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探古의 일필휘지529 봉선홍경사奉先弘慶寺와 그 갈기비碣記碑, 고려 현종이 천안에 남긴 자취 이 제법 흥행하고 있다. 마침 육지 올라온 김에 현종이 남긴 자취나 보러 다녀올까 해서 여기에 왔다. 국보로 지정된 -사실상 봉선홍경사 터다. 직접 와 보니 절이 있을 자리라기보단 휴게소를 세우면 딱 좋을 자리다. 지금도 큰길 옆에 있을 뿐더러 주변에 산은 눈씻고 찾아도 안 보인다. 실제로 여기 절을 세운 뜻도 그러했다. 기록에 따르면 이 절은 1021년(현종 12)에 형긍迥兢이란 스님이 왕명을 받아 창건했다. 그런데 왜 굳이 이 자리에 절을 세웠느냐 하면, 현종의 아버지 대로 거슬러올라가야 한다. 드라마로 잘 알려졌지만(맞나?) 현종의 아버지 안종 왕욱은 태조 왕건과 경순왕의 사촌 누이 신성왕태후 김씨 사이에서 난 아들이다. 그는 평소 을 읽다가 여행자를 부처님이 보호해주는 마을이 있었다는 내용을 보고.. 2023. 12. 30. 전설은 사실을 어디까지 반영하는가, 개성 남대문 한석봉 편액의 경우 개성 한복판에 있는 개성 내성의 남문 '남대문'에 얽힌 이야기이다. 조선 중기의 어느 날, 개성부 사람들은 남대문에 새로 편액을 달기로 했다. 그 편액글씨를 동향의 명필 석봉 한호(1543-1605)에게 청하자, 그는 직접 개성에 왔다. 그리고 사다리를 타고 올라, 미리 걸어둔 빈 편액에 글자를 쓰기 시작했다. 남녁 남자를 쓰고 큰 댓자를 쓸 제, 누군가가 그 사다리를 걷어찼다. 석봉을 시샘하던 이였는지, 그가 망신도 당하고 기왕이면 어디 부러졌으면 했던 모양이다. 절체절명의 순간, 그러나 석봉은 땅에 떨어지지 않았다. 큰 댓자의 마지막 획에 워낙 힘이 들어가 있어서, 붓을 쥔 채로 대롱대롱 매달려있었던 것이다. 지금도 남아있는 개성 남대문 편액의 큰 댓자 마지막 획이 유달리 굵고 힘차보이는 것은 그런 .. 2023. 12. 25. 사천 선진리성을 가다(2) 여름철새 후투티가 뛰어노는 400성상 일본 성은 사람이 들어가 살기 위한 공간이라기보다 적을 끌어들여 싸우기 위한 시설이라 봐야 맞는다. 성문부터가 복잡하다. 우리나라 성도 옹성이나 치 같은 걸 설치해 놓기는 하지만, 왜성처럼 이리저리 동선을 꺾어서 사람을 궁지로 몰지는 못한다. 발굴조사로 확인해 복원한 이 선진리성 성문이 딱 그렇다. 벽을 세워 한 번 두 번 길을 꺾고 그 앞에 총구멍을 떡하니 둔다. 어찌어찌 문을 통과한다 해도 나오는 건 핵심 시설이 아니라 뒤쪽 성벽이다. 지키는 입장에선 좁은 공간을 지킬 병력만 있으면 되지만 치는 쪽이라면? 골치깨나 아팠을 것이다. 사실 여기는 2010년대 발굴을 거치고 성벽 상당수를 새로 쌓다시피 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뭔가 압력을 이기지 못해 깨진 돌들이 성벽 곳곳에 보인다. 하지만 돌 색깔이 묘.. 2023. 12. 24. 사천 선진리성을 가다(1) 벚나무의 유래 뜻하지 않게 대구와 경남 지역경제에 도움을 주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무릇 기브가 있으면 테이크가 있어야 하는 법, 유적 다녀오고 글감이라도 얻어야 그나마 수지가 맞는다(물론 본전 생각 난다). 그러니 어쩌랴? 돈 좀 쓰더라도 다녀오는 수밖에. 마침 사천에 간다면 한 번 가 보고 싶던 곳으로 방향을 잡았다. 사천 선진리 왜성 -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일본군이 주둔하던 곳이다. 원래 여기엔 고려시대 이래 경상도 일대 세곡을 보관하는 조창이 있었다고 한다. 지금도 이 아래엔 조창을 지키기 위해 쌓았던 토성 흔적이 남아있다. 그러다 1592년(선조 25) 4월, 임진년 난리에 일본군 손에 떨어지면서 이 자리의 운명이 바뀐 것이다. 이 선진리 왜성에서는 두 차례 큰 전투가 있었다. 그 하나는 1592년 성 앞.. 2023. 12. 24. 한때는 위광을 자랑한 진주 용암사 터를 가다 지금의 절을 본 김에 옛날 절자리를 보러 가자 해서 들르게 된 곳. 또다시 첩첩산중으로 들어가보는데 산중이라곤 하나 제법 넓은 들도 있고 집 몇 채가 모인 마을도 있다. 차를 세우고 슬슬 걸어가는데 길 어귀부터 옛 기왓장이 천지다. 물고기뼈 모양 어골무늬도 있고 격자무늬나 비내리는 것 같은 무늬가 새겨진 것도 있고, 더러 흐릿하게나마 명문이 남은 것도 보였다. 녹유를 바른 전돌이 나오기도 한단다. 한 10분 걸었을까? 대나무밭이 길 옆을 따라 이어진다. 꼬불꼬불한 대나무 뿌리가 어찌나 기운 센지 더러 기와조각을 꽉 움켜쥐기도 하고 또 암반을 깨고 들어가기도 한다. 그 뿌리가 틔운 대밭이 다할 즈음 절 아닌 재실 하나가 나타난다. 이 진주 용암사란 절은 용암이 흘러 생긴 게 아니라 신라 말 도선국사가 창건.. 2023. 12. 23. 의상 화엄십찰 고성 옥천사를 가다 대학교 답사로도 이 고성이란 곳엔 와본 적이 없다. 공룡 발자국이 많기로 유명하다는 정도밖엔 몰랐던 셈인데, 우연인지 필연인지 존경하는 김충배 선생님 안내로 고성 땅 고찰 옥천사에 구경을 가게 되었다. 차를 타고 산이 품은 들을 가로질러 이리저리 휘돌아 들어가니 어느새 주변 풍경은 산중이다. 길옆 절벽은 켜켜이 쌓인 퇴적암 더미들인데, 동짓날 다음 날이라 그런지 팥시루떡 생각이 문득 든다. 근대 부산 지역의 명필이요 그 자신 스님 출신이었던 청남 오제봉 글씨 일주문 현판 앞에서 사진 하나를 찍는다. 절 옆 암자 청련암에 먼저 들렀다. 성보박물관장 스님이 계시다고 하여 인사를 드리고 차를 마시며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절은 670년(신라 문무왕 10)에 의상이 창건한 화엄전교10찰 중 하나라고 한다... 2023. 12. 23. 이전 1 ··· 21 22 23 24 25 26 27 ··· 89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