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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금갑17

[사금갑射琴匣을 심판한다](10) 점필재로의 여행 이 사금갑이 왜 그리 사람들 입에 회자했는지 나는 그 이유를 모르겠다. 단순히 재미있어서? 그런 측면이 분명 있을 것이다.무엇보다 왕비 혹은 궁주의 불륜이라 하지 않는가? 하지만 이걸로 끊임없이 회자하는 인기 비결을 다 설명할 수는 없다고 본다.그렇다고 환타지성이 특히 뛰어나다 할 수는 없으니, 어찌 보면 조금은 무미건조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예서 또 한 가지 짚고 넘어갈 대목은 이 이야기가 왜 삼국사기에는 수록되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다.말로는 유가적 합리주의에 투철한 김부식을 비롯한 삼국사기 편찬진이 이런 이야기를 그닥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으니,이는 이규보가 삼국사기 이전 삼국시대 통사인 이른바 구삼국사를 구해다가 읽고선 동명왕편을 지으면서 그 비스무리한 이야기도 한 적 있으니 전.. 2025. 2. 1.
[사금갑射琴匣을 심판한다](9) 삼국유사 부조리를 완벽히 극복한 삼국사절요와 동국통감 그렇다면 저와 같은 삼국유사 사금갑 이야기 부조리가 삼국사절요와 동국통감은 어찌 처리되었는가? 미리 이야기해 둘 것이 있는데, 이건 아마 차후 논할 기회가 있겠지만, 절요와 통감도 실상 다른 사서다. 흔히 말하기로는 절요를 통째로 들어다가 통감 앞부분에 배치했다 하지만, 둘 사이에도 미묘한 차이들이 관찰된다.다만 사금갑 사건은 두 사서가 같다. 내가 한 글자 한 글자 다 비교한 것은 아니지만 백퍼 같다고 보아 대과가 없다.절요와 통감은 앞서 이야기했듯이 사금갑 사건이 발생한 시점을 아예 비처왕 곧 소지왕 재위 10년 488년 1월 15일, 정월 대보름으로 못박았으니 이 점이 삼국유사의 그것과는 왕청나게 다름을 지적했다.아무튼 절요와 통감은 정월 15일 사금갑 사건이 있었다고 하면서 그에서 비롯하는 세시풍.. 2025. 2. 1.
[사금갑射琴匣을 심판한다](8) 부조리한 삼국유사 삼국유사 저 사금갑 사건 기술이 얼마나 불합리한지 설날 명절이니 그와 관련한 예를 들어 설명한다.A와 B는 결혼 20년차 부부다. 2025년 어느날 두 사람은 시댁 문제로 대판 싸웠다.결국 둘은 이혼했다.이후 두 사람은 1월 5일과 10일과 15일은 조신하는 날로 삼아 조용히 지냈다.1월 1일은 조심하자는 뜻으로 조신Day로 삼아 찰밥을 지어먹었으니 이것이 풍속이 되었다.C를 이혼궁宮이라 한다.이렇게 기술했다면 독자 어느 누가 이해하겠는가?도대체 부부 싸움, 그리고 그에서 발단하는 1월 5일과 10일과 15일 사이에 무슨 인과관계가 있단 말인가?또 1월 1일은 도대체 무슨 관계란 말인가?나아가 도대체 C는 이혼과 무슨 관계가 있어 이혼궁이라는 이름을 얻었단 말인가?이 말도 안 되는 기술이 삼국유사 사금갑.. 2025. 1. 31.
[사금갑射琴匣을 심판한다](7) 잘못 베낀 삼국유사 삼국유사 기이편이 저록한 사금갑 이야기는 물론 삼국유사 창작은 아닐 것이다. 틀림없이 그 전대 문헌 어딘가에서 가져온 것인데, 그것이 무엇인지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 수이전殊異傳 같은 것일 수 있지만, 그것이 망실된 지금 정확한 사정을 알 길은 없다. 아무튼 삼국유사 창작이 아닌 것만은 명백하며, 그것이 참조했을 원전, 혹은 선대 문헌을 편의상 여기서는 A라 해둔다. 더불어 그렇게 해서 성립한 삼국유사 사금갑 이야기를 B라 지칭해둔다. 이 삼국유사 사금갑은 실은 2부로 구성된다.앞에서 인용한 사금갑 사건 개요, 그러니깐 신라 비처왕, 곧 소지왕이 천천정이라는 데로 행차했다가 무슨 계시를 받고서 자신의 궁주宮主가 내전에서 일하는 승려랑 바람이 난 사실을 알고는 그들을 즉결처분해서는 죽여버렸다는 것이 1부.. 2025. 1. 30.
[사금갑射琴匣을 심판한다](6) 두 명 혹은 그 이상의 소지왕비 앞서 조선시대 지식인들은 삼국사를 논할 때 모두가 동국통감을 읽었다 했거니와, 그런 까닭에 신라사를 논할 적에 이 사금갑 사건을 대서특필하면서 그네들 모두가 내전분수승과 불륜하다 들켜서 복주된 비처왕 곧 소지왕의 여인을 왕비로 보았지, 후궁 중 한 명인 궁주宮主로 보지 않았다.왜 그런가 하면 삼국유사에서는 궁주라 했지만, 삼국사절요와 동국통감에서는 아예 왕비로 못을 박은 까닭이다.나아가 이 사건이 발생한 날짜가 삼국유사에서는 언급이 없지만, 정월 15일로 이해한 것 또한 절요와 통감에서 비롯한다는 말을 했다.조선후기 안정복이 동사강목이라는 대작을 기획하면서 소지왕 10년, 서기 488년을 기술하면서 아예 저 사건으로 복주된 여인이 당시 소지왕비 선혜善兮라고 못을 박은 까닭이 바로 이에서 말미암는다. 왜 .. 2025. 1. 29.
[사금갑射琴匣을 심판한다](5) 정월 15일은 절요와 통감 논술이다 삼국유사 역주본으로 국가기관에 의한 웹서비스까지 장착하는 바람에 가장 널리 활용되는 것이 한국학중앙연구원, 옛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판이라 할 수 있거니와, 이에는 당시까지 거의 모든 관련 연구성과를 집약했다 할 만한 노작이다. 그에서 사금갑을 역주하면서 저 사금갑 사건 발단이 되는 무대 천천정天泉亭과 관련해 다음과 같은 주석이 있다. 현재 천정정이 어디에 있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신증동국여지승람≫ 권21 경주부 고적조에는 신라 소지왕 10년 정월 15일에 왕이 천정천에 행차하였다고 하여 ≪삼국유사≫의 기사보다 자세한 날짜를 기록하고 있다. 반면 ≪삼국사기≫에는 이와 관련된 구체적인 언급이 없다. 명색이 역사로, 고대사로 밥을 빌어먹고 산다는 자들이 아무도 삼국사절요와 동국통감을 아무도 보지 않았다고 내가.. 2025. 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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