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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룡

완당 김정희가 돌아가시매 : 조희룡의 만가 완당학사(阮堂學士)는 壽를 누리기를 71세이니 500년만에 다시 온 분이라네. 천상에서는 일찍이 반야(般若)의 業을 닦다가 인간세(人間世)에 잠시 재관(宰官)의 몸을 나셨네. 하악(河嶽)의 기운 쏟은 적 없으나 팔뚝 아래 금강필(金剛筆)은 신기(神氣)가 있었네. 무고무금(無古無今)한 경지로 별스런 길 열었으니 정신과 재능의 지극함이요 모두 종정운뢰(鍾鼎雲雷)의 문장이라네.   글씨 때문에 문장이 가리운 왕내사(王內史), 그와 천고(千古)..
조희룡이 증언하는 김홍도와 그의 아들 조선후기 최대 화가로 꼽히는 단원 김홍도. 하지만 그 일생에 대해서는 그다지 알려진 바가 없다. 가장 신빙성 있는 기록이 아래에 소개하는 조희룡이라는 당시 사람의 증언이다. 조희룡(趙凞龍·1789~1866)은 김홍도의 아들 김양기라는 사람과 친분이 많았다고 증언하고 있다. 이는 조희룡의 문집 <<호산외기>> 중에 '김홍도전'(金弘道傳)이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다.   김홍도(金弘道)는 字가 사능(士能)이요 號는 단원(..
스스로 눈을 찌른 칠칠이(七七이) 화가 최북(崔北) 최북은 字가 칠칠(七七)**이니 자 또한 기이하다. 산수와 가옥 및 나무를 잘 그리니 필치가 짙고 무게가 있었다. 황공망(黃公望)을 사숙(私淑)하더니 끝내는 자기의 독창적인 의경(意境)으로 一家를 이루었다. 스스로 호를 호생관(毫生館)이라 했다. 사람됨이 격분을 잘 하며 외곬수였으며 자잘한 예절에 얽매이지 않았다.   일찍이 어떤 집에서 한 달관(達官)을 만난 일이 있다. 그 달관이 최북을 가리키면서 주인에게 묻기를 “저쪽에 앉아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