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산릉2 산릉山陵을 구현하는 방법이 다른 백제와 신라 대략 4~6세기 동시대 왕릉 혹은 왕릉급 무덤을 비교하면 백제와 신라는 저렇게 대별할 수 있겠다는 말을 여러 번 했으니, 다시금 간단히 정리하면 백제가 구릉에 가까운 산을 파고 들어가 묻으면서 봉분은 있는둥마는둥 하고 마는 반면 신라는 평지에다가 거대한 봉분을 인공으로 쌓아 만든다. 그래서 그 무덤 자체를 비교하면 크기가 비교가 되지 않으리만치 신라 쪽이 압도적으로 크고, 그만큼 껴묻거리도 많을 수밖에 없다. 왜? 산을 파고 들어가서 신라만한 규모로 무덤을 만드려면 얼마나 많은 공력이 더 필요하겠는가? 한데 우리가 잊은 점이 있다. 백제의 무덤을 논할 때 그 배경이 되는 산을 곧잘 망각한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저 산이 있음으로써 저 산을 포함하는 전체 구역이 묘역墓域이 되는 것이며, 그런 묘역이 바로 다.. 2024. 1. 21. 거대한 암반을 뚫어 만든 서한시대 중산국왕 유승劉榺 부부묘 만성한묘滿城漢墓 이하는 November 25, 2017 짧은 글이다. 문구는 약간 손질한다. 나는 앞서(이런 글들은 추후 하나씩 공개로 부치려 한다) 위만조선시대 위만급에 해당하는 제후 혹은 그 제후국 권력자 무덤이 산릉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제 앞서 말하는 남월왕묘南越王墓, 마왕퇴 한묘馬王堆漢墓와 동시대 또 다른 제후국 혹은 그에 버금하는 최상위 권력자 무덤을 소개함으로써 내 말은 어길 수 없는 메시아의 언설과도 같다는 사실을 다시금 강조하고자 한다. 하북성 만성한묘滿城漢墓다. 위만과 남월국과 마왕퇴 한묘와 역시 동시대, 그러니깐 기원전 2세기 전·중반 이 일대를 지배한 제후국왕 무덤이다. 위만조선?평양에 없다는 말이 아니다. 평양만 아무리 쳐다봐라 답 안나온다는 뜻이다. 위만조선 찾으려면 마왕퇴 한묘를 찾아 호남성.. 2019. 11. 25. 이전 1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