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探古의 일필휘지515 밥상으로 바둑판을 쓴 풍운아 김옥균 얼마 전, 존경하는 위가야 선생님 포스팅에서 김옥균 이야기를 보고 떠오르는 이야기가 있어 그려본다. 갑신정변을 일으킨 '풍운아' 김옥균의 정치적 행적이나 사생활에 대해서 내가 길게 얘기할 것은 없지 싶다. 하지만 지금도 간혹 박물관이나 경매장에서 그의 글씨를 보면 분명 매력이 있다. 예전에 들은 몇 토막 일화에서도 그런 매력이 느껴진다. 그러니 동아시아 삼국 정부가 모두 적대하는 처지였으면서도 어떻게든 그를 도와주는 사람이 나타났던 게 아닐까. 김옥균 하면 같이 언급되곤 하는 게 바둑이다. 지금으로 치면 아마 3단~4단 정도 기력棋力이었다고 하는데, 을 보면 조선에서도 바둑 내기를 핑계삼아 일본 공사관을 드나들며 갑신정변 계획을 짰다고 한다. 일본에 망명하고 나서는 더욱 바둑에 탐닉한 모양으로, 이때 그.. 2022. 12. 11. 현판, 격조 있는 알림 1. 보고서를 쓰면서도 느낀 것이지만, 현판이란 기본적으로 이 집이 무얼 하는 곳이라는 표시이다. 만약 저 대리석 현판이 없더라면 저 건물이 그 유명한 '통문관'인지 쉽게 알겠는가. 하지만 없더라도 어찌어찌 알 방도야 있을 것이다. 들어가서 물어본다든지 지번을 검색해본다든지. 2. 어쩌면 현판의 더욱 중요한 쓰임이란 이 건물을 쓰는 사람의 생각과 격조를 다른 이들에게 보여주고 은근히 자랑하려 함이 아닐까? 저 '통문관' 현판이 만약 검여 유희강의 글씨가 아니라 그냥 컴퓨터 폰트였더라면...어후, 상상에 맡길 뿐이다. 3. 생각해보건대 현판의 용도와 성격을 가장 극명하게 얘기하신 분은 바로 현철 선생님이 아닐까 한다. 왜 그분의 히트곡을 들어보면... "이름표를 부~~ㅌ여 내~가슴에, 화~ㄱ실한 사랑의 도.. 2022. 12. 10. 유혁로柳赫魯라는 인물의 글씨 요즘은 학교에서 갑신정변(1884)을 어떻게 가르치는지 모르겠지만, 예전(이라고 해봤자 20년쯤 전) 교과서에는 개화파가 조선을 개혁하려는 의도로 벌인 사건이라는 식의 긍정 서술이 많았다고 기억한다. 김옥균 위인전도 있었고(물론 거기서 김옥균은 '위인'스럽게 나온다) 역사만화전집 같은 데서도 '젊은 그들'의 행보는 진취적으로 묘사되곤 했다. 하지만 머리가 굵어지면서 다시 본 갑신정변은 그리 긍정이지 않았다. 비유컨대 숯불 속에서 설익은 감자를 꺼내려다 손만 데고 감자마저 떨구어버린 격이랄까. 전개과정만 그랬다면 몰라도 이후 이른바 개화파 행보는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10년을 더 살았으나 허랑하고 만 김옥균은 그렇다 치더라도, 나라를 구하겠다고 일어선 이들이 뒷날 나라 망하는 데 손을 보태고 만 건 지독한.. 2022. 12. 8. 흥선대원군이 쓰던 사구인詞句印 만 권이나 되는 기이한 책 쟁여놓고서 欲藏萬卷異書 죽도록 파고들어 휘파람 불며 읊으련다 終身嘯詠其中 평생 정치의 소용돌이를 만든 석파 태공도 마음 깊숙이 저런 삶을 꿈꾸었던 것일까. 하지만 그런 소망을 이루기엔 조선의 근대가 너무도 슬펐으니. (2019. 12. 5) 2022. 12. 8. 거미줄 걸린 매미를 풀어주며 by 이규보 그동안 좀 격조했는데, 모처럼 짬이 난 김에 별밤 들으면서 한 장 그려보았다. --- 저 교활한 거미는 그 종류가 아주 많구나. 누가 너에게 교활한 재주 길러 주어 그물 만들 실로 둥근 배를 채웠는가. 어떤 매미가 거미줄에 걸려 처량한 소리를 지르길래 내가 차마 듣다 못하여 놓아 주어 날아가도록 했더니 옆에 서 있던 어떤 자가 나를 나무라면서, “오직 이 두 미물微物은 다 같이 하찮은 벌레들인데 거미가 자네에게 무슨 손해를 끼쳤으며 매미는 자네에게 무슨 이익을 줬기에 오직 매미만 살리고 거미는 그만 굶겨 죽이려 하느냐? 이 매미는 자네를 고맙게 여길지라도 저 거미는 반드시 억울하게 생각할 것이다. 매미를 놓아 보낸 것에 대해서 누구든 자네를 지혜롭다 하겠는가?” 하였다. 나는 이 말을 듣고 처음에는 이마.. 2022. 12. 8. 《녹파잡기綠波雜記》를 읽고 19세기 개성 문인 한재락韓在洛의 《녹파잡기綠波雜記》는 당대에 이름을 떨친 기생 66명과 명인 5명을 직접 만나보고 적은 일종의 인터뷰다. 19세기 조선의 풍속과 예술 흐름을 엿볼 귀한 자료인데, 근래의 번역본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좀 불완전했다. 그런데 얼마 전에 안대회 선생님의 새 번역이 나와 기존 번역의 오류들을 상당히 바로잡았다. 나오자마자 사서, "고려시대에도 이런 자료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란 상상을 하며 책장을 넘겼는데, 한재락의 형님 되는 한재렴韓在濂이라는 분은 고려시대 개경의 옛 모습을 고증한 《고려고도징高麗古都徵》이란 저술로 유명해 더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녹파잡기》에 비평을 단 자하紫霞 신위申緯(1769~1847)가 "이 책에서 첫째가는 여인이다"라고 극찬한 영희英姬라는 .. 2022. 12. 1. 이전 1 ··· 48 49 50 51 52 53 54 ··· 86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