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래 어차피 보고 배운 거라고는 도둑질밖에 없으니, 국립문화유산연구소라 해서 땅 파는 일 말고 뭐 할 줄 아는 게 있는가?
그래서 주구장창 민간에서도 하는 그런 일, 곧 파제끼는 일을 계속하는 중이라, 그 지방에 분산한 국립연구소 중 하나로 서울을 무대로 삼아 한반도 중부 지방을 나와바리 삼는 기관으로 국립서울문화유산연구소라는 데가 있어
본래 암약지는 강화도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강화군에서 쫓까내주는 바람에 그람 잘 됐다. 누가 강화도를 간다더냐? 하면서 잽싸게 짐싸서 서울로 튀어 이름조차 국립강화문화재연구소에서 국립서울문화재연구소를 거쳐 지금은 국립문화유산연구소가 된 데가 어찌하여 강화도도 아니요, 그렇다고 풍납토성도 아닌 경기도로 나와바리 확장을 꾀하게 되었는지
역시나 땅 파는 일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어 어딜 팔까 고민고민하다가 어쩌다 걸린 저곳을 손댄 모양이라

파주에 월롱산이라는 데가 있고 그곳에 터잡은 옛 절터 중에서도 용상사龍床寺가 있던 곳이라 해서 이름이 알려진 곳이 있는 모양이라 이곳을 팠댄다!
저 이름은 영 낯이 설어 한국고전번역원에서 키워드를 돌렸더니 신증동국여지승람 권 제11 / 경기京畿 파주목坡州牧에 마각을 드러내거니와 이곳 불우佛宇, 곧, 절간 코너가 있으니 그에서 이르기를
첫째 금강사金剛寺를 들면서 미라산彌羅山에 있다 하며, 둘째 상양사上陽寺를 들었으니 주석한 데는 백운산白雲山이라 하며, 셋째 호명사虎鳴寺를 들었으니 반룡산蟠龍山에 있다 한다.
그 네 번째 등장 불교 사찰이 바로 용상사龍床寺라, 그에 신증이 주석하기를 월롱산月籠山에 있다 하면서 다시 부연하기를 "항간에 전하기로는 고려 왕이 일찍이 피란하다 이곳에 주필駐蹕했으므로 마침내 이 이름을 얻었다"고 하거니와 그래 이름만 보면 용상에 앉았다 할 때 그 용상이니, 저런 지명 유래 설화가 있다 하겠다.

덧붙이건대 이 파주목에는 신증 편찬 당시까지만 해도 저 네 곳 말고도 용발산龍發山이라는 데 터 잡은 영은사靈隱寺라는 사찰도 하나 더 들었다.
이로써 보건대 당시 파주목에는 국가에서 허가한 공식 불교사찰로는 모두 다섯 곳이 있었던 셈이다.
저 용상사가 왕이 피난길에 잠시 들른 곳이라 하지만, 막상 고려사나 고려사절요를 보건대 저 이름 사찰이 도무지 보이지 아니한다.
피난할 때 들렀다면, 그 후보군이 현종 아닐까 하는데, 글쎄다, 저 지점은 꼭 피난길이 아니라 해도 개성과 당시 남경(지금의 서울)을 오가는 길목에 위치하니, 그 고속도로변에 산재한 고속도로 휴게소 중 하나였으리라.
왜 저곳을 골라 팠는지 알 수는 없지만, 혹 같은 파주 지역 그런 왕립호텔 겸 고속도로 휴게소로 고고학 발굴을 통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혜음원지에 견주어 우리도 그런 것 하나 골자잡자 해서 고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퍼뜩 든다.
[계속 말하지만 나는 이제 국가기관이 삽자루 들고 직접 발굴하는 일 때려쳐야 한다고 본다. 왜 국가가 삽자루 들고 발굴한단 말인가? 발굴 서비스업으로 전환해서 민간에선 도저히 엄두도 내지 못하는 일, 곧 잔류물 분석이나 dns 단백질 동위원소 분석 같은 일 서비스해야 한다고 본다!]
암튼 이르기를 오는 15일 오후 2시 파주시 월롱면 덕은리 산138 일대에 산재하는 저 발굴현장에서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조사성과를 공개하는 현장 설명회를 개최한다 하면서, 우리가 직접 파보니 이렇더라 하는 내용을 보도자료를 작성해 오늘 배포했더랬다.
저 현장에는 같은 이름을 표방한 현대 불교 사찰이 있는 모양이다.
저네들에 의하면 계우 신증에 이름 한 번 들이밀고 마는 이 절은 2010년 불교문화유산연구소가 실시한 폐사지 조사 사업을 통해 그 추정할 만 데가 확인됐다 하면서, 이를 토대로 서울연구소는 2024년 이래 현재까지 해당 지점에서 연차 조사를 벌인 모양이다.
이를 통해 고려 시대 이래 조선시대에 걸쳐 만들거나 운영한 건물터와 퇴수대退水臺, 금강령金剛鈴를 확인 혹은 수습함으로써 이곳이 절터임을 확인했다 한다.
조사 결과 이 절터는 월롱산 정상과 인접한 북동쪽 계곡 지점에다가 깎고 쌓아 축대를 만들어 평탄 대지를 단을 지어 만든 다음 건축물도 올리고 한 모양이라, 산 기슭에 건물 세우려면 이렇게밖에 더 하겠는가?

항용 이럴 때마다 한국 고고학과 미술사는 자연과의 조화 운운하거니와 솔까 기술이 없어 그딴 식으로 만들지 기술이 있었으면 쏵 밀어버리고 시멘트 깔아 철근콘크리트로 지었지, 미쳤다고 걸핏하면 화마에 날아가고 겨울이면 시베리아 삭풍이 쏵쏵 스며드는 목조 건축물을 지었겠는가?
암튼 저런 양상을 조사단은 "주변 암반과 자연지형을 최대한 활용하여 조성되었"다 하거니와, 이제 이런 말 쓰지 말아야 한다.
현재까지 건물터 세 채랑 기단일 법한 단壇 시설, 기타 돌 건축물에다가 담장 흔적과 퇴수대, 아궁이, 구들, 성격 미상 구덩이와 같은 부속시설을 확인했다 하거니와
건물들은 그 양상이나 출토 유물 꼴로 볼 적에 고려시대에 처음 등장하고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죽죽 사용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한다.
눈에 띄는 시설물로 퇴수대를 꼽았거니와, 말 그대로는 물을 물리는 시설이어니와 공양하는 물을 버리는 곳으로 천수통天水筒, 청수통靑水筒, 아귀구餓鬼口, 아귀발우餓鬼鉢盂 등으로 일컫는다 하는데 글쎄다 나는 내가 그토록 문헌은 많이 봤지만 이 퇴수대는 영 낯이 설기만 하다.
건물터 아래 남은 돌무지 줄 앞쪽에서 발견된 이 퇴수대는 "가장자리에 석재를 두르고 내부에 기와 조각을 채워 넣은 직사각형의 구조로, 장수 개안사지, 강진 월남사지 등 사찰 건물지에서 발견된 것과 유사한 형태를 띠고 있다" 하거니와 그래서 퇴수대인가?
나는 몰라서 일단 저 판단을 물린다.
특수 기종 상감청자 조각들과 더불어 분청사기, 백자, 기와 물품이 무수히 발견된 모양이라, 딱 보면 청자 쓰는 고려시대 이래 분청사기 쓰는 조선초기를 거쳐 죽죽 사찰이 운영됐다! 이 뜻 아니겠는가?
파주에 저 사찰이 있었다면 이이나 성혼 같은 사람 문집 같은 데서 저 사찰이 보일 만도 한데 왜 등장 안하는지 도통 모르겠다.
나아가 이번 조사에서는 절터 동쪽 구덩이에서 금속유물을 일괄 매납한 상태가 발견됐다 하거니와, 매납한 금속유물로는 금강령, 청동등잔대, 청동숟가락, 철제가위 등으로 조선전기 작품으로 추정되는 금속기들이라 하거니와, 이게 소위 퇴장 유물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저런 금속기들은 본래는 녹여 다시 쓰야 하지만, 부처님을 봉양하던 물품이라 그리 하지 못하고 저와 같이 사람 시신 매장하듯이 따로 모아서 장사지낸 것이다.
이런 점들은 내가 주구장창 주창하고 발굴 현장 곳곳에서 확인되지만, 콧방귀도 안뀌다가 이제서야 한두 사람 쳐다 볼지도 모르겠다.
연구소는 이런 발굴 성과를 2011년 국방문화유산연구원 발굴조사를 통해 고려~조선시대 건물지 5동과 기단석열, 구들, 배수로, 담장 등 확인된 같은 파주 지역 월롱면 덕은리 산134번지 일원 소위 덕은리 유적을 비롯한 주변 유적과 비교 검토를 통해 파주 용상사지 성격을 더욱 명확히 구명하기 위한 연구를 지속할 예정이라 하는데 뭐 할 것도 없는데?
현장은 누구나 관람 가능하고, 누구나 질문 공세 퍼부어 조사단 괴롭혀도 된다. 왜? 국민이 낸 세금으로 운영하는 현장이기 때문이다.
궁금한 분들은 국립서울문화유산연구소(☎02-739-6926)로 열라 문의하셔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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