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군대4 일본 무가武家 "나노리 名乗り"는 기원이 한반도인가 나노리 名乗り라는 일본 무가武家 전래의 전통이 있다. 그 정의는 다음과 같다. 名乗り(なのり)とは、戦において武士が味方や敵に向かって自分の姓名・身分・家系などの素性、戦功、戦における自分の主張や正当性などを大声で告げること。武士の作法として、名乗りが行われている間に攻撃することは良しとされなかった。戦場では自分の勇名や戦功を喧伝するためなどに行われ、味方の士気を上げるためや相手方の士気を挫いたり挑発するためにも行なわれた。 간단히 말하자면 싸움 전에 상대편에 관등 성명을 대는 것이다. 나는 누구누구의 자손 누구인데 어쩌고.. 하는 것인데 이건 상대편 들으라고 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우리편, 정확히는 자신에게 상을 내릴 사람 들으라고 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 상대편 성을 공격할 때 선착하면 마찬가지로 나노리를 한다. 내가 누군데 누구 성.. 2022. 12. 14. 인더스문명은 평화로왔던 지상천국인가 (3) 신동훈 (申東勳·서울대 체질인류학 및 고병리연구실)이번 회에서는 하라파 문명의 특이함을 설명하는 여러가지 이야기 중 한가지-. 인더스문명은 전쟁이 거의 없었으며 정예화된 군대도 없는 사회였다는 주장에 대해 좀 써보기로 한다. 인더스문명이 다른 문명보다 훨씬 평화로운 사회였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이야기 중 하나가 "인더스 문명은 군대와 무력보다는 무역과 종교로 결합된 사회로 지배자는 군인, 황제가 아니라 승려와 같은 집단이었을 것이고 평상시 전쟁도 거의 없었던 사회"라는 것이다. 인더스 문명과 그 사람들에 대한 상상도. National Geographic. 상업과 교역은 인더스문명을 설명하는데 있어 빼 놓을 수 없는 요소이다. 그 근거 중 하나가 제대로 잘 만들어진 무기가 인더스 문명 시기.. 2019. 4. 19. 변경에서 부르는 노래 한시, 계절의 노래(164) 새하곡(塞下曲) 셋째 당 이익(李益) / 김영문 選譯評 황하는 동쪽으로구비구비 흐르는데 전장에 묻힌 원한어느 때나 그칠런가 채염은 잡혀갔다오랑캐 노래 지었고 소무는 귀환할 때한나라 부절 보존했네 黃河東流流九折, 沙場埋恨何時絶. 蔡琰沒去造胡笳, 蘇武歸來持漢節. 병역이란 고통스런 일이다. 그 고통의 원인은 강제, 이별, 죽음이다. 군사 업무를 천직으로 여기고 즐겁게 종사하는 사람도 있을 테지만 대개는 어쩔 수 없이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 피동적으로 입대한다. 사랑하는 가족, 연인, 친구와는 보고 싶어도 만날 수 없다. 모든 시간은 자신의 관리 아래 있지 않다. 훈련은 적과 싸워 이기기 위한 살상 기술 습득에 집중되고, 이 때문에 군대는 늘 죽음의 분위기에 덮인다. 이런 고통.. 2018. 9. 3. 열다섯에 군대 끌려갔다 여든에 돌아오니 전쟁이란 그때나 지금이나 기댈 곳 없는 이른바 서민이나 민중에게는 더욱 고통스런 일. 있는 놈은 장교로 가거나 빠지고 없는 놈들만 졸따구로 끌려가 고생 열라게 하는 법이다. 있는 놈들이며 장교들이야 전쟁은 출세를 위한 절호의 찬스지만, 힘없고 백 없는 서민들은 그럴 기회도 거의 없을뿐더러, 설혹 그런 기회를 발휘한다고 해서 그것이 눈에 쉽게 뛸 리 만무했다. 중국사에서도 한국사에서도 대체로 군대 징집 기간은 3년이었다. 하지만 말이 3년이지 이게 제대로 지켜진 경우는 없다. 고대 중국, 특히 한대漢代는 북방 오랑캐 흉노匈奴에 내내 골머리를 앓았다. 강온 양면 전략을 끊임없이 구사했으나, 늘 흉노에 시달렸다. 호로胡虜 새끼라는 말은 이미 전한前漢 시대에 등장하는데 흉노를 경멸하는 말이었다. 얼마나 흉노가 .. 2018. 2. 27. 이전 1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