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探古의 일필휘지440

여기서 시를 지어서 현판을 안 만들면 무슨 벌을 내리는가? 일 때문에 옛날 현판을 들여다보다 보니 현판과 관련된 옛 글들도 꽤나 접하게 된다. 그 중 가장 재미있었던 글 한 토막. --- 내 생각에 누대樓臺 현판은 모조리 케케묵은 시들이라, 비록 청신한 구절이 있다 하더라도 가려내기 쉽지 않으니, 지을 필요가 없다. 임자순(林子順, 백호白湖 임제(林悌, 1549-1587))이 언젠가 가학루駕鶴樓를 지나갔는데, 판시板詩가 많아 만여 개나 되므로, 그 되먹지 않은 잡소리를 싫어하여 관리(館吏, 객사의 아전)를 불러 말하기를, “저 현판들은 관명官命으로 만든 것이더냐? 아니면 안 만들면 벌을 주기라도 했느냐?” 하니, 그의 말이, “만들고 싶으면 만들고 말고 싶으면 안 만들지요. 어찌 관명이나 처벌이 있겠습니까요.” 라고 하자, 자순이, “그렇다면 난 짓지 않겠노라... 2021. 11. 14.
궁기시정宮崎市定 《과거科擧》 이보다 더 '과거', 그것도 청대淸代의 과거시험이란 주제를 잘 드러내는 디자인이 있을지 모르겠다. - 미야자키 이치사다, (1946)의 표지 *** 미야자키 이치사다는 아래를 참조하라 宮崎市定 - Wikipedia ja.wikipedia.org 2021. 11. 11.
세계 최대 사막 사하라 세계의 최대 사막은 아프리카에 사하라 사막이니 2021. 11. 11.
1909년의 변호사 개업광고 관재 이도영이 만평을 그린 걸로 유명한 의 1909년 6월 무렵 광고란이다. 이때 서울 장안에 '변호사'가 얼마나 있었을지 모르겠는데, 민형사소송의 일체사무를 신속처리한다는 둥, 민사대리와 형사변호와 기타법률사무를 간절하고도 돈독하게 신속히 맡아 처리한다는 둥 문구를 보면 수요에 비해 그리 넉넉한 벌이는 아니었던 듯도 하고... 맨 왼쪽의 '변호사 허헌許憲'은 우리가 아는 그 허헌(1885-1951)이 맞겠다. 이때 그의 나이 스물다섯이었다. 근데 7월쯤 그린 관재의 만평에서 '법률사무소'를 그린 걸 보면 벌이는 제법 쏠쏠했겠지 싶다. 2021. 11. 11.
박물관은 무엇이야, 다 날아갔는데 "박물관은 무엇이야, 다 날아갔는데" 1909년 에 실린 관재 이도영(1884-1933)의 만평 한 자락이다. 이 땅에 '박물관'이 생길 때 대한제국 백성들의 여론을 이보다 더 잘 그릴 수 있을까. 박물관이 우리 옛 물건을 모은다면서? 그로부터 100여 년 뒤, 가볍게 날아갔던 저것들을 돌아오게 하려고 후손들은 애를 쓰고 있다. *** 台植補 *** 이 기사가 난 시점이 1909년이니 제실박물관 출범 즈음이리라. 서유견문 보니 박물관 소개 항목이 있더라. 2021. 11. 7.
이토가 죽으니 통감 집에 불이 나네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 20일 후, 서울 남산자락 통감관저 녹천정綠泉亭 남쪽 마루 아래에서 불꽃이 솟아올랐다. 정원사가 보고 급히 소리치며 사람을 불러모아 끄기는 했지만, 건물은 어지간히 타버렸던 모양이다. 당시 통감 소네 아라스케는 경악을 금치 못하고, 구경꾼(신문에는 "위문하고자"라 했지만..)이 관저 앞으로 몰려들었다. 당연히 왜 불이 났는지 온갖 소문이 돌았으리라. 시국이 시국이니만치 독립을 꿈꾸는 이의 통감 암살 시도였다는 이야기도 있었을 법하지만 신문에선 찾을 수 없다. 다음날 발표된 실화 원인은 벽난로 굴뚝. 거기에서 일어난 불똥인지 뭔지가 옮겨붙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랬는지, 아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런데 하필이면 타버린 건물이 "이토 공의 좋은 기념으로 영구히 보존할 건조물"이.. 2021. 10.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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