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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현장1944

수령 800년이 되려면 이 정돈 되어야 김천 섬계서원 은행나무다. 천연기념물 300호 원주 반계리 은행나무가 수령 800년 뻥을 치는 모습을 보고는 기가 찬단다. 이짝은 양심적이라 가슴높이 둘레 12미터, 것도 한 그루가 그렇거니와 500년이라 적는다. 2021. 2. 11.
황금빛 너울대던 경주 황복사지 이번 가을 이후엔 아마 이런 풍광을 맛보기는 힘들리라. 전면이 온통 발굴장이기 때문이다. 경관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그 무엇이라는 말 여러 번 했다. 이리도 아름답게 보인다 해서 신라시대에도 황복사지가 이러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시대를 따라 옷을 바꿔 입을 뿐이다. (2017. 2. 11) *** 이 풍광은 아마 당분간은 볼 수 없다. 발굴현장이 정비되고 나면 어떤 모습으로 다시 태어날지 모르겠다. 2021. 2. 11.
한대漢代 황릉皇陵 전한前漢 소제昭帝 상관황후릉上官皇后陵인데 한대漢代 황릉皇陵 전형이 이렇다. 바닥은 방형이고 쐐기 모양으로 좁아진다. 피라미드 비슷한 양상이다. 이것이 재료가 돌로 바뀌면 바로 고구려 혹은 백제 방단 적석총이다. 이 자료는 한 경제릉 박물관 친구한테 2018년 받았다. 2021. 2. 11.
유채 흐드러진 경주 황복사지의 사진작가 남들 보기엔 참으로 다복한 사람이다. 하지만 업으로 삼은 사진이 언제나 행복은 주지만은 않을 것이다. 반복에서 비롯하는 무기력, 내가 이럴려고 사진쟁이 했나 하는 자괴감, 단짝 친구의 느닷없는 죽음, 그것들이 오케스트라 합창하듯 밀려올 때도 있을지도 모른다. 경주에 걸린 사진 절반 이상이 이 사람 작품이라는 거 후세엔 기억이나 할 사람 있을라나? 2014년 유채 흐드러진 어느 봄날 황복사지를 추억하노라. *** 사진작가 오세윤이다. 언제나 경주 가면 신세지는 고향 형이다. 황복사지는 이제 이런 광경은 없다. 발굴한다고 홀라당 깠기 때문이다. 2021. 2. 11.
김유신이 선물한 주걱턱 길쭉이에 주걱턱이다. 신라문화유산조사단이 재매정 11호 건물지 동편에서 수습한 통일신라 인물토우 장식이다. 뒤편 절단된 지점을 보니 그릇류 손잡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준다. 이런 인물상 신라시대 다른 유물에서도 본 것으로 기억한다. 천전린가 반구댄가 아님 단석산인가 기마인물 신라토우서 봤다. 아리까리 (2017. 2. 10) *** 어디서 봤냐 했더니 내 책 표지인물이네 젠장 *** 경주 재매정은 김유신 종택이다. 2021. 2. 10.
위청 무덤에서 유철을 등지고 대장군 위청衛靑(?~BC 106) 무덤 정상에서 한漢 무제武帝 유철劉徹 능을 백댄서 삼아 박았다. 구릉 정상엔 누군가 다녀간 흔적 한 무더기를 남겼더라. 유철이 주도한 흉노 복수전은 전쟁 영웅의 탄생을 알렸다. 그 선두주자가 위청. 그런 그도 밀려나는 장강 물결처럼 뒷방 뇐네가 되었다. 권력은 점점 조카 곽거병霍去病(140~117 BC)에게로 옮아갔다. 위청 집 문전엔 파리가 날리더니 그렇게 죽었다. 하지만 곽거병의 권력도 그의 변변찮은 이복동생 곽광霍光(?~BC 68)의 그것에는 미칠 수 없었다. 유철이 죽자 상관걸上官桀(?~BC 80), 김일제金日磾(134~86 BC)와 더불어 어린 후사 소제昭帝를 보필하는 고명대신顧命大臣 셋 중 하나가 된 곽광은 소제 사후 유철의 서손인 창읍왕昌邑王 유하劉賀를 새로.. 2021. 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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