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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철의 잡동산이雜同散異

귀양의 원칙

by 한량 taeshik.kim 2020. 10. 18.



조선은 헌법에 해당하는 《경국대전》이 있었으나, 형전에는 '대명률을 쓴다[用大明律]'라고 하여 형법은 《대명률》을 사용하도록 했다.

그러다 보니 우리 실정에 맞지 않는 것들이 많았다.

대표적인 것이 《대명률》에 따라 3천 리 유배형을 때리면 서울에서 3천 리 먼 곳이 있을 리가 있겠는가. 그래서 이를 조선 실정에 맞게 산정하여 정하였다. (《세종실록》 48권, 12년 5월 15일 갑인)

내가 사는 전라남도에서는 해괴한 유배문화라는 꼴깝 떠는 짓을 하는 작자들이 많던데, 육갑 떨지 마라.

대명률직해에는 이것이 잘 정리되어 있으니 그 번역본을 옮긴다. 맨 아래 [해설]은 번역자들이 붙인 해설이다.

인용하면서 일부 고친 부분이 있다.

《大明律直解》 卷1 〈名例律·徒流遷徙地方〉

조선에서 도죄수ㆍ유죄수ㆍ천사 죄수를 보내는 지방〔徒流遷徙地方〕

도역(徒役)은 각각 도형의 연한에 따라 모두 도배 죄인이 배소(配所)에 도착한 날부터 계산한다. 염장(鹽場)으로 보내지면 매일 소금 3근을 굽고, 야철장(冶鐵場)으로 보내지면 매일 철 3근을 불린다. 별도의 항목을 설정하여 계산한다.

직해【직해(直解)】도역은 각각 도형의 연한을 계산하되 모두 배소에 도착한 날부터 계산한다. 염소(鹽所)에 배치된 자는 매일 소금 3근을 굽고, 취련소(吹鍊所)에 배치된 자는 매일 취련하여 쇠 3근씩을 바친다. 각각 본래 소금 굽는 곳과 쇠를 불리는 곳에 할당된 생산량과 별도의 항목으로 설정하여 상납하도록 한다.

직례(直隷)의 부(府)나 주(州)
직속된 경성(京城)과 경기 좌도ㆍ우도이다.

직해【직해(直解)】발배지(發配地)가 경성일 때 배소가 먼 곳이면 경상도, 중간이면 전라도ㆍ양광도(楊廣道:충청도), 근처이면 서해도(西海道:황해도)ㆍ교주도(交州道:강원도)의 염소나 취련소로 보낸다. 발배지가 서해도이면 경상도의 염소나 취련소로 보내고, 교주강릉도(交州江陵道)이면 전라도의 염소나 취련소로 보내고, 양광도이면 평양삭방도(平壤朔方道)의 염소나 취련소에 보낸다.

유형 3등급은 거리의 멀고 가까움에 따라, 각처의 황무지나 바닷가에 접한 주·현을 배소로 정하고 죄인을 보내어 안치한다.

직례의 부나 주
직속된 경성과 경기 좌도ㆍ우도이다.

직해【직해(直解)】발배지가 경성일 때 먼 곳이면 경상도에 안치하고, 중간이면 전라도에 안치한다. 발배지가 서해도면 경상도에 안치하고, 교주강릉도면 전라도에 안치하고, 양광도면 평양삭방도에 안치한다.

변방 먼 곳에 보내어 충군(充軍)한다.

【직해(直解)】직해【죄인이 경성의 군인일 때 먼 곳이면 경상도에 충군하고, 중간이면 전라도에 충군한다. 죄인이 서해도의 군인이면 경상도에 충군하고, 교주강릉도의 군인이면 전라도에 충군하고, 양광도의 군인이면 평양삭방도에 충군한다.

[해설]
해설
범죄의 구성 요건을 규정한 〈명례율〉과 각칙, 범죄의 효과인 오형은 추상적인 규정으로 되어 있어 《대명률》을 조선에 시행할 수 있으나, 배소(配所)까지 그대로 시행할 수는 없으므로, 도배 죄인ㆍ유배 죄인 등의 배소를 죄인의 거주지 혹은 근무지를 기준으로 삼아 명률과 달리 규정하는 일은 불가피한 일이었을 것이다. 《대명률》에서 정해 놓은 유 3000리ㆍ유 2500리ㆍ유 2000리 등은 조선의 실정에 맞지 않으므로 세종 때 각 도를 기준으로 유배지를 다시 정하였다. 조선은 중국과 영토의 크기가 다르므로, 《대명률직해》에서는 도형ㆍ유형ㆍ천사하는 지방을 규정한 본조를 조선 실정에 맞도록 밝히고자 다시 한번 더 두었고, 1430년(세종12)에는 다음 표와 같이 보다 상세한 시행 규정을 만들었다.(《세종실록》 48권, 12년 5월 15일 갑인)

《대명률》의 원래 내용은 아래 링크에서 볼 수 있음

http://db.history.go.kr/law/item/level.do?levelId=jlawb_180_0010_0470&position=3

조선시대법령자료 | 한국사데이터베이스

○徒流遷徙方 徒役, 各照所徒三限, 竝以到配所之日爲始, 發鹽場者, 每日煎鹽三斤, 鐵冶者, 每日炒鐵三斤, 另項結課此專指壯丁罏戶言犯罪者仍發各場冶煎鹽炒鐵不在原辦本等正額課數之內謂之

db.history.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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