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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 계절의 노래(73)
절구, 감흥이 일어 끄적이다. 아홉 수(絕句漫興九首) 중 일곱째
당 두보 / 김영문 選譯評
버들 솜 길에 뿌려
하얀 융단 깔아놓고
시내 연잎 동글동글
푸른 동전 겹쳐놨네
죽순 뿌리에 꿩 병아리
보는 이 하나 없고
모래톱 위 오리 새끼
엄마 곁에 잠들었네
糝徑楊花鋪白氈, 點溪荷葉疊靑錢. 筍根雉子無人見, 沙上鳧雛傍母眠.
우리에게 잘 알려진 두보의 대표작들은 실은 내게 큰 감흥을 주지 못했다. 그러나 이 시를 읽고 뜨거운 그 무엇이 치밀어 올라 한동안 목이 메었다. 두보는 천하가 아직 안록산(安祿山)의 난으로 도탄에 빠져 있을 때 이 시를 썼다. 전란 속 성도(成都) 초당의 작은 평화는 얼마나 소중했을까? 버들 솜처럼 떠돌던 생명의 기(氣)는 동글동글 연잎으로 모이고, 다시 더욱 단단하게 뭉쳐 죽순이 된다. 그리고 더 생기발랄한 영기는 꿩과 오리의 병아리로 살아서 생명의 존엄을 말없이 증명한다. 색채는 어떤가? 흩날리는 버들 솜 무채색 천지는 시냇물, 연잎, 대숲이라는 청록의 세계가 되고, 마침내 황금빛 모래톱에서 오리 병아리의 연갈색이나 노란색으로 승화하여 생명의 색깔이 된다. 엄마 곁에 잠든 오리 병아리, 이보다 더 평화로운 그림이 있을까? 하지만 이 화면 밖의 세상은 아비규환의 전쟁터였다. 오늘도 가녀린 생명들은 누구의 눈길도 미치지 않는 곳에서 그렇게 한 세상을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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