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량도(良圖) ☞김량도(金良圖) 2018. 3. 16.
풍훈(風訓) 신라에 의한 일통삼한기 무렵 문장가로서, 김진주 아들이면서 중국에서 숙위 학생으로 있으면서, 설인귀 예하 부대에 소속되어 신라군에 대항했다는 행적만 전한다. 삼국사기 권제7(신라본기 제7) 문무왕 하 : 15년(675)...가을 9월에 설인귀가 숙위 학생 풍훈(風訓)의 아버지 김진주(金眞珠)가 본국에서 처형당한 일을 기화로 풍훈을 이끌어 향도(鄕導)로 삼아 천성(泉城)으로 쳐들어 왔다. 우리 장군 문훈(文訓) 등이 맞아 싸워 이겨 1천4백 명을 목 베고 병선 40척을 빼앗았고, 설인귀가 포위를 풀고 도망가자 전마(戰馬) 1천 필을 얻었다. 삼국사기 권 제46(열전 제6) 강수 열전 : 신라 고기(古記)에 “문장으로는 강수, 제문(帝文), 수진(守眞), 양도(良圖), 풍훈(風訓), 골답(骨沓)이 유명하다”.. 2018. 3. 16.
골답(骨沓) 활동시기와 활동내역을 알 수 없는 신라시대 문장가. 같이 거론된 인물들로 보아 삼한일통기 무렵일 것으로 짐작된다. 삼국사기 권 제46(열전 제6) 강수 열전 : 신라 고기(古記)에 “문장으로는 강수, 제문(帝文), 수진(守眞), 양도(良圖), 풍훈(風訓), 골답(骨沓)이 유명하다”고 했으나 제문 이하는 행적이 전하지 않아 전기를 세울 수가 없다. 2018. 3. 16.
교시요 계시인 상식과 통설 상식 혹은 통설, 이는 항용 열어놓아야 한다.어디를 향해? 의심을 향해 이를 나는 겸손이라 부른다. 상식 혹은 통설이 빗장을 건 상태. 이건 교시요 계시다. 전복해야 한다. 빗장은 부수어야 한다. (2014. 3. 16) 2018. 3. 16.
김유신金庾信 595~673년. 신라 장군이자 정치가로 신라가 백제와 고구려를 멸하고 삼한을 일통한 제1의 원훈공신이다. 화랑세기에서는 그를 '신국의 영웅[神國之英雄]'이라 했다. 금관가야 왕가 직계 후손이자 부계와 모계 모두 신라 왕가 혈통을 이어받았다. 시조가 김수로, 증조가 금관가야를 들어 항복한 구형왕, 조부가 김무력, 아버지가 김서현이요, 어머니는 숙흘종과 만호 태후 사이에서 난 만명부인이다. 아버지 부임지인 만노군(지금의 진천)에서 태어나 15살에 화랑이 되고 18세에 풍월주가 되어 출세 발판을 마련했다. 37세 때인 진평왕 61년(629) 고구려와의 낭비성 전투에서 결정적인 승리를 이끌어 이름을 날렸으며, 이후 종횡무진 전장을 누빈다. 선덕여왕 재위 말년에 일어난 비담의 난을 진압하면서 권력 최정점에 섰으.. 2018. 3. 15.
구근(仇近) 생몰년 미상. 신라의 일통삼한 전쟁기에 김유신을 호종한 군인. 백제 멸망 뒤인 661년, 고구려 정벌에 나선 당군을 지원하고자 군량미 수송에 나선 김유신을 호종하다가 신라군이 위험에 빠지자 렬기와 더불어 특공대를 조직해 평양성으로 들어가 당군과 접선했다. 김유신 사후에는 김유신 아들인 김원정 휘하에서 서원경에 속한 술성이라는 성을 쌓는 일을 감독하기도 했다. 삼국사기 권 제47 (열전 제7) 구근 열전 : 구근(仇近)은 원정(元貞)공을 따라 서원경(西原京)[현재의 충북 청주시]의 술성(述城)을 쌓았는데, 원정공이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일을 게을리 한다 하여 곤장을 때렸다. 구근이 말하기를 “나는 일찍이 열기와 더불어 죽음을 헤아릴 수 없는 곳에 들어가 대각간의 명을 욕되게 하지 않았고 대각간은 나를 무.. 2018. 3. 15.
법민왕(法敏王) 신라 30대 문무왕 본명이 김법민(金法民)이므로, 생전 그의 재위시에는 이렇게 부른 듯하다. 삼국사기 권 제43 (열전 제3) 김유신下 : 그 전에 법민왕(法敏王)이 고구려의 반란한 무리를 받아들이고, 또 백제의 옛 땅을 점거하여 소유하니, 당 고종이 크게 노하여 군사를 보내 치게 하였다. 삼국유사 제2권 기이(紀異) 제2 가락국기(駕洛國記) : 신라 제30대 법민왕(法敏王) 용삭(龍朔) 원년 신유(辛酉. 661) 3월에 왕이 조서를 내렸다. “가야국(伽耶國) 시조(始祖)의 9대손 구형왕(仇衡王)이 이 나라에 항복할 때 데리고 온 아들 세종(世宗)의 아들인 솔우공(率友公)의 아들 서운(庶云) 잡간(匝干)의 딸 문명황후(文明皇后)께서 나를 낳으셨으니, 시조 수로왕은 어린 나에게 15대조가 된다. 그 나라는.. 2018. 3. 15.
거도(居道) 생몰년 미상. 신라인. 자세한 가계는 알 수 없다. 탈해니사금 때 신라변경 지방관이 되어 꾀로써 우시산국과 거칠산국을 병합했다. 삼국사기 권 제44(열전 제4) 거도 열전 : 거도(居道)는 그의 가계와 성씨가 전하지 않아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다. 탈해니사금 때 벼슬해 간(干)이 되었다. 그때 우시산국(于尸山國)과 거칠산국(居柒山國)이 국경 이웃에 끼어 있어 자못 나라의 걱정거리가 되었는데, 거도가 변경 지방관이 되어 그곳을 병합하고자 했다. 매년 한 번씩 여러 말을 장토(張吐) 들판에 모아놓고 군사들에게 말을 타고 달리면서 놀이를 하게끔 했다. 당시 사람들이 이 놀이를 ‘마기(馬技)’라 불렀다. 두 나라 사람들이 (이 장면을) 자주 보아 왔으므로 신라의 평상적인 일이라고 생각하고는 괴이하게 여기지 않.. 2018. 3. 15.
검군(劍君) 진평왕 시대 신라인으로 사량궁 사인으로 있으면, 다른 사인들이 관청 곡식을 몰래 빼돌리는 일에 가담하지 않아 그들에게 독살됐다. 근랑(近郞)이라는 풍월주를 따라 수양하면서 의로운 것이 아니면 사사롭게 취할 수 없다는 신념을 익혀 이를 실천에 옮겼다. 삼국사기 권 제48(열전 제8) 검군 열전 : 검군(劍君)은 대사(大舍) 구문(仇文)의 아들로 사량궁(沙梁宮)의 사인(舍人)이 되었다. 건복(建福) 44년 정해(진평왕 49: 627) 가을 8월에 서리가 내려 여러 농작물을 말려 죽였으므로 다음 해의 봄으로부터 여름까지 큰 기근이 들어 백성들이 자식을 팔아 끼니를 메웠다. 이때 궁중의 여러 사인(舍人)들이 함께 모의하여 창예창(唱倉) 곡식을 훔쳐 나누었는데 검군만이 홀로 받지 않았다. 여러 사인이 말하기를 “.. 2018. 3. 15.
거질미왕(居叱彌王) 금관가야 제4대 임금. 금물(今勿)이라도 한다. 3대 마품왕과 왕비 호구 사이에서 태어났다. 재위기간은 253~291년. 5대 이시품왕 아버지다. 삼국유사 권 제1 왕력 : 제4대 거질미왕(居叱彌王)은 금물(今勿)이라고도 한다. 아버지는 마품(麻品)이며 어머니는 호구(好仇)다. 신해년에 즉위해 55년을 다스렸다.삼국유사 권 제1 왕력 : 제5대 이품왕(伊品王)은 아버지가 거질미(居叱彌)이며 어머니는 아지(阿志)다. 병오년에 즉위해 16년을 다스렸다.삼국유사 제2권 기이2 가락국기(駕洛國記) : 마품(馬品)이라고도 하며, 김씨(金氏). 가평(嘉平) 5년 계유(癸酉; 253)에 즉위. 치세(治世)는 39년으로, 영평(永平) 원년 신해(辛亥; 291) 1월 29일에 죽음. 왕비(王妃)는 종정감(宗正監) 조광(.. 2018. 3. 15.
호구(好仇) 금관가야 김수로왕비 허황후가 금관에 도착할 때 수행했으며, 금관가야에서는 종정감을 지낸 조광의 손녀로 3대 마품왕비가 되어 거질미왕을 낳았다. 삼국유사 권 제1 왕력 : 제4대 거질미왕(居叱彌王)은 금물(今勿)이라고도 한다. 아버지는 마품(麻品)이며 어머니는 호구(好仇)다. 신해년에 즉위해 55년을 다스렸다.삼국유사 제2권 기이2 가락국기(駕洛國記) : 마품(馬品)이라고도 하며, 김씨(金氏). 가평(嘉平) 5년 계유(癸酉; 253)에 즉위. 치세(治世)는 39년으로, 영평(永平) 원년 신해(辛亥; 291) 1월 29일에 죽음. 왕비(王妃)는 종정감(宗正監) 조광(趙匡)의 손녀(孫女) 호구(好仇)로 태자(太子) 거질미(居叱彌)를 낳음. 2018. 3. 15.
조광(趙匡) 금관가야 김수로왕비 허황후가 금관에 도착할 때 왕비를 수행한 신하 중 한 명으로, 금관가야에서는 종정감이었다. 그의 손녀가 3대 마품왕비가 되어 거질미왕을 낳았다. 삼국유사 제2권 기이(紀異) 제2 가락국기(駕洛國記) 조 : 건무(建武) 24년 무신(戊申; 48) 7월 27일에 구간(九干) 등이 조회할 때 말씀드렸다. “대왕께서 강림(降臨)하신 후로 좋은 배필을 구하지 못하셨으니 신들 집에 있는 처녀 중에서 가장 예쁜 사람을 골라서 궁중에 들여보내어 대왕의 짝이 되게 하겠습니다.” …유천간 등이 돌아가서 왕후의 말을 전달하니 왕은 옳게 여겨 유사(有司)를 데리고 행차해서, 대궐 아래에서 서남쪽으로 60보쯤 되는 산기슭에 장막을 쳐서 임시 궁전을 만들어 놓고 기다렸다. 왕후는 산 밖의 별포(別浦) 나루터에.. 2018. 3. 15.
마품왕(馬品王) 금관가야 제3대 왕. 재위 253∼291년. 마품(麻品)이라고도 표기한다. 삼국유사 제2권 기이2 가락국기(駕洛國記) : 마품왕(麻品王). 마품(馬品)이라고도 하며, 김씨(金氏). 가평(嘉平) 5년 계유(癸酉; 253)에 즉위. 치세(治世)는 39년으로, 영평(永平) 원년 신해(辛亥; 291) 1월 29일에 죽음. 왕비(王妃)는 종정감(宗正監) 조광(趙匡)의 손녀(孫女) 호구(好仇)로 태자(太子) 거질미(居叱彌)를 낳음.☞마품왕(麻品王) 2018. 3. 15.
마품왕(麻品王) 금관가야 제3대 왕. 재위 253∼291년. 마품(馬品)이라고도 표기한다. 삼국유사 제2권 기이2 가락국기(駕洛國記) : 마품왕(麻品王). 마품(馬品)이라고도 하며, 김씨(金氏). 가평(嘉平) 5년 계유(癸酉; 253)에 즉위. 치세(治世)는 39년으로, 영평(永平) 원년 신해(辛亥; 291) 1월 29일에 죽음. 왕비(王妃)는 종정감(宗正監) 조광(趙匡)의 손녀(孫女) 호구(好仇)로 태자(太子) 거질미(居叱彌)를 낳음.☞마품왕(馬品王) 2018. 3. 15.
Gyeongbonkgung Palace 600-year History in Fog, Today, Seoul Built in 1395, three years later after the foundation of the Joseon Dynasty, Gyeongbokgung (慶福宮) is also commonly referred to as the Northern Palace because its location is furthest north when compared to the neighboring palaces of Changdeokgung (Eastern Palace) and Gyeonghuigung (Western Palace) Palace. The premises were once destroyed by fire during the (J.. 2018. 3. 15.
그 신문이 그 신문? '기뤠기'로 격하된 지금이나, '기자'로 입성한 25년 전이나, 매양 듣는 얘기 중 하나가 신문이 왜 이리 많으냐, 그 신문이 그 신문이라 맨 같은 뉴스 뿐이라 종이 낭비라는 볼멘소리다. 그런가? 이젠 더는 비밀이 아니며, 더구나 언론계 내부까지 속속들이 드러나는 마당에 이참에 그 한쪽 끄터머리에 숨어 있는 한 사람으로 한 마디 꼭 보탠다면 같은 신문은 지구상 인류가 출현한 이래 단 한번도 없다는 점이다. 독자들이 말하는 같은 신문이란 같은 사안을 다룬다는 뜻일 뿐, 같은 뉴스는 없다. 같은 사안이라 해도 그것을 바라보는 시각은 사람 눈만큼 다양하다. 10개 신문이 있다면, 10개 뉴스가 있을 뿐이다. 이명박이 독직 스캔들로 검찰에 어제 출두한 오늘 신문들은 일제히 이 소식으로 머릿기사를 삼았다. 보니 .. 2018. 3. 15.
전밀(轉密) 문노(文努)의 유풍을 따르는 신라 화랑 집단에 소속된 불교 승려라는 사실만 확인된다. 활동시기는 그와 교유한 김흠운(金歆運)이 태종무열왕 2년(655)에 사망한 시점을 고려할 때 선덕~진덕~태종무열왕 무렵으로 판단된다. 삼국사기 권제47(열전 제7) 김흠운 : 김흠운(金歆運)은 나밀왕(奈密王) 8세손이다. 아버지는 잡찬 달복(達福)이다. 흠운이 어려서 화랑 문노(文努)의 아래에서 놀았는데 당시의 무리들이 아무개는 전사하여 이름을 지금까지 남겼다고 말하자 흠운이 슬퍼하여 눈물을 흘리며 격동하여 그와 같이 되려고 하니 동문의 승려 전밀(轉密)이 말하기를 “이 사람이 만약 전쟁에 나가면 반드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하였다. 2018. 3. 15.
순경(順憬) 중대 신라 승려로, 신문왕 시대 무렵이 주된 활동연대일 것이다. 기원사 소속 승려다. 김유신 부하로 용맹함으로 이름을 떨친 열기가 김유신 아들로 당시 국정을 장악한 삼광한데 군태수를 달라했지만 거절당하자, 삼광을 설득해 삼년산군태수를 주게한다. 기타 행적은 보이지 않는다. 삼국사기 권 제47(열전 제7) 열기 열전 : 뒤에 유신의 아들 삼광(三光)이 집정하자 렬기가 그에게 가서 군태수를 청하니 허락하지 않았다. 렬기가 기원사(祇園寺) 승려 순경(順憬)에게 말하기를 “내 공이 큰데 군수를 달라 해서 받지 못했으니, 삼광이 자기 아버지가 죽었다고 나를 잊은 것이 아니겠는가”라고 했다. 순경이 삼광을 설득하니 삼광이 삼년산군(三年山郡) 태수를 주었다. 2018. 3. 15.
온달溫達 고구려 평강왕 때 일반 백성으로 젊을 적에는 바보라 했지만, 일약 왕의 부마로 발탁되어 군사 분야에서 주로 활동했다. 신라한테 빼앗긴 계립현(鷄立峴)과 죽령(竹嶺) 서쪽 땅을 찾겠다며 신라가 장악한 아단성(阿旦城)을 침공했지만 흐르는 화살에 맞아 죽었다. 삼국사기 권제45 (열전 제5) 온달 : 온달(溫達)은 고구려 평강왕(平岡王) 때 사람이다. 얼굴이 못생겨 남의 웃음거리가 되었지만 마음씨는 밝았다. 집이 매우 가난해 항상 밥을 빌어다 어머니를 봉양하는데, 떨어진 옷을 입고 해진 신을 신고 저자 거리를 왕래하니, 그때 사람들이 그를 가리켜 바보 온달이라 불렀다. 평강왕의 어린 딸이 울기를 잘하므로 왕이 놀리기를 “네가 항상 울어서 내 귀를 시끄럽게 하니 커서는 대장부의 아내가 될 수 없으니 바보 .. 2018. 3. 15.
국천왕(國川王) 고구려 9대 임금 고국천왕을 일컫는 줄임말. 삼국사기 권제45 (열전 제5) 을파소 : 을파소(乙巴素)는 고구려 사람이다. 국천왕(國川王) 때 패자(沛者) 어비류(於留)와 평자(評者) 좌가려(左可慮) 등이 모두 [왕후] 외척으로서 권세를 휘둘러 옳지 못한 짓을 많이 하니, 나라 사람들이 원망하고 분히 여겼으므로 왕은 노하여 그들을 목베려 하였다. ☞고국천왕(古國川王) 2018. 3. 15.
고국천왕(故國川王) 고구려 제9대 왕으로 재위기간은 179~197년). 신대왕 둘째아들이며 이름은 남무(南武)다. 이이모(伊夷模)라는 기록도 있지만, 중국측 기록에는 산상왕 이름이라 혼란이 있다. 국양왕(國壤王)이라고도 한다. 불초한 형 발기(拔奇)를 제치고 태자에 책봉되어 왕위를 이었다. 왕비는 제나부(堤那部) 우소(于素)의 딸 우씨(于氏). 재위기간 후 후한(後漢) 요동(遼東)태수 침입을 받기도 했고 외척들의 반란을 만나기도 했다. 평민인 을파소(乙巴素)를 일약 국상(國相)에 등용하는 파격을 보였고 그의 진언으로 진대법(賑貸法)을 실시했다. 죽어 고국천원(故國川原)에 묻혔다. 삼국사기 권 제16(고구려본기 제4) 고국천왕 조 : 고국천왕(故國川王)은 이름이 남무(男武)이니 신대왕 백고의 둘째 아들이다. 백고가 죽자, 국.. 2018. 3.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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