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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금>은>동>철, 금속 위계는 확고했다! 왕흥사지 사리장엄의 경우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6. 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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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제품인지 진품인지 자신은 없으나 암튼 부여 왕흥사지 목탑 터 아래서 발견된 사리장엄구 일괄이라 

이 사리장엄은 사중 오중 장치를 했으니, 저걸 넣은 사리공 자체가 또 하나의 관뚜껑이고, 나아가 그것을 감싼 탑 자체도 최종 바깥 관뚜껑이다. 

그 앙코가 저 3단 세트다. 

이건 내가 이미 내 논문에서도 지적한 것으로 기억하는데, 저 세트는 당시 백제가 생각한 귀금속 그 자체 내역과 그 위계를 확실히 드러내준다는 점에서도 중대성이 있다. 

청동이 제3단, 은이 제2단, 금이 제1단이다. 곧 금기를 은기가 감싸고, 그런 금기를 품은 은기를 청동이 감싼다. 

저에서는 철이 빠졌는데 저 시대 금속 위계는 너무나 확실해서 

금>은>동>철 순서였다. 

문제는 저에서 탈락한 다른 준보석. 

如컨대 유리나 마노, 옥 같은 준보석이 있다. 

대체로 보면 금과 은 다음이 옥이었다. 

문제는 유리가 어디로 가느냐는데, 이 유리는 아주 묘해서 어떤 때는 최중심에 갔다가 또 어떤 때는 꼬바리로 쳐지기도 한다. 

저 왕흥사지 사리장엄 청동제사리합에는 6행 29자 글자가 있으니

"丁酉年二月, 十五日百濟, 王昌爲亡王, 子立刹本舍, 利二枚葬時神化爲三"

곧 "정유년丁酉年(577) 2월 15일 불탄일에 백제왕 창昌(위덕왕)이 죽은 왕자를 위해 탑을 세울 적에 2매였던 사리가 탑에다가 묻을 적에 신이로운 조화로 3매가 되었다"고 했다.

근자 신라 적석목곽분 출토 금속 유물을 검토하는 어느 연구자가 신라에서는 금보다 은이 더 귀중품이었다는 요지 발표가 있었던 모양이라, 미안하나 택도 없다! 

저 왕흥사지 시대 신라는 적석목곽분이 말기를 향해 치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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