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探古의 일필휘지491

왕후장상에 어찌 종자가 따로 있겠느냐? 위대한 권리장전 〈신종神宗〉 원년(1198), 사동私僮 만적萬積 등 6명이 북산北山에서 땔나무를 하다가, 공사公私의 노예들을 불러 모아서는 모의하며 말하기를, “국가에서 경인년(1170)과 계사년(1173) 이래로 높은 관직도 천인이나 노예 중에서 많이 나왔으니, 장상將相에 어찌 〈타고난〉 씨가 있겠는가? 때가 되면 〈누구나〉 차지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라고 어찌 뼈 빠지게 일만 하면서 채찍 아래에서 고통만 당하겠는가?” 라고 하니 여러 노奴가 모두 그렇다고 하였다. 누런 종이 수천 장을 잘라서 모두 정자丁字를 새겨서 표지로 삼고, 약속하여 말하기를, “우리가 흥국사興國寺 회랑에서 구정毬庭까지 한꺼번에 집결하여 북을 치고 고함을 치면, 궁궐 안의 환관들이 모두 호응할 것이며, 관노官奴는 궁궐 안에서 나쁜 놈들을 죽일 .. 2023. 8. 14.
식민지시대 책값, 금값에 연동한 조선은행권 1) 일제강점기, 조선은행권은 금태환이라고 해서 화폐가치가 금값에 연동되어 있었다. 명목상 1원은 금 0.2돈. 곧 금 1돈이 5원이었다. 지금 금 1돈에 35만원 남짓이라니 1원이면 대강 7만원쯤. 2) 지난번에도 한번 말했는데 그 시절 어지간한 연활자본 문헌 가격이 3~4원이었다. 지금 한 권에 20~30만원짜리 책이라고 하면 어마어마한 호화판이거나 그럭저럭 드문 고서 정도? 그때 책값이 결코 싼 게 아니었다. 3) 금값 기준으로, 일제 때 1만원이라면 대략 7억원으로 환산할 수 있겠다. 언뜻 적게 느껴질지도 모른다마는, 기와집 한 채가 2천원이었다니 1만원의 실질가치는 7억 그 이상이었을 터. 그렇다면 그 액수를 아무렇지 않게 차용할 수 있었던 이의 부는 얼마나 컸다는 얘기일까. 2023. 8. 12.
허망한 이인로의 대답, "이거 제 글씹니다" 이인로(李仁老, 1152~1220)의 을 보면 고려 중기에 있었던 어떤 흥미로운 사건을 하나 기록하고 있다. 옛 어른들의 감정 - 흔히 배관拜觀이라고 하는 - 실력이 어떠했는지 미루어 짐작해보도록 하자. 내가 일찍이 높으신 분의 댁[貴家]의 벽에서 초서(草書)가 적힌 족자 두 점을 보았는데, 연기에 그을리고 집안으로 샌 빗물에 젖어 형색이 자못 기이하고 예스러웠다. 그 시에 이르기를, 시가 적힌 단풍잎이 궁궐[鳳城]에서 나오니 紅葉題詩出鳳城 눈물 자국은 먹과 섞이며 오히려 분명하네 淚痕和墨尙分明 궁궐 도랑에 흐르는 물 흐려서 믿을 수 없네 御溝流水渾無賴 궁녀의 한 조각 마음을 흘려보냈다기에 漏洩宮娥一片情 이라고 하였다. 좌중 손님들이 모두 머리를 모아 보면서 당唐 · 송宋 시절 사람의 필체라 여겼다. 분.. 2023. 8. 11.
대량으로 써제낀 증정용 식민지시대 글씨 조선 말기~일제강점기 제법 이름있는 이의 필적은 일본에 많이 전해진다. 대개는 일본에 망명한 뒤 생활비를 조달하려고 팔았거나, 신세진 이에게 고마움의 표시로 선사한 것이다. 조선-한국에 있었던 인물이 일본인을 만나도 으레 글씨를 써주거나 그림을 그려주곤 했던 모양으로, 요즘들어 그러한 작품들이 한국에 많이 들어오고 있다. 그런 작품들을 보면서 몇 가지 드는 생각이 있다. 1) 금박종이나 호피선지를 둘러 휘황찬란하게 '표구(장황이 아니다)'한 현현거사玄玄居士의 글씨나 소호小湖의 난초를 흔히 만난다. 그런데 일본에서 일본 재료를 써서 만들어 일본인에게 준, 일본인의 취향에 맞는 작품을 "조선 19세기 말~20세기 초"라고 표기하는 것이 과연 맞을까? 단순히 만든 이가 한국인이라고 해서 한국미술사의 영역 안에.. 2023. 8. 11.
진화하는 달항아리, 이젠 재복신 달항아리-라는 이름도 비교적 근래 붙여진 것이지만-가 과연 좋기는 좋은 모양이다. 조선시대 달항아리가 부르는 게 값이 된 건 뉴스 축에도 못끼고, 현대 도예가의 달항아리(그것도 값이 만만찮지만)를 끼고 사는 사람이 늘었다. 하다 못해 달항아리 그림이나 사진을 사다 거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들었다. 그 자체야 뭐 나쁜 일이랴마는, "돈 들어온다"고 해서 달항아리 사진을 붙여놓고 자랑한다는 데 이르러서는 헛웃음을 금할 길이 없었다. 하기야 이상한 일은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시대가 변하면 아름다움에 대한 의식도 변하고 그것이 상징하는 뜻도 달라지게 마련이니까. 해석은 각자의 몫이다. 아름다운 건 누구나 봐도 아름다운 것 아니냐고 물을지 모르지만, 글쎄.... 60년대에 한국 문화재 전시를 유럽과 미국에서 하.. 2023. 8. 6.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그 답을 찾아서 (외전) 12세기 고려 문벌(경주김씨, 인주이씨, 해주최씨, 이천서씨, 광양김씨 등등등의 각 가계)의 가계도. 워낙 만수산 드렁칡마냥 얽히고 설켜서 복잡하긴 합니다만, 핵심은 간단합니다. 이들은 서로 혈연적 연계가 있었지만, 그것이 이들의 행동을 제약하는 근본적 조건은 되지 않았다는 겁니다. 이들의 정치적 행보를 사료에서 찾아보면, 비교적 가깝지 않나 하는 인물도 서로 반대되는 모습을 보일 때가 많습니다. 2023. 7.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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