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서 고려시대 기왓가마 첫 발굴…"도내 생산 시기 앞당겨"
송고 2026년05월11일 14시06분
고성식기자
이 소식을 접하고선 퍼뜩 제주에서는 자체 기와 생산 시설이 확인되지 않았던가 묻게 되었으니, 하긴 그러고 보니 그런 기억이 적어도 나한테는 없는 듯하다.
그래서 이번 발굴에 나름 의미를 두는 모양이라, 대뜸 그러면서 묻게 되는 것이 내가 본 고려시대 기와는 다 뭐란 말인가? 였으니, 항파두리를 비롯한 현장에서 적지 않은 고려시대 기와를 봤기 때문이었다.

암튼 이르기를 제주시가 아마 발주처인 모양이고, 그 공사 현장을 일영문화유산연구원이라는 데서 판 모양이라, 일영? 영 낯이 선 이름이다. 제주 기반 조사단인지 아닌지 내가 판단이 서지 않는다.
도로 개설 예정지에 포함된 제주시 화북동 황사평 일원을 대상으로 지표조사도 하고 일부 의심 구간에 대해서는 발굴조사까지 실시한 모양이라 그 결과 고려 초·중기로 운영 시기를 추정하는 기와가마터 3곳을 확인했다 하거니와
이르기를 이들 기와가마는 지하식과 반지하식 구조라 해서 땅을 움푹 파고 들어가서 불때는 곳이랑 굽는 기물을 두는 공간을 마련했다 하거니와,
첨부한 사진들을 보니 가마 구조는 제법 잘 남았음을 본다.

그렇다면 이 가마들이 기와를 굽던 곳임은 어찌 판명했을까?
이르기를 그 내부에서 고려시대에 널리 유행한 나뭇가지 무늬 및 연꽃 무늬 새김 막새가 출토된 점을 들거니와, 그 인근에서 드러난 구덩이에서는 형태가 온전한 청자 대접과 도기 파편들이 다량으로 함께 발견됐다 하거니와, 이 상관관계를 어찌 해명하려는지는 자세히 알지 못하겠다.
구덩이에 들어간 청자나 도기 그릇들은 이곳에서 기와를 굽던 사람들이 일상에서 사용한 것이라는 뜻인가?
기와가마라 했지만, 관련 보도만으로는 내가 나름으로 확정하기에는 저어되는 측면이 없는 것도 아님을 말해둔다.


아무튼 이번 가마터 발견 이전까지는 그 막대한 기와들을 외부에서 수급한 것으로 봤다 하는데, 그리 보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그렇기에는 너무 양이 많이 소요된 까닭이다.
조사단에 의하면 꼭 기와가마뿐만은 아닐 듯한데 암튼 가마는 시대에 따라 고려시대에는 지하식를 거쳐 반지하식으로 변모하다가 조선시대에 지상식으로 변천하는 특성을 보인다 하거니와 그랬던가?
이젠 현장을 떠나니 모든 것이 다 새롭다.
이 가마 구조론을 바탕으로 이번에 발견된 가마는 고려 초·중기에 운영됐을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판단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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