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질도다 회回야. 벤또 밥 하나, 한 코푸 물만 마시며 누추한 골목길에서 사는 일을 사람들은 그 걱정을 감당하지 못하거늘, 회回는 그 생활을 즐겁다 생각해서 바꾸지 아니하니 과연 어질다 하겠다.[賢硪回也 一簞食 一剽飮 在陋巷人 不堪其憂 回也不改其樂 賢哉回也]
논어論語 옹야편雍也篇이 저록한 공자님 근엄한 말씀이라, 저리 말씀하시는 공자님만 해도 어린 시절엔 좀 고생했지만, 늙어서는 잘먹고 잘산 편이다.
저에서 보이는 '일단사 일표음一簞食 一瓢飮'이라는 말은 안빈낙도安貧樂道라는 말과 어울려 군자 혹은 선비라면 자고로 돈과 관계없이, 아니 가난한 가운데서도 지조를 지켜 나가야 하는 이상형으로 자리 잡는다.
문제는 현실과 이상의 괴리.
벤또 밥만 먹고 어찌 사람 구실을 한단 말인가?
공자를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추숭한 맹자인 듯하나, 맹자는 경제 문제에 특히 민감했고, 그래서 이 돈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지 너무 잘 알았으니, 인심은 쌀독에서 나는 법임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이럴 때 그 정신만 받아들이고 실제는 경제 생활 잘 운영해서 돈도 적당히는 있어야 하는 법이다.
문제는 저 일단사 일표음이 조선시대 선비들한테서는 표상으로써만 구실했다는 점이다.
일단사 일표음?
까는 소리하네.
벤또 먹고 물 한 사발만 주는데 누가 인간 취급이라도 한단 말인가?
아무리 양반이라도 그런 사람은 저 백정까지 인간취급을 하지 않았고 개무시하기 일쑤였으니 누가 와! 저 사람은 찢어지게 가난하지만 지조가 뛰어나니 우리가 모셔야 한다?
이런 생각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되는 사회였다.
그래서 참으로 선비라면, 군자라면, 그런 구실하고 대접받고자 조선의 선비 군자들은 무던히도 재물을 불리고자 했다.
그래서 떼부자 됐다. 퇴계?
말이 좋아 선비 군자의 표상이지 속내는 재벌이요 사설학원 이사장이었다.
임금이 불러도 나 병들었소, 나는 물욕에 관심 없소 하는 쇼를 하던 퇴계는 1561년, 명종 16년에 안동으로 돌아와 신규 프로젝트 사업 하나를 벌이는데 그것이 사설 학원 창당이었다.
도산서당이라 하면서 본인이 이사장하고 교장하고 교사했다.
출사해라, 아니 못한데이 하는 쇼를 하는 와중에 명성이 더 높아진 터에 입신양명을 꿈꾸는 젊은 친구들이 쪽집게 강사를 찾아 왔으니, 이것이 바로 훗날 우리가 아는 도산서원 모태다.
서원이 학문 도양? 웃기는 소리하네.
입시학원일 뿐이다.
각설하고 퇴계는 엄청난 땅부자였음에도 언제나 일단사 일표음을 입에 달고 살았으니, 왜? 자고로 선비라면 그러해야 한다는 공자님 말씀을 구현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알았다.
일단사 일표음이 표리부동하기 위해서는 재산이 있어야 하고 제자가 있어야 하며, 무엇보다 조직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이건 저보다 약간 후배인 율곡이라 해서 예외가 아니었다. 그도 역시 땅부자였고, 그 땅 중 일부는 지금도 그의 고향 파주에 내려온다.
본인은 떼부자에 재벌이요 학원이사장들이면서 왜 조선의 선비들은 툭하면 일단사 일표음 부르짖으며 오늘은 가난하여 먹을 게 없네, 먹을 것이라고는 상추 쌈 뿐이네 했겠는가?
그래야 개폼 나기 때문이었지 딴 이유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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