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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THESIS

세계 제패를 꿈꾼 혁련발발의 본고장 통만성, 발굴로 드러난 단면들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6. 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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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은 통만성 남문의 옹성瓮城 서쪽 성벽 바깥에서 보이는 다짐 흙 구조물을 보여준다. (사진 제공: 섬서성고고연구원)

 
혁련발발 통만성이 1600년 된 '비밀 기술'들. '바구니 짜기夹筋编筐' 기법 동원? 

중국 섬서성 유림榆林의 마오우쑤毛乌素 사막 가장자리에 위치한 대하국大夏国 도성 통만성统万城은 오랜 세월 동안 땅속에 묻혀 있다가 최근 건축 비밀을 공개했다.

고고학자들은 성벽을 마치 얽히고설킨 대나무 바구니처럼 견고하게 쌓아 16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버틸 수 있게 해준 놀라운 '다짐흙 쌓기交错叠夯' 기법을 발견했다. 
 

이 사진이 이번 발굴 성과 이해를 돕는데 가늠자가 된다. 사각형으로 옴팡 둘러친 부분이 옹성이다.

 
이번 고고학 발굴의 "주인공"은 통완성 서쪽 성벽의 남문南门으로, 역사 기록에는 "조송문朝宋门"이라는 위엄 있는 이름으로 남아 있다.

서기 5세기 초 하 왕조 혁련발발赫连勃勃이 이곳에 서서 남쪽 중원을 바라보는 모습을 상상해 보자.

오늘날에는 높이 약 11미터의 흙으로 다진 "골조"만 남아 있지만, 고고학자들은 여전히 그 원래 모습을 파악할 수 있었다.

폭 약 5.6미터 통로와 양쪽에 줄지어 늘어선 기둥 구멍들이 문루를 지탱하고 있었던 것이다.
 

남문 옹성瓮城 서쪽 성벽의 안쪽 벽


더욱 기발한 것은 성문 옆에 있는 직사각형 형태의 "방어용 안뜰防御小院"인 옹성瓮城이다.

적군이 첫 번째 성문을 뚫고 들어오더라도, 삼면이 높은 성벽으로 둘러싸인 이 "포위망"에 갇혀 수비군의 손쉬운 표적이 될 수밖에 없었다.

안타깝게도 옹성의 동쪽 문은 심하게 금이 가 있었고, 안전상의 이유로 이번 발굴팀은 접근을 시도하지 않아 그 부분은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았다.
 

옹성 입구 같다. 이쪽 언론 특징은 설명이 자세하지 않다는 것.

 
고고학자들을 가장 흥분시킨 것은 성벽을 "해부"하는 과정에서 발견된 놀라운 사실이었다.

"대하大夏 사람들은 단순히 흙을 다져 층층이 쌓아 성벽을 만든 것이 아니라, 마치 바구니를 짜듯 흙벽돌을 서로 맞물리게 쌓아 올린 것으로 밝혀졌다"고 섬서성고고연구원 부연구관원副研究馆员이 묘일비苗轶飞는 설명했다.

이 독특한 "맞물림 다지기交错叠夯" 기술 덕분에 다진 흙층들은 약 4미터 간격으로 서로 맞물렸다.

매 간격마다 임목紝木이라는 목재(보강재)를 삽입하고 협근夹筋이라는 식물 섬유(보강재)를 첨가하는 등의 방법을 더해 성벽 전체가 견고한 일체를 이루도록 했다. 
 

옹성으로 통하는 입구 같다.

 
교과서적인 이해에 이의를 제기하는 또 다른 발견은 통만성 성벽이 평평한 땅에서 바로 쌓아 올린 것이 아니라, 1미터가 넘는 깊이의 기초 도랑을 먼저 파고 건설되었다는 점이다.

"이는 통만성이 '평평한 땅에서 건설되었다'는 기존의 견해를 바로잡는 것이다"라고 묘이페이는 말했다.

그는 고대인들이 먼저 흙 위에 플랫폼을 만들고, 사다리꼴 모양 기초 도랑을 판 다음, 그제서야 성벽을 층층이 쌓아 올리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이는 상상 이상으로 정교한 과정이었다.

서쪽 성벽 남쪽 옹성의 복골卜骨

 
옹성 내부에서 고고학자들은 대형 가옥 기초, 28개 재 구덩이灰坑, 2개 우물水井, 3개 화덕灶台, 그리고 3개 해자沟渠를 발굴했다.

발굴된 유물들은 다양했는데 벽돌, 판와板瓦, 통와筒瓦 뿐만 아니라 백자 조각, 녹유 도기 조각绿釉陶片, 심지어 방어용 돌[礌石]과 소, 양과 같은 동물 뼈까지 발견되었다.

유물들을 통해 이 성벽은 적어도 당나라 중후반과 오대五代 시대까지 사용되었으며, 이후 점차 사용되지 않게 된 것으로 추정한다.

흥미롭게도 고고학자들은 성벽에서 후대에 이루어진 보수 흔적도 여러 차례 발견했는데, 이는 이 성문이 세월의 부침을 묵묵히 견뎌왔음을 보여준다.
 

맞물려 쌓았다는 말이 설마 이른바 분할 성토를 말하는 건 아니겠지?
더럽게 잘게 썰어 쌓았다. 노역된 사람들이 얼마나 개고생했겠는가? 분할 지점이 보인다.



또한, 고고학 발굴팀은 처음으로 대하 왕조 시대 특징적인 건축 자재를 명확하게 식별해냈다.

하나는 앞쪽에 긴 혀端带长舌 모양 돌출부가 있는 원통형 기와[筒瓦]이고, 다른 하나는 독특한 '숫양 뿔羊角' 모양 구름 무늬로 장식한 와당이다.

이러한 자재들은 1600년 전의 '브랜드 상표'와 같으며, 대하 왕조 건축 양식을 규명하는 데 중요한 증거가 된다.

"이는 마치 엉킨 실타래를 푸는 것과 같다"고 묘이페이는 말했다.

 

이런 보강재 나무를 박아 성벽을 더 튼튼히 했다고. 얼마나 걱정이 되었으면 이 짓까지 했겠는가?

 
그는 서쪽 성벽 남문과 옹성의 구조적 관계를 명확히 하고, 독특한 도시 건설 기법을 확인했으며, 여러 시대 보수 흔적을 밝혀냄으로써 통만성의 전체적인 배치, 기능별 구역 설정, 그리고 역사적 변화에 대한 향후 심층 연구를 위한 견고한 토대를 마련했다.

글: 장샤오张潇, 시안일보 종합미디어西安报业全媒体 기자; 사진 제공: 섬서성고고연구원
 

좀 이질적인 평기와인데, 다 쓰임이 있으니 이리 만들었을 것이다.
볼짝없이 와당이다.
백자 사발 조각 같음. 원샷? 했나?

 
 
이 통만성은 한국고고학 일각, 如컨대 성곽 연구자 일각이 주목한 데이기도 하거니와, 증축蒸築土城이라는 표현이 저 통만성과 한성도읍 성곽 축조에 같이 보인다 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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