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探古의 일필휘지515 저놈을 물에 빠뜨려 고기밥을 만들어라 를 보면 유달리 '물에 던져버리는' 형벌이 많다. 허리가 꺾여 가마솥에 들어가 물에 던져진 의종, 동지들과 함께 묶여 강물에 던져진 만적, 유배를 가다가 바다에 던져진 김경손, 길흉을 잘 점친다고 바다에 던져진 백량... 조선시대에는 적어도 내가 알기로는 (가마솥에 들어가는 팽형 빼고) 물에 풍덩 던져지는 형벌이 없었다. 삼국시대에도 가죽 주머니에 담겨 물에 던져진 관나부인이나 동짓달 얼음물에 목욕하다 얼어죽은 익선의 아들 정도밖에 모르겠는데, 유달리 고려시대에 이런 수장형(水葬刑)이 많았던 것은 어떤 이유일지? 인류학적으로 이건 어떤 의미가 있을지? (2015. 10. 25. 작성한 글을 2022.10.25. 약간 보완) 2022. 10. 25. 일본 국전 반값에 볼 수 있는 기회! 1. 때는 쇼와 3년(1928) 6월, 아사히 회관에서 일본의 국전國展이 열렸다. 미술가들의 등용문이라 할 만한 전시라 그런지 입장료가 50전이나 했다. 김첨지가 동소문에서 문안으로 인력거 태워주고 받은 삯이 40전이었으니 지금으로 치면 택시 기본요금+a 정도? 그때 오사카 아사히신문에서 독자이벤트(?)로 입장료 50% 할인해주는 우대권을 뿌렸다. 2. 그걸 받은 어떤 분이 고이 접어 어떤 책에 끼워두었다. 그런데 그걸 그만 잊어버렸다. 잊은 것까지는 좋은데 너무 오래 잊어버린 나머지 90년 세월이 넘어버렸고, 그걸 끼운 책이 어쩌다 바다를 건너와 내 눈에 띄어버렸다. 3. 이제 와서 이걸 들고 오사카를 가 봤자 국전을 볼 수는 없다. 쓰치다 바쿠센, 도미모토 겐키치, 우메하라 류사브로 같은 양반들 작품.. 2022. 10. 15. 득템 김정만 《창경원야화》 지금도 어렴풋하게 같은 데서 동물박사님으로 나온 걸 본 기억이 난다. 전 서울대공원 동물부장 김정만(1934-2010). 그가 1973년 지은 이 책을 구하게 되었다. 같은 담장 안에 있던 장서각이나 옛 박물관 이야기가 좀 있을까 했는데, 그런 건 없었다. 하지만 기린을 들여놓으려고 창경궁 선인문 바닥을 팠다거나, 안락사(?)당한 호랑이의 가죽, 뼈, 살코기를 얻으려고 오만 데서 병자들이 밀려들었다는 퍽 재미난 에피소드들이 많았다. 중간중간 동물의 특성이나 기르는 법을 적어놓기도 해서, 당시로서는 유용했겠지 싶다. (2019. 10. 12) 2022. 10. 12. 지도 제작업자 정상기가 살아있는 위키피디아 성호한테 물었더니 정상기鄭相驥(1678~1752)라는 인물이 있었다. 지금도 18세기 지도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를 만든 학자인데, 성호星湖 이익李瀷(1681~1763)과는 절친한 벗이었다. 그런 만큼 이익과 자주 편지 왕래를 한 모양인데, 이익이 어느 날 답신으로 보낸 편지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일본지도日本地圖에서 높이 몇 섬石이라고 한 것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저들은 10리를 1리로 삼는데 대개 동서로는 4000리이고 남북으로는 그것의 반이니 동서가 짧다는 것은 틀린 것입니다. 아마 정상기가 여러 지리정보를 수집하면서 일본 다이묘大名들의 고쿠다카石高가 적혀 있던 일본 지도를 얻어 보았던가 싶다. 근데 그게 뭔지 알지 못했던 모양. 박학하기로 이름난 친구에게 물어보면 알 수 있을까 싶어 편지를 넣었는데,.. 2022. 10. 12. 가정稼亭 이곡李穀이 지은 기자오奇子敖(기 황후의 아버지) 행장 중에서 최이崔怡가 병들어 눕게 됨에, 그 아들 항沆이 못나고 어리석은데도 사람들이 대부분 항에게 빌붙었으나 복야僕射(기자오奇子敖의 할아버지 기홍영奇洪潁) 만은 그를 미워하였다. 최이가 언젠가 후계자를 사람들에게 물었을 때에, 복야가 곧장 현인賢人을 천거하면서 그를 후계자로 하라고 답변한 적이 있었다. 그 뒤에 항이 후계자가 되고 나서 예전의 유감을 풀려고 공을 배척하였다. 이에 공이 한을 품고 세상을 떠나니, 당시 사람들이 애석하게 여겼다. - 최이가 한 때 그 사위 김약선金若先을 후계자로 삼았던 게 이 때문이었던가? (2020. 10. 4) 2022. 10. 10. 규재圭齋 남병철南秉哲의 간찰 남병철(1817-1863)이라고 하면 대부분은 "그게 누군데?"라고 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는 젊은 나이에 예조판서, 대제학 등을 역임한 고위 관료였다. 이는 그의 타고난 재주와 더불어 그가 안동김씨 세도정치의 시작점인 풍고楓皐 김조순(金祖淳, 1765-1832)의 외손이라는 정치적 입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헌데 그러면서도 그는 동생 남병길(南秉吉, 1820-1869)과 함께 조선 후기를 주름잡은 수학자이자 천문학자로 역사에 더 큰 발자취를 남겼다. 남병철이 서른일곱살 되던 1853년 음력 정월 16일 쓴 간찰이다. 남병철은 이날 경상감사에 제수되는데, 아마 교지를 받고 바로 썼던 듯 필치가 상당히 급하다. 수신인은 외종外從인 평안감사인데, 에 따르면 이때 평안감사는 김병기(金炳冀, 1815-1878).. 2022. 10. 10. 이전 1 ··· 51 52 53 54 55 56 57 ··· 86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