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探古의 일필휘지529

그냥 와, 다 받아줄께 떨어지고 남은 매실 그 열매가 일곱일세 나를 찾는 뭇 남자들 길일만 고르면 된다네 떨어지고 남은 매실 그 열매가 셋이라네 나를 찾는 뭇 남자들 오늘 당장 와도 된다네 떨어지고 남은 매실 광주리 가득 채웠다네 나를 찾는 뭇 남자들 말만 하면 된다네 ㅡ 《시경詩經》, , 소남召南, "떨어지고 남은 매실(표유매摽有梅)" 2023. 11. 12.
한달치 봉급으로 장욱진 그림을 산 김원룡 이 작품을 포장하며 장욱진 화백은 그렇게 중얼거렸다고 한다. "김원용씨는 이제 한달동안 무얼 먹고 사나?" *** Editor's Note *** 김원룡은 1세대 고고학도 겸 미술사학자로 국립박물관에 봉직하다 1961년인가 서울대에 고고인류학과가 창설되자 그 교수로 자리를 옮겼다. 한동안 혼자 교수였고 신생인 데다 인기가 없는 학과라 매양 신입생 모집 때마다 미달 사태가 나서 괴로워했다. 이후 잠깐 국립박물관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그땐 교수가 봉급으로 생활할 때가 아니었다. 삼불이라는 호를 쓴 그는 각종 정부 위원을 독식했고 각종 회의에 참석했다. 지금도 각종 회의에 불려다니며 짭짤한 수입을 내는 고고학 교수가 더러 있다. 아마 그 수당이 봉급에 육박할지도 모른다. 간단히 말해 장욱진 걱정과는 달리 적어.. 2023. 11. 12.
국립중앙박물관 오세창吳世昌 전시장에서 위창 오세창(1864-1953), 그는 누구인가. 3.1운동 33인의 한 명인 독립운동가이자, 전서로 일세를 풍미한 서예가요, 기자로 시작해 와 를 거쳐 사장까지 역임한 언론인에 와 을 엮은 수집가, 거기에 을 저술한 미술사가. 도대체 어느 한 면모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인물이다. 그런 그의 70주기를 기려 국립중앙박물관은 조촐한 전시를 꾸렸다. 한국미술사의 시조에게 바치는 헌사 - "근대 문예인, 위창 오세창"이다. 12월 말까지이니 얼마 남지 않았다. 이번에 놓치면 다시 전시에서 만나기 어려운 작품이 많다. 바라건대, 이 글을 읽으시거든 꼭 한 번 다녀오시기를. 그리고, 한국의 근대라는, 그 어려운 시기를 누구보다 치열하게 고민하고 격랑 속에서 중심을 잃지 않으려 노력했던 한 인물('문예인'이란 표현.. 2023. 11. 11.
거목 허백련 그늘에 가린 아우 허행면 목재 허행면(1905-1966)이란 화가가 있었다. 진도 출신 대화가 의재 허백련(1891-1977)의 아우로, 젊어서 공무원 생활을 하다가 의재에게 그림을 배우고 조선미술전람회에 두 차례 입선하였으며, 해방 이후에도 개인전을 여러 차례 열어 화명을 날렸다. 이 그림은 그가 1958년에 운계라는 호의 소유자에게 그려주었던 것이다. '부귀옥당'이라 했으니 저 세 송이 풍성한 꽃은 모란인데, 거기에 괴석과 백목련(?)까지 섞어 그렸다. 언뜻 보면 의재 선생의 그림인가 싶을 정도로 화풍이 닮아 보인다(그림 보는 눈이 높지 않아서 차이를 잘 모르는 것이기도 하겠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아직 형의 필법을 벗어나지 못했던 것인지 모르겠다. 역시 화가라 그런지 화제글씨ㅡ특히 '당'자의 처리가 퍽 감각적이다. 바탕이 .. 2023. 11. 8.
2억1만8천780리를 퍼스트클래스로 사뿐히 내려앉은 해모수 내 옛사람에게 들으니 / 吾聞於古人 하늘과 땅은 거리가 / 蒼穹之去地 이억 만 팔천하고도 / 二億萬八千 칠백 팔십 리란다고 / 七百八十里 이규보의 속 구절이다. 2억 만 팔천 칠백 팔십리라. 같은 문헌을 보면 억億이란 10만을 가리키는 단위였다. 이를 염두에 두고 계산하면 218,780리. 조선시대 단위로는 10리가 대략 5.4~5.7km였다니 5.5km라고 하고 계산해보면 12만 329km 남짓이 된다. 대류권, 성층권, 중간권, 열권은 가볍게 뛰어넘는다. 그런가 하면 또 하늘과 땅 사이 높이를 이렇게 본 분도 있었다. ‘노락당老樂堂과 하늘 사이가 한 자 다섯 치 밖에 되지 않는다’ 흥선대원군이 그 아들을 왕위에 올리고 운현궁을 대대적으로 지어올릴 때 당시 대제학이던 김병학이 지어올린 한 대목이다. 지.. 2023. 11. 7.
오천 번을 썼다는 圖書集成[도서집성] 아정雅亭 이덕무李德懋(1741~1793)가 규장각 검서관을 지내던 어느 때 당대 명필 송하松下 조윤형曺允亨(1725~1799)을 찾아가 글자를 써달라 했다. 무슨 글자냐 圖書集成 네 글자다. "어째서?" "대감께서 ’도서집성’만 오천 번 넘게 쓰셨으니, 그 글자는 통달하시지 않았겠나이까?" 저 장정이 정조 시절 그것이라면 제목도 송하 선생 글씨겠지. 그 사위 자하 선생이 거니시던 자하연 골짜기와 멀지 않은 곳에서 보자니 감회가 새롭다. (2015. 10. 31) *** 고금도서집성에 관한 글로 아래를 참조하자. 일본은 벌써 사 갔는데 왜 너흰 지금에야? 일본은 벌써 사 갔는데 왜 너흰 지금에야?일본에 대한 밑도끝도 없는 한민족 우월심은 연원이 매우 깊어, 이것이 결국에는 요즘의 한민족 내셔널리즘으로 귀결.. 2023. 10.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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