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노년의 연구1957 일본의 소위 율령국가 일본사에서 율령국가라는 이름으로 부르지만, 사실 이것은 일본사에서 부르는 이름이고 한국사나 중국사의 입장에서 보자면 율령국가는 중국식 왕권의 전통 왕조를 뜻하는 이름이다. "율령"국가라 하지만 율령이건 뭐건 법령 없이 어떻게 나라를 다스리겠는가? 율령국가에서 중요한 것은 율령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율령이 왕권하에서 집행되었다는 것이 중요하다. 이 시기에 일본의 왕도(수도)는 중국식 왕도의 체제를 그대로 받아 들여왔고, 소위 육국사라고 하지만 일본서기를 빼고 나면 나머지 5개의 역사서는 전부 중국식 실록의 체제다. 당대에 이미 정형화한 중국식 실록의 기록 방식을 그대로 수입해서 벤치마킹 한 것이 곧 일본 육국사의 다섯개 역사서라는 점이다. 따라서 일본사에서는 이를 육국사라고 부르지만, 한국사의 입장에서는.. 2023. 11. 24. 주나라 왕실 시호를 딴 발해왕 발해왕의 시호는 주나라 시호를 많이 땄다. 무왕, 문왕, 성왕, 강왕 등이 특히 그런데 이 네 왕은 서주 왕의 시호이기도 하며 순서도 거의 비슷하다 (문-무가 뒤집혀 있기는 하지만). 시조 대조영은 주나라의 고공단보쯤 되는 셈이다. 거처를 옮기니 백성들이 줄줄 따라 옮겼다는 것도 더 그렇다. 문왕의 손자 성왕은 그 시호를 보면 태공 망이 있어야 할 텐데, 성왕이 죽고 아마도 숙부인 강왕이 즉위한 것을 보면, 발해 강왕은 역할은 태공 망이자 종법상으로는 성왕의 뒤를 이은 강왕을 자임했나 보다. 조선 세조는 단종을 죽였기 때문에 태공 망 흉내는 내었어도 성왕-강왕과 같은 관계를 자임할 수 없었는데 강왕은 시호를 강왕이라 한 것을 보면 발해 성왕-강왕의 관계는 같은 조카 숙부의 계승이라도 좀 더 떳떳한 관계일.. 2023. 11. 21. 만주땅이 있었으면 달라졌을까 If 라는 말은 역사에서는 별 소용없다고들 하지만, 그래도 가끔은 그런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만주땅이 한국사에 있었다면 달라졌을까. 필자가 보기엔 만주땅은 한국사의 경로를 바꾸는데 별 차이가 없었을 것이라 본다. 만주땅이 한국인에게 엄청난 의미를 갖게 된 것은 이 지역이 농경지로 바뀌기 시작한 이후부터다. 그 후에 비로소 만주땅을 경제적인 측면에서 보기 시작했다는 말이다. 고려와 조선이 북진정책을 한데도 그건 어디까지나 농사가 제대로 되는 선까지 북진을 말하는 것이지, 시베리아 벌판 바로 아래까지를 이야기 하는 것은 아니었다 할 것이다. 오히려 한국사에서 if가 통한다면, 이것이 있었다면 한국사는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라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은, 한반도의 남쪽이 일본의 큐슈 남부 지역, 중국의 양자강 북.. 2023. 11. 20. 사군육진 개척을 둘러싼 의문 사군육진은 위도가 우리 생각보다 훨씬 높다. 사군 육진은 홋카이도 남부지역과 위도가 같다. 세종 때 이 지역에 사민이 이루어진 것은 여러모로 의문스러운 점이 많다. 우선 도대체 뭘 먹고 살았을까? 일본사에서도 15세기에는 저 위도까지 올라가지를 못하고 있었다. 특히 두만강 연안의 사민정책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루어지고 유지되었는지, 도대체 뭘 먹고 살았는지 밝혀진 것이 너무 없다. 거듭 이야기 했지만 북방 사민은 그냥 올라가서 지킨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일본사에서 북해도까지 올라가 개척을 한 시대는 메이지유신 이후에야 본격화하는데 이 당시 북해도에 심을 적당한 종자가 없어 개척농민들은 크게 고생을 했다. 일본 동북지역은 19세기 초중반까지도 만성적인 흉년에 시달렸는데 결국 그 이유는 벼농사가 안정적이지.. 2023. 11. 20. 칠생보국에 대하여 미시마 유키오 하면 온라인에 뜨는 사진이다. 이 사람 인생과 그 문학은 솔직히 내 취향은 아니다. 각설하고-. 이 사람의 머리에 두른 띠에 보면 써 있는 글이 "칠생보국七生報國"이라는 것인데, 이를 "일곱번 다시 태어나도 나라에 보답한다"라고 번역하는 경우를 보는데, 정확한 번역은 나라에 보답하는게 아니라 덴노, 일본천황에게 보답한다가 맞다. 이 말은 일본 남북조시대에 남조의 무장으로 덴노편에 섰던 구스노키 마사시게楠木正成(?~1336)가 죽기전 한 말에서 유래한다. "일곱번 태어나도 덴노 편에서 서겠다" 결국 그 소리인데, 이 이야기가 메이지 이후 구스노키 마사시게가 무사도의 정화로 추앙받으면서 이 말이 각광을 받아, 이차대전 중에도 일본군이 애용하는 문구가 되었고, 위 사진에서 보듯이 미시마 유키오도.. 2023. 11. 19. 한국과 일본의 벼농사 벼농사는 일조량과 강수량, 평균 기온의 영향을 짙게 받는다. 한반도에서 일본 열도로의 벼농사는 검은 선처럼 전파되었을 것이다. 먼저 한반도에서 한번 남하하여 바다를 건너 일본큐슈로 들어간 후 동위도상으로 동진하다가 마지막에 북진하게 된다. 이 북진 단계가 되면 벼농사가 점점 일조량이 짧은 지역을 거슬러 올라가야 하므로 북진 속도가 점점 느려진다. 일본 열도에서 벼농사 문명을 상징하는 야마토 왕권이 동일본일대를 조기에 석권하지 못한 이유다. 위도가 점점 올라가므로 벼농사가 북상을 쉽게 못한 것이다. 빨간선이 대략 서기 8-10세기 연간 한국과 일본의 북쪽 국경선이다. 양쪽 모두 비슷한 위도에서 국경이 형성됐음을 알 수 있다. 왜? 벼농사 기술의 한계상 이 위로 북상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노란색은 대략 .. 2023. 11. 18. 이전 1 ··· 186 187 188 189 190 191 192 ··· 327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