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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추천하는 《손자병법》 시중에 《손자병법》이라면 수십 종이 나와 있다. 해방 이후를 기준으로 해서 절판된 것까지 합치면 족히 백종은 넘으리라. 이 정도로 시대를 막론하고 줄곧 스테디셀러 위치를 양보하지 않은 고전은 드물다. 동양고전 중에선 《논어》나 《노자》보다 외려 번역 종수가 많을지도 모르겠다. 읽는 재미야 《장자》가 쏠쏠하나, 분량이 방대한 까닭에 생각보다 번역 종수가 많지는 않다. 《손자병법》이 《논어》와 《노자》에 비견하는 고전 반열에 오른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로 분량 문제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 그리 도탑지 않은 단행본 혹은 문고본 1권 분량으로도 너끈한 까닭이다. 단군조선 이래 이런 책은 없었다. 《손자병법》은 전통적으로 군사학, 혹은 전쟁학 고전이라 해서 군인 혹은 그와 비슷한 직업에 종사하는 자들.. 2018. 3. 15.
초기 신라의 소국 정벌 신라 성장사는 곧 무력 정벌항쟁의 역사였음을 엿본다. 특히 초기 신라사를 볼 적에 주변 소국 정벌이 매우 활발했다. 신라가 초기 역사에서 자국 영토로 편입한 주변 소국으로는 다음이 보인다. 아래는 추후 보강할 대목이 적지 않다. ① 우시산국(于尸山國)·거칠산국(居柒山國) : 탈해니사금(57∼79 AD) 거도(居道)는 탈해니사금(脫解尼師今) 때(재위 57∼79 AD)에 벼슬하여 간(干)이 되었다. 그때 우시산국(于尸山國)과 거칠산국(居柒山國)이 이웃 지경에 개재(介在)하여 자못 나라의 근심이 되었는데…이에 병마를 출동해 쳐들어가 두 나라를 멸했다.(《三國史記》권 44, 列傳 4, 居道) 台植案 : 둘 다 山이라는 표기가 들어가 있어, 그러한 산을 낀 지역에 자리잡은 소국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강하게 준다... 2018. 3. 15.
湖北京山苏家垄遗址考古收获 湖北京山苏家垄遗址考古收获2018-03-14 方勤 胡长春 等 社科院考古所中国考古网....2014~2015年对墓地进行了大面积勘探,发现上世纪出土9鼎7簋的沟渠两边南北岗地均分布有墓葬,其中南部岗地探明墓葬106座、车马坑9座(图二)。2015~2017年对南部岗地进行发掘,至目前已清理墓葬101座、车马坑2座(封二),具体年代为两周之际至春秋早中期之际。墓葬多为东西向,长度多在3~5米,年代上有由北向南渐晚的趋势,墓葬之间不见打破关系,较大墓葬沿岗地脊顶排列,1966年清理的九鼎墓M1以及本次发掘的M60、M79等五鼎规格大墓即从北到南分布在山脊上,小墓则在两侧分布,反映了较为严谨的墓地布局。墓葬保存完好,几乎没有被盗,均为竖穴土坑墓,葬具保存状况不佳,主要为一椁一棺。随葬品多放置在棺椁之间,以青铜器为主,目前已发现青铜礼器500余件。青铜礼器放置有序,组合关系明确。小型墓如.. 2018. 3. 14.
사진 달라는 사회 어제다. 느닷없이 사진쟁이 오세윤 작가가 서울에 나타났다. 내가 매번 경주에 갈 때마다 이런저런 신세를 지는 고향 김천 형이다. 서울시인지 종로구인지 암튼 공공기관 어디에서 사진 용역을 받은 모양인데, 그 작업 중 하나로 수송동 조계사를 촬영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 잘 됐다. 우리 공장 옥상이 내려찍을 만하니, 그쪽으로 안내하겠다 해서 이 장면이 있게 되었다. 몇 년 전 재건축한 연합뉴스 수송동 사옥은 17층. 총 높이는 79m인가로 기억한다. 오 작가가 난간에 걸친 이 지점은 75m가량 되려나? 물론 이런 경험 많으니, 널찔 염려는 그닥 내가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안전사고 위험은 언제나 있기 마련이다. 오 작가처럼 사진을 전업과 직업으로 하면서 처자식 먹여살리는 사람들한테 저 정도 작업쯤은 위험 축.. 2018. 3. 14.
카이사르에서 시저로, 시저에서 짜르로 우리가 잘 아는 줄리어스 시저는 말할 것도 없이 라틴어가 모국어다. 현대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프랑스어 직접 조상이다. 시저 시대 문맹률은 압도적으로 높기는 했지만, 시저를 필두로 하는 식자층은 문자 기록 시대라, 우리한테 익숙한 그 라틴 알파벳으로 편지를 쓰고, 논문을 쓰고, 책을 썼다. 시저 풀네임은 라틴어 표기가 Gaius Iulius Caesar이다. 그가 정복한 땅 중에 Britannia가 있으니, 이는 곧 Britain, 영국을 지칭하는 고전시대 라틴어 지명이다. 나아가 그와 더불어 그나이우스 폼페이우스 마그누스와 함께 제1차 삼두정치를 형성한 로마 장군이 있어, 마르쿠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Marcus Licinius Crassus다. 근자 천병희 선생 옮김 타키투스 《게르마니아.. 2018. 3. 14.
거등왕(居登王) 금관가야 제2대 왕이다. 김수로와 허황옥 사이에 난 아들이다. 화랑세기 유신공 전 : 금관가야는 수로청예왕(首露靑裔王)에서 비롯하였는데 황룡국(黃龍國)의 여자인 황옥(黃玉)을 아내로 맞아 거등(居登)을 낳았다. 거등은 천부경(泉府卿) 신보(申輔)의 딸 모정(慕貞)을 아내로 맞아 마품(馬品)을 낳았다. 삼국유사 권 제1 왕력 : 제2대 거등왕(居登王)은 수로(首露) 아들이며 어머니는 허황후(許皇后)다. 기묘년에 즉위해 55년을 다스렸다. 김씨다. 삼국유사 제2권 기이(紀異) 제2 가락국기(駕洛國記) 조 : 그 해에 왕후는 곰을 얻는 꿈을 꾸고 태자 거등공(居登公)을 낳았다. 영제(靈帝) 중평(中平) 6년 기사(己巳·189) 3월 1일에 왕후가 죽으니 나이 157세였다...왕후가 죽자 왕은 매양 외로운 베개.. 2018. 3. 14.
신보(申輔) 금관가야 김수로왕비 허황후를 따라 온 잉신 중 한 명. 그의 딸이 2대 거등왕의 비가 되어 3대 마품왕을 낳았다. 삼국유사 제2권 기이(紀異) 제2 가락국기(駕洛國記) 조 : 건무(建武) 24년 무신(戊申; 48) 7월 27일에 구간(九干) 등이 조회할 때 말씀드렸다. “대왕께서 강림(降臨)하신 후로 좋은 배필을 구하지 못하셨으니 신들 집에 있는 처녀 중에서 가장 예쁜 사람을 골라서 궁중에 들여보내어 대왕의 짝이 되게 하겠습니다.” …유천간 등이 돌아가서 왕후의 말을 전달하니 왕은 옳게 여겨 유사(有司)를 데리고 행차해서, 대궐 아래에서 서남쪽으로 60보쯤 되는 산기슭에 장막을 쳐서 임시 궁전을 만들어 놓고 기다렸다. 왕후는 산 밖 별포(別浦) 나루터에 배를 대고 육지에 올라 높은 언덕에서 쉬고, 입은 .. 2018. 3. 14.
진제(珍堤) 신라 진평왕 때 아첨 잘하는 관료. 강직한 상관 실혜를 모함해 지방 관리로 좌천시켰다. 삼국사기 권 제48(열전 제8) 실혜 열전 : 실혜(實兮)는 대사(大舍) 순덕(純德)의 아들이다. 성격이 강직해 의가 아닌 것으로는 굽힐 수 없었다. 진평왕 때 상사인(上舍人)이 되었는데, 그때 하사인(下舍人) 진제(珍堤)는 그 사람됨이 아첨을 잘해 왕의 총애를 받았다. 비록 실혜와 동료였으나 일을 하면서 서로 옳고 그름을 따질 때면 실혜는 바름을 지켜 구차스럽지 않았다. 진제가 질투하고 원한을 품어 왕에게 여러 번 참소했다. “실혜는 지혜가 없고 담력만 있어 기뻐하고 성냄이 급하며 비록 대왕의 말이라도 그 뜻에 안 맞으면 분함을 누르지 못하니 만약 이를 벌주어 다스리지 않으면 장차 난을 일으킬 것입니다. 어찌 지방으.. 2018. 3. 14.
순덕(純德) 삼국사기 권 제48(열전 제8) 실혜 열전 : 실혜(實兮)는 대사(大舍) 순덕(純德)의 아들이다. 성격이 강직해 의가 아닌 것으로는 굽힐 수 없었다. 2018. 3. 14.
실혜(實兮) 신라 진평왕 때 관리로 대사 순덕의 아들이다. 성격이 강직해 아첨하는 동료의 모함으로 영림이라는 지방으로 밀려났다. 스스로를 굴원에 비겼다. 삼국사기 권 제48(열전 제8) 실혜 열전 : 실혜(實兮)는 대사(大舍) 순덕(純德)의 아들이다. 성격이 강직해 의가 아닌 것으로는 굽힐 수 없었다. 진평왕 때 상사인(上舍人)이 되었는데, 그때 하사인(下舍人) 진제(珍堤)는 그 사람됨이 아첨을 잘해 왕의 총애를 받았다. 비록 실혜와 동료였으나 일을 하면서 서로 옳고 그름을 따질 때면 실혜는 바름을 지켜 구차스럽지 않았다. 진제가 질투하고 원한을 품어 왕에게 여러 번 참소했다. “실혜는 지혜가 없고 담력만 있어 기뻐하고 성냄이 급하며 비록 대왕의 말이라도 그 뜻에 안 맞으면 분함을 누르지 못하니 만약 이를 벌주어 다.. 2018. 3. 14.
솔거(率居) 생몰년 미상. 신라인. 화가로 이름이 높아 황룡사 벽화 등을 그렸다 한다.삼국사기 권 제48(열전 제8) 솔거 열전 : 솔거(率居)는 신라 사람이다. 출생이 한미해 그 씨족은 계보가 기록돼 있지 않다. 태어나면서 그림을 잘 그렸다. 일찍이 황룡사 벽에 늙은 소나무를 그리니 줄기는 비늘처럼 터져 주름을 지었고 가지와 잎이 얼기설기 서려 까마귀, 솔개, 제비, 참새 등이 가끔 바라보고 날아들었다가 허둥거리다 떨어지곤 했다. 그린 지가 오래되어 색이 바래자 그 절의 중이 단청을 고쳤더니 까마귀와 참새가 다시는 오지 않았다. 경주 분황사 관음보살과 진주 단속사 유마상(維摩像) 또한 모두 그의 필적이다. 세상에 전해져 신화(神畵)로 여겼다. 2018. 3. 14.
한선(漢宣) 신라 문무왕 15년(675) , 아달성 태수로 관위는 급찬이라는 행적이 확인된다. 삼국사기 권 제47(열전 제7) 소나 열전 : 백제가 멸망한 뒤에 한주(漢州) 도독 도유공(都儒公)이 대왕에게 청해 소나를 아달성으로 옮겨 북쪽 변방을 막도록 했다. 상원(上元) 2년 을해(문무왕 15. 675) 봄에 아달성(阿達城) 태수 급찬 한선(漢宣)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어느 날 모두 나가 삼을 심으려 하니 명을 어기지 말도록 하라”고 했다. 말갈 첩자가 이를 알고 돌아가 자기 추장에게 보고하니 그 날 백성이 모두 함께 성을 나가 밭에 있는 틈을 타 말갈이 군사를 숨겼다가 갑자기 성에 들어가 온 성을 겁탈하니 노인과 어린이가 허둥지둥 어쩔 줄 몰라했다. 소나가 칼을 휘두르며 적을 향해 크게 외쳤다. “너희들은 신라에.. 2018. 3. 14.
금천(金川) 삼국사기 권 제47(열전 제7) 소나 : 소나(素那)는 백성군(白城郡) 사산(蛇山) 사람이다. 그의 아버지 심나(沈那)는 팔힘이 남보다 셌고 몸이 가볍고도 민첩했다. ☞소나(素那) 2018. 3. 14.
성각(聖覺) 신라 하대인 선덕왕 무렵 효자. 청주 사람으로 일리현 법정사라는 곳에서 한때 승려 생활을 했다고 짐작되며, 어머니를 봉양하러 환속해 자기 다리 살을 떼서 드렸다. 삼국사기 권 제48(열전 제8) 성각 열전 : 성각(聖覺)은 청주(菁州) 사람이다. 그의 씨족에 대한 기록이 전하지 않는다. 세상의 명예와 벼슬을 좋아하지 않아 스스로 거사라 칭하고 일리현(一利縣) 법정사(法定寺)에 머물다가 나중에 집으로 돌아가 어머니를 봉양하고자 했으나 늙고 병들어 채소만을 먹을 수는 없으므로 다리 살을 떼내 먹였으며, (어머니가) 죽자 지성으로 불공을 드려 천도했다. 대신(大臣)인 각간 경신(敬信)과 이찬 주원(周元) 등이 이 소식을 국왕께 아뢰니 웅천주 향덕(向德)의 옛일에 따라 이웃 현에서 나오는 조 300섬을 상으로 .. 2018. 3. 14.
소성거사(小性居士) 신라 중대 고승인 원효가 환속한 뒤 스스로 일컬은 이름. 삼국사기 권 제46(열전 제6) 설총 열전 : 설총(薛聰)은 자가 총지(聰智)고 할아버지는 나마 담날(談捺)이다. 아버지는 원효(元曉)이니, 처음에 승려가 되어 불경을 두루 통달하고 얼마 후에 환속해 스스로 소성거사(小性居士)라 했다. 2018. 3. 14.
담날(談捺) 신라 중대 고승 원효의 아버지. 나마를 지냈다. 삼국사기 권 제46(열전 제6) 설총 열전 : 설총(薛聰)은 자가 총지(聰智)이고 할아버지는 나마 담날(談捺)이며 아버지는 원효(元曉)인데, 처음에 승려가 되어 불경을 두루 통달하고 얼마 후에 환속하여 스스로 소성거사(小性居士)라 하였다. 2018. 3. 14.
총지(聰智) 신라 학자로 이름 높은 설총의 字. 삼국사기 권 제46(열전 제6) 설총 열전 : 설총(薛聰)은 자가 총지(聰智)이고 할아버지는 나마 담날(談捺)이며 아버지는 원효(元曉)인데, 처음에 승려가 되어 불경을 두루 통달하고 얼마 후에 환속하여 스스로 소성거사(小性居士)라 하였다. 2018. 3. 14.
강세(康世) 신라 흘해니사금 36년(354) 이벌창에 임명되고, 이듬해 금성까지 침입한 왜국 군대를 침입하자 물리쳤다. 삼국사기 권 제2(신라본기 제2) 흘해니사금 : 36년(345) 봄 정월에 강세(康世)를 이벌찬으로 삼았다.…37년(346) 왜의 군사가 갑자기 풍도(風島)에 이르러 변방 민가를 노략질했다. 또 진군해 금성을 에워싸고 급하게 공격하였다. 왕이 군사를 내어 상대하여 싸우고자 하였으나 이벌찬 강세(康世)가 말했다. 적은 멀리서 왔으므로 그 칼날을 당해낼 수가 없으니, 그것을 늦추었다가 그 군사가 피로해지기를 기다리는 것만 못합니다. 왕이 그렇다고 여겨 문을 닫고 나가지 않으니 적은 식량이 떨어져 장차 물러가려 하였다. 강세에게 명하여 날쌘 기병을 이끌고 추격하여 쫓아버렸다. 2018. 3. 14.
급리(急利) 흘해니사금 2년(311), 아찬에 임명되어 국내 정치와 군사를 총괄했다. 그의 딸이 왜국 왕한테 시집갔으며 몇 년 뒤 아찬으로 승진했다. 삼국사기 권 제2(신라본기 제2) 흘해니사금 : 2년(311) 봄 정월에 급리(急利)를 아찬으로 삼아 정치의 중요한 일을 맡기고 중앙과 지방의 군사 일을 겸하여 맡게 하였다. …3년(312) 봄 3월에 왜국 왕이 사신을 보내 [자신의] 아들을 위해 혼인을 청하였으므로 아찬 급리(急利)의 딸을 보냈다. 5년(314) 봄 정월에 아찬 급리를 이찬으로 삼았다. 2018. 3. 14.
명원부인(命元夫人) 신라 제16대 흘해니사금의 어머니이자 조분니사금의 딸. 각간 우로와의 사이에 흘해니사금을 낳았다. 삼국사기 권 제2(신라본기 제2) 흘해니사금 : 흘해니사금(訖解尼師今)이 왕위에 올랐다. 나해왕의 손자로, 아버지는 각간 우로(于老)이고 어머니는 명원부인(命元夫人)인데 조분왕의 딸이다. 2018. 3. 14.
걸숙(乞淑) 신라 제15대 왕인 기림니사금 아버지로, 조분니사금 아들 혹은 손자다. 삼국사기 권 제2(신라본기 제2) 기림니사금 : 기림니사금(基臨尼師今)이 왕위에 올랐다. 조분니사금 손자로 아버지는 이찬 걸숙(乞淑)이다. . 2018. 3.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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