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유길준4 국사편찬위원회, 유길준 자료 DB 고도화 서비스 국사편찬위원회 공지라 그네가 유길준 자료 DB 고도화를 실현하고 이를 서비스한다는 내용이라.유길준은 한국 근대화 과정에서 워낙 중요한 인물이라, 요긴한 자료라 하겠다.유길준兪吉濬(1856~1914)은 한국 최초의 일본·미국 유학생이자 갑오개혁을 주도한 지식인이다. 유길준 자료 DB는 유길준의 대표 저작인 『서유견문西遊見聞』을 비롯해, 『유길준전서兪吉濬全書』(전5권, 1971)에 수록된 자료들과 유길준의 유족이 고려대학교 박물관에 기증한 자료들을 아우른다.특히 고려대학교 박물관 소장자료는 『유길준전서』에 수록되지 않은 원고를 다수 포함한다.2025년 국사편찬위원회는 유길준 자료 DB의 텍스트 자료 130여 종과 목록 정보를 신규로 구축하고 원문이미지도 연계했다고.요새 국편이 하는 일이 더 맘에 든다. 이.. 2026. 5. 11. 일본에서 쓴 유길준이라는 인물의 필적 개화의 시대, 별처럼 빛날 수 있던 선각자들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그 대부분은 아예 빛날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스러졌거나, 초신성마냥 잠깐 반짝이고 사라질 뿐이었다. 구당矩堂 유길준兪吉濬(1856-1914), 그도 분명 선각자였다. 재동 백송 그늘 아래에서 배운 개화파였던 그는 당시 조선의 누구보다도 세계가 돌아가는 정세에 밝았다. 그러면서 자신의 생각을 적은 저술을 남겼고, 잠깐이나마 경륜을 펼칠 기회도 얻었으니 다른 이에 비하면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하지만 그 때문에 친일파라는 굴레에서 자유롭지만은 않게 되었으니 역사란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남작 작위를 반납한 덕인지 에는 들어가지 않았지만. , 일본과 미국 유학, 조선 중립화론, 갑오개혁의 선봉장, 일본 망명과 귀국, 한성부민회 회장...... 2024. 1. 13. 측량, 빗금에서 라인으로 근대는 빗금에서 선으로의 이동이다. 측량은 선을 긋고 경계를 수치화하는 핵심 중의 핵심이다. 왜 유길준이 측량 학교를 세웠겠는가? 측량없이 선을 그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근대 이전에도 경계는 있었다. 하지만 그 경계는 언제나 빗금이라 언제나 그 빗금의 소유권을 둘러싼 논쟁이 발생했다. 측량을 도입하고 그것을 실제로 적용한 곳이 토지조사사업과 산림조사사업이었다. 이 사업이 실시되고 그것이 적용됨으로써 조선왕조 500년을 옥죈 산송이 비로소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 저 두 사업으로 조선총독부가 토지와 산림을 수탈했다는 신화가 자리잡았지만 실은 정반대였다. 토지 산림 수탈은 금을 긋지 않은 상태에서 빗금으로만 존재하던 구역에서 늘 발생한다. 수탈은 전근대에 훨씬 더 많았다. 요즘도 이웃간 담장 구역이 어디까.. 2023. 9. 29. 유길준의 측량학교 근대는 빗금에서 선으로의 이동이다. 프론티어 frontier 와 보더라인 borferline 의 차이거니와 Borderline을 긋기 위한 필요조건이 측량 메저먼트다. 유길준이 하필 측량학교를 세웠겠는가? 수탈? 개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2018. 5. 6) *** 누누이 지적했듯이 근대국가는 측량과 인구센서스 이 둘을 축으로 그릇을 만든다. 측량은 경계의 확정이라 그 경계는 모호함이 없어야 한다. 이 모호함은 빗금에서 탄생하니 그 모호는 선을 그어서 쟁투의 빌미를 차단한다. 이 측량을 기반으로 지도가 완성된다. 인구센서스는 결국 징발을 위한 기초단위다. 세금을 얼마를 거두며 군대 노동력은 어찌 징발할 것인지는 성별 연령별 통계가 있어야 한다. 이를 수탈이라는 측면에서 이해했다. 그 주체가 대한제국이건.. 2021. 5. 6. 이전 1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