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探古의 일필휘지515

미산선생 휘호도 米山先生 揮毫圖 추사의 애제자 소치 허련(1809-1892)은 큰아들 허은(1834-1867)이 자신의 뒤를 이을 것으로 기대하고, '미산'이란 호를 지어주고 정성껏 서화를 가르쳤었다. 하지만 그가 요절하자 실의에 빠진 소치는 다른 자식들에게는 그림을 가르치지 않았다. 그러다가 우연히 넷째아들에게 그림재주가 있음을 알게되자, 소치는 '미산'이란 호를 그에게 다시 주고 그림을 가르쳤다. 그렇게 소치의 맥을 잇게 된 아들 미산(형과 구분하고자 小미산이라고도 하는)의 이름은 허형(1862-1938)이었다. 그는 일흔 넘게 살면서 많은 그림을 그렸고 제2회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도 했으며, 1928년에는 광주에서 개인전을 개최하기도 했다. 하지만 허형은 그 자신의 예술로써 평가받기보다 아들 허건(1908-1987)과 허림(191.. 2022. 12. 31.
이규보 선생, 까만 토끼 해를 謹賀하다 1. 백운거사 생전의 계묘년은 1183년, 그의 나이 열여섯이다. 한창 오세재, 임춘 같은 선배들 따라다니며 술 얻어마시던 무렵이다. 그러니 이 그림처럼 장년의 나이로 묘사한 건 좀 아니라고 할 지도 모르지만, 2023년 계묘년을 축하하는 의미로 받아들인다면 못 그릴 일도 아니지 않을까. 2. 술 마시고 흥이 일면 백운거사도 그림을 좀 그리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잘 그리지는 못했던지 속 시문이나 묘지명에서도 그림 솜씨 얘기 하나 없다. 그래서 족자 속 黑兎가 괴상한 건지도 모른다. 3. Cheers! 2022. 12. 30.
일호천금一壺千金 《갈관자鶡冠子》라는 책에 이르기를, 표주박은 먹을 수 없어 별 가치가 없어보이지만, 만약 배를 타고 가다가 풍랑을 만나 표류하게 될 때는 이것을 가지고 물 위에 뜰 수 있으므로 천금의 값이 나간다고 한다. 소지도인 강창원(1918~2019) 선생이 그 고사성어를 어느 날 종이에 옮겨 적었다. (2021. 12. 25) 2022. 12. 25.
호운湖雲 박주항朴疇恒, 일본 장군을 찬양하는 시를 적다 늘 머릿속에 넣어두고있는 주제 중 하나가 잘 알려지지 않은 근대 서화가 연구다. 그중에서도 난초로 당대에 제법 유명했던 수연壽硯 박일헌朴逸憲-호운 박주항 부자에 관해서는 꼭 논문을 써보겠다고 벼르고 자료를 모아보고 있다. 그러다가 우연히 이 글씨 한 폭을 만났다. 박주항이 벌연筏硯이라는 호를 쓰던 시절(1910~20년대?) 글씨인데, 어쩐지 고균古筠 김옥균金玉均 글씨가 떠오르는 서풍書風이다. (맨 뒤 첨부사진) 쓰기는 제법 능숙하게 써 내려갔는데 내용을 읽어보니 참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끔 한다.표범은 죽어 가죽을 남긴다는 말 어찌 우연이랴 豹死留皮豈偶然물이 하늘과 잇닿은 미나토가와에 자취가 남았구나 湊川遺蹟水連天인생은 유한하나 이름은 끝없으니 人生有限名無盡구스노키 공의 진실된 충성 만고에 전하리라 楠子.. 2022. 12. 25.
평안 평안 평안하다는 이하응, 진짜 그랬을까? 모 경매에 나온 흥선대원군 석파 이하응(1820-1898)의 간찰이다. 그런데 그 내용이 아주 재미있다. 누가 보낸 간찰에 답신으로 보낸 건데 별로 할 말이 없었는지, 진정 상대가 잘 지내기를 바란 것인지, 아니면 웃기려고 유머감각을 발휘한 것인지 언뜻 감이 잘 안 잡힌다. 혹 모르겠다, 지독한 현실의 벽 앞에서 반어법으로 평안을 운운했던 것일는지도... 아래 탈초 번역은 일단 임의로 해 보았는데, '호지무화초胡地無花草' 격으로 접미사는 붙이기 나름일 듯하다. 봄을 전송하니 평안하고, 여름이 되니 평안하오. 천지가 평안하니 인생이 평안하더구려. 나는 평안한데 그대는 평안하신지? 봉투가 평안하면 오는 것 모두가 평안할게요. 운운 운하에서 답하오 4월 6일 餞春平安 立夏平安 天地平安 人生平安 我平安 汝平安 .. 2022. 12. 12.
고려사가 증언하는 김부식 그 단면 『고려사高麗史』김부식 열전을 보면 이런 내용이 보인다. 송나라의 사신 노윤적路允迪이 왔을 때 김부식이 관반舘伴이 되었는데, 사신의 수행원 서긍徐兢이 그가 글을 잘 짓고 역사적 사실에 밝은 것을 보고 그 사람됨을 좋아하게 되었다. 『고려도경高麗圖經』을 저술하면서 김부식의 세가世家를 싣고 또 그 생김새를 그려 가지고 돌아가서 황제에게 보고했다. 황제가 사국司局에 명령을 내려 판에 새겨서 널리 전하게 하니, 이 때문에 김부식의 이름이 천하에 알려졌다. 뒤에 송나라에 사신으로 가서는 가는 곳마다 극진한 예우를 받았다. 요즘 식으로 얘기하면 이런 것 아닐까? 어떤 사람이 영길리국永吉利國에 갔는데, 그 국인國人이 어디서 왔느냐 물었다. 나는 한국에서 왔소라고 하니 對曰, ''Oh! 두 유 노우 소능민?"이라 하였다. 2022. 1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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