하는 이 건물터는 동서 방향으로 평행하게 한 줄로, 그리고 남북 방향으로 세 줄로 내성벽을 따라 배치되었다. 그 사이에서는 여러 개 배수로도 발견되었다.

이 건축물 배치는 언사 상성偃师商城 제2, 제3 건물터와 매우 유사하다.

전문가 대부분은 이곳이 정주 상성의 "부고府库[국가재물 보관창고라는 뜻이다]" 유형의 저장 시설이며, 초기 상나라 시대 가장 큰 저장 유적이라고 본다.

이는 초기 상나라의 물자 비축 제도와 수도의 경제 관리 방식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증거를 제공한다.


정주 상성 내성內城 남서쪽의 흙다짐 기초 구조물 평면도. 생김새 보니 딱 길쭉이 형태다. 저런 것들이 창고밖에 더 있겠는가?


2. 상나라 초기의 복잡한 수리 시스템 발굴, 상나라 초기 수도 도시 계획에 대한 기존 이해 재정립

이 수리 시스템은 주로 내성 남동쪽에 분포하며, 자연 하천을 개량한 구간 1개와 인공적으로 굴착한 도랑 2개로 구성되어 총 길이 약 540m, 최대 폭 12m, 최대 깊이 4m에 달한다.

석조 옹벽과 수로 시설을 포함해 서로 연결된 수리망을 형성한다.

또한, 고도로 정교하게 다진 흙과 나무로 만든 우물[木构水井]이 발견되었으며, 하·상夏商 시대 청동 쌍자루 물통[双系汲水罐]이 최초로 발굴되었다.

이 수리 시스템은 배수 및 홍수 조절 기능뿐 아니라 도시 구획 기능도 수행했으며, 내성 남부에 대규모 수리 시설이 존재했음을 확인시켜 주어 기존 인식을 크게 뛰어넘는 의미를 지닌다.

이는 초기 상나라 수도의 도시 계획 개념과 기능적 구역 설정을 탐구하는 데 새로운 물리적 증거를 제공한다.

정주 상성 내성 남동부 수리 시설 유적 위치 및 방향을 보여주는 지도
정주 상성 남동부 수리 시설 유적: 석조 옹벽(북쪽에서 남쪽으로)
정주 상성 남동부 수리 시설 유적: 자연 하천 수로의 변형된 단면(서쪽에서 동쪽으로)

 

정주 상성 남동부 수리 시설 유적 부분 단면도(남쪽에서 북쪽으로)


3. 내성에서 초기 상나라 청동 주조 및 뼈 가공 공예품 유적이 처음으로 발견되어 초기 상나라 수도의 수공예 산업 공간 배치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정주 상성 내성 남동쪽에서 발굴된 청동 주조 유적에서는 도기 틀陶范, 석기 틀石范, 그리고 약 400점에 달하는 구리 광석을 비롯한 제련 관련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특히  도기와 석기 틀[거푸집을 말한다]이 대량으로 발견된 것은 정주 상성 내성 지역에서 청동 주조 공정이 이루어졌음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증거이며, 구리 광석 유적 발견은 이곳에서 구리 제련 공정 또한 진행되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이러한 일련의 중요한 발견은 정주 상성 내성 지역에 대규모 청동 주조 산업이 존재했음을 최초로 입증하는 것으로, "정주 상성에서 발견된 청동 주조 유적은 성 외곽에만 분포되어 있으며, 내성 지역에는 청동 주조 산업이 없었다"는 기존의 학계의 견해를 완전히 뒤집는 것이다. [궁성 안에서 이런 제련? 매연 장난 아니었을 것이며, 결국 후대에는 밖으로 밀려나게 된다.] 

정주 상성 내성 남동쪽 발굴 현장에서 출토된 구리 광석

 
성곽 남동쪽에서 발견된 뼈 가공 유적에서는 다량의 뼈, 뿔, 상아 재료와 석기 가공 도구가 출토되어, 성곽 내 뼈 가공 역사의 공백을 메우고 초기 상나라 수공업의 정교한 분업과 합리적인 배치 체계를 확인시켜 준다.

또한, 골재 채취에 사용된 "썰기剥片式[마뜩한 번역어가 생각 안난다.]" 기법의 여러 사례가 발견됨으로써 이 기술의 등장 시기가 환북 상성洹北商城 시대에서 이리강 문화二里岗文化 시대로 앞당겨졌음을 알 수 있다.

이 두 수공업 유적 발견은 정주 상성 수공업의 배치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새롭게 할 뿐만 아니라, 초기 상나라 수도의 기능별 구역 설정, 수공업 생산 체계, 그리고 국가 자원 관리 모델에 대한 혁신적인 새로운 통찰력을 제공한다.

이는 초기 상나라 수도의 수공업 배치와 상나라 시대 수공업 생산 관리의 핵심 메커니즘을 탐구하는 데 있어 대체 불가능한 귀중한 물증을 제시한다.

정주 상성 남동쪽 발굴 현장에서 발굴된 골재

 
4. 다수 고급 제사 유적 발견으로 초기 상나라 수도 제사 제도에 대한 공백 메움

내성 북서쪽에 위치한 한 유적은 해자[환호环壕]와 흙다짐 담으로 둘러싸인 거대한 직사각형 제사 구역으로, 동서 폭 약 30미터, 남북 길이 50미터가 넘는다.

중앙에는 핵심 제사 장소가 있고, 그 주변에는 수십 개 제사 구덩이祭祀坑가 빽빽하게 분포한다.
이곳에서는 인골, 동물 뼈, 갑골, 석기 등이 발굴되었다.

제사 구역 북쪽에서는 흙으로 쌓은 건물 기초가 줄지어 발견되었다.

일부 학자는 이 유적이 사적 문헌에 묘사된 "사원, 제단, 구덩이[庙社坛坎]"와 같은 제사 형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주장한다.

정주 상성 내성 바깥 서북쪽 대형 제사구역(위가 북쪽이다)


내성 서쪽 성벽 바깥에 위치한 또 다른 유적에서는 흙으로 다진 기초와 도기, 인신 제물, 동물 제물이 담긴 제사 구덩이가 발견되었는데, 이는 상나라 시대 제사 유물로 추정한다.

이 유적은 장채张寨 남쪽 거리 청동 매장 구덩이에서 서쪽으로 100미터도 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으며, 청동 매장 구덩이와 관련된 유물이 처음으로 중요하게 발견된 사례로, 청동 매장 구덩이의 매장 방식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데 기여했다.
 

정주 상성 내성 서쪽 담당 바깥 발굴 현장(위가 북쪽)
정주 상성 내성 서쪽 성벽 바깥에서 발견된 상나라 도기 제사 구덩이 (서쪽에서 동쪽 방향으로 바라봤다)


내성 남서쪽 모퉁이에 위치한 또 다른 발굴지에서는 균일한 방향과 집중적인 분포, 그리고 최소한의 훼손 상태를 보이는 잘 정돈된 재 구덩이[회갱灰坑]들이 출토되었다.

이곳에서는 다수 인골, 동물 제물, 완전한 형태의 도기, 복골卜骨, 복갑卜甲 등이 발굴되어 장기간에 걸쳐 고정적으로 사용된 제사 장소임을 확인시켜 준다.

이는 궁궐 지역 다음으로 내성 안에 집중적으로 제사를 지낸 또 다른 지역으로, 초기 상나라 수도의 제례 공간 분포와 위계 구조를 더욱 풍부하게 보여준다.
 

정주 상성 남서쪽 모퉁이 발굴 현장 항공 사진 (남서쪽에서 북동쪽으로). 갑갑함이 풍납토성 보는 듯하다.
정주 상성 내성 남서쪽 모퉁이에서 발견된 제사 구덩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정주 상성 내성 남서쪽 모퉁이에서 발견된 제사 구덩이 (남쪽에서 북쪽으로)
정주 상성 내성 남서쪽 모퉁이에서 발견된 제사 구덩이 (남쪽에서 북쪽으로)

 
5. 중국 최초 고분군 및 고위 귀족 묘지 발견, 능침陵寝 제도 기원 규명

정주 상성 남동부에서 발견된 유적은 중국에서 지금까지 발견된 가장 오래된 고분군 유적의 직접적인 증거로서, 은허 왕릉殷墟王陵의 능묘 제도가 존재했음을 보여주며, 고대 중국 고분군 및 능침 제도 기원 연구에 중요한 이정표를 세웠다.

그중 M2는 정주 상성에서 발견된 최고위급 귀족 무덤 중 가장 풍부한 부장을 지닌 무덤으로, 중국 최초로 조개껍질 모양 금으로 만든 얼굴 덮개[선패형금복면扇贝形金覆面]와 청록색 상감 금판[녹송석감금패식绿松石嵌金牌饰], 금구슬[금포金泡]이 출토되어 초기 상나라 장례 의식에서 금이 제례 용품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시사한다.

또한, 내성 남서부에서는 다양한 신분의 무덤 20여 개가 추가로 발견되었다.

그중 M47은 비교적 보존 상태가 양호하고 부장품이 풍부하다. 특히 터키석[녹송석绿松石], 상아牙器, 금 구슬金泡로 상감 세공된 동물 얼굴 형상 유물[수면양감기兽面镶嵌器]은 초기 상나라 시대 유물로는 최초 발견이다.

이 고분은 서원가书院街 귀족 고분과 동서 방향으로 나란히 분포하며, 두 고분 간 밀접한 관계를 보여주어 이리강 상층 2단계 내성 남부 지역의 기능적 구역 설정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정주 상성 남서쪽 H8608에서 발굴된 도기
정주 상성 남서쪽 G44에서 발굴된 도기
정주 상성 남서쪽 H8943에서 발굴된 구멍이 뚫린 이중 도기(대루공쌍층도궤带镂孔双层陶簋)
정주 상성 남서쪽 M47에서 발굴된 짐승 얼굴 상감 도기兽面镶嵌器 (오른쪽은 복원도? 복원도는 안보인다. 누락된 듯)
정주 상성 남동쪽 H1123에서 발굴된 옥도끼玉戈


학술 가치

1. 초기 상나라 수도의 배치 규명 및 "질서정연한" 도시 계획 개념 확인

새롭게 발견된 수리 시설, 작업장, 보고, 제례 장소, 무덤 등의 유적은 내성 남부 지역의 기능 구역을 명확히 규정한다. 

중앙과 남쪽은 수공예 작업장, 남서쪽은 보고 및 저장 구역, 남서쪽 모서리는 제례 구역, 남동쪽은 고위 귀족의 무덤 구역이었다. 

질서정연한 배치와 명확한 기능 구분은 초기 상나라 수도가 계획적이고 체계적인 통치 체제를 갖추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2. 여러 고고학적 공백을 메우고 초기 상나라 체제 연구를 발전시키다

초기 상나라 최대 규모의 보물창고, 정교한 수리 시설, 성곽 내 수공예 유적, 고위층 제사 유적, 가장 오래된 능묘 지역, 그리고 높은 수준의 귀족 무덤 등이 발견됨으로써 물질 비축량, 수리 계획, 수공예 배치, 제사 의식, 능묘 제도 등 여러 분야 고고학적 공백이 해소되었다.

이는 초기 상나라 국가 체제와 문명 체계에 대한 이해를 크게 향상시키고, 하(夏) 및 상(商) 문명 연구를 새로운 단계로 끌어올렸다.

3. 다학제적 연구 통합을 통한 초기 상나라 국가 통치 모델에 대한 새로운 이해

이 연구는 구리 광석 추적, 인골 형태 관찰, 고대 DNA 분석, 연대 측정, 환경 고고학을 종합적으로 활용하여 초기 상나라 국가의 자원 관리, 민족 간 교류, 생계 경제 측면에서 통치 체계와 운영 메커니즘을 체계적으로 밝혀냄으로써 초기 상나라 발전상을 더욱 입체적이고 완벽하게 제시한다.

来源:河南省文物考古研究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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