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송자대전4 헌책방의 잊혀져 가는 책들 그리고 송자대전 요즘 헌책방에 가 보면 긴장감이 팽팽하다. 물론 제대로 운영되는 헌책방의 경우인데 서울 시내에서도 이름 난 헌책방은 가 보면수년에서 수십년 험난한 독서계를 버틴 연륜이 있어정말 쟁쟁한 책들만 책꽂이에 남아 있다. 아무도 안 읽을 거 같은 책은 별로 없다. 그런 책들은 이미 다 폐기되어 사라졌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런 책이 왜 나왔나 싶은 방만함은 신간서적을 파는 책방에 있다. 앞에서 필자는 20세기 이전 전적의 번역 이야기를 했다. 20세기 이전의 번역은 이렇게 수십년 경쟁에서 살아 남은 전적을 대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가? 아니면 20세기 이전에 우리 조상이 남긴 글이라는 이유로 면죄부를 받고 차별없이 번역이 이루어지고 있는가? 필자가 보기엔 현재 번역이 되어 나오는 글들 중에는 2025년 현재 헌책방에.. 2025. 2. 21. 조선은 학자들이 현실 참여를 안해 망한 것이 아니다 조선은 소위 자칭 학자들이 현실참여를 안해 망한 것이 아니다. 그 반대다. 학자도 아니고 정치인도 아니고 관료도 아닌 어느 쪽으로 봐도 함량미달인 지식인을 양산했던 것도 17세기 이후 조선이라는 사회를 아마추어 수준에 머물게 한데 크게 공헌했다. 일본 최초의 근대적 해부번역서 해체신서解体新書를 쓴 스키타 겐파쿠杉田玄白(1733~1817)는 그 책에서 이렇게 외쳤다. "이 책(해체신서)을 읽는 사람은 마땅히 그 면목을 고쳐야 한다. 옛 관습에 빠져 내장과 뼈에 대한 한의학 설과 차이가 나는 것을 보았으면서도 다만 의심할 뿐 망설였으니...결국 분명하게 알 수 없었기에 끝내는 지리멸렬하게 되었다....그런 까닭에 진실로 그 면목을 고치지 않는다면 그 방에 들어갈 수가 없는 것이다. 오호라! 사람들 중에는 유.. 2024. 9. 9. 아버지 장송도 하기 전에 장가 간 화원 김명국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 1607-1689)이라고 하면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분이 많을 줄로 알지만, 그를 빼놓고 조선 중~후기 역사를 논할 수 있을까? 이는 정치사나 학술사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실제로 그가 남긴 글을 읽어보면 여러 방면에 걸친 꽤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이 실려있다. 권33에 실린 편지 한 통도 그에 속한다. 1659년 시남市南 유계(兪棨, 1607~1664)에게 보낸 글이다. 이때 송시열은 이조판서(지금으로 치면 행정안전부 장관?)였고 유계는 병조참지(지금으로 치면 국방부 국장?)였다. ... 또 한 가지 일이 있네. 저번에, “북부北部에 윤리倫理를 거스른 사람이 있는데도 부관部官이 적발하여 보고하지 않았으니, 이는 직책을 다하지 못한 것이다…….”라 한 말을 듣고, 그 허실虛實을 .. 2022. 7. 17. 석봉 글씨에 우암이 부친 글 우암 송시열(1607-1689)의 제자 나양좌(1638-1710)가 어느 날 석봉 한호(1543-1605)의 글씨를 스승에게 가지고 왔다. 대대로 내려온 것이라면서 몇 자 발문을 적어주십사 하고 내밀었는데, 우암은 다음과 같은 글을 지어준다. 석봉石峯의 글씨는 집집마다 소장되어 있었으나, 이제 와서 시대가 조금 멀어지고 또 여러 차례 병화兵火를 겪고 보니, 점차 처음처럼 흔하지 않다. 이번에 나현도羅顯道가 그의 증왕고曾王考 보덕공輔德公이 간직하였던 것을 내보이면서 말하기를, “이는 나의 선고先考 목사공牧使公이 난리를 만나 피란다니면서도, 보덕공이 보배로 여기었다 하여 늘 등에 짊어지고 다닌 때문에 지금까지 보존되었습니다.” 하였다. 아, 그 보수保守가 여기에 이른 것은 이 어찌 조상을 애경愛敬하는 일단一.. 2021. 5. 15. 이전 1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