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2244 [막말인물전-11] 사이고 다카모리를 격파한 성바깥 사무라이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유신삼걸의 하나라던 사이고 다카모리西郷隆盛는정한론征韓論 파동 와중에 메이지 정부와 결별하고 고향으로 내려와 반란을 꾀하는데 이때 그를 따라 함꼐 반란으로 들고 일어난 이가 사쓰마번薩摩藩의 옛 사족들, 사쓰마번 성밑거리에 모여살던 사무라이들이었다. 앞서 사이고 다카모리 집안이 이 성밑거리에 모여살던 사무라이 중 거의 최하층이었음은 이미 말했거니와, 사쓰마번의 "사무라이"에는 이 성밑거리에 모여산 사무라이가 전부가 아니고, 성바깥의 시골 농촌마을에 살던 "향사鄕士"도 상당히 있었다. 이들은 사이고 다카모리 반란에 합류하지 않고, 메이지 정부군에 합류했다고 한다. 그리고 사쓰마 번 "향사"들이 사이고 다카모리의 정규무사와 맞서 싸우는데, 이들의 공격도 사이고의 패망에 크게 기여했다 한다.. 2024. 7. 22. [막말인물전-10] 동학"농민"전쟁이라는 분석의 난폭함 앞에서 필자는 동학운동이 메이지유신과 상응하는 움직임이라 했지만 물론 근세의 발전 정도에 있어 일본과 조선은 그 차이는 크지 않다해도 분명히 있었기 때문에 정확한 혁명의 방향성을 가지고 식자층에 의해 지도된 메이지유신과 "농민전쟁"이라는 애매모호하기 짝이 없는 정의를 달고 기술된 동학운동을그대로 비교할 수 있을 것인가 생각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점에서 우리가 먼저 지적해야 할 부분은동학"농민"전쟁, 그리고 이 전쟁의 주체가 "농민"이라는 분석의 난폭함이다."농민전쟁"이라면 도대체 이것이 근대적 혁명인지 아닌지도 모호하고중세에 있었던 수많은 농민전쟁들과 어떻게 다른지도 애매하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일본에는 전국시대에 소위 말하는 잇키[一揆, いっき]가 있는데, 이것이 농민전쟁에 아주 가까운 개념이라.. 2024. 7. 22. [막말인물전-9] 메이지유신의 혁명성 메이지유신 하면 우리나라에서는 일본제국주의의 시작으로 보거나 그게 아니면 사무라이들이 덴노를 옹립하여 이룩한 국수주의 혁명 정도로 보는 것 같지만 물론 미국혁명이나 프랑스혁명 등에 비하면 메이지유신은 그 안에 후진성은 분명히 있지만 확실한 근대적 혁명이라 할 수 있다. 이 메이지유신과 비교해야 하는 것은 한국의 동학운동인데 이 동학운동 안에 들어가 활동한 많은 사람의 사회경제적 기반이 메이지유신의 주체가 되었던 사람들과 겹친다고 보기 때문이다. 메이지유신 혁명기에는 주목할 만한 사건이 두 개가 있었는데, 하나는 이른바 기병대다. 사사건건 덴노를 옹립하여 막부와 맞서던 조슈長州를 응징하기 위해 막부는 결국 조슈를 쳐들어갔는데 이때 정예 무사로 이루어진 막부군을 격파한 것이 바로 농민과 하급무사로 이루어진 .. 2024. 7. 22. [막말인물전-8] 향사鄕士와 잔반殘班 일본에는 향사鄕士라는 존재가 있다. 이 향사는 정의가 조금 까다로운데 사무라이가 성을 쓰고 칼을 찰 수 있는 권리를 부여 받는 것이라고 할 때 영주가 사는 성밑거리(조카마치城下町)에 조영된 사무라이 구역에 살지 않고 사무라이가 맞기는 맞는데 농사를 지으며 살거나 농사를 짓는 사람들 중에 돈으로 사무라이를 사서 성을 쓰고 칼을 차면 이걸 대개 향사라고 부른다. 이 향사계급이 일본의 메이지유신-막말기에 가장 동요가 심했던 계층의 하나인데 막말에 칼들고 설치면서 사람 베기에 혈안이 되었던 소위 "지사"들은 대부분 각 번의 하급무사 둘째 아들 셋째아들들이거나 아니면 향사 자식들이라고 보면 틀림없다. 이들은 사실 제대로 된 사무라이들-. 번이나 막부의 녹봉으로 충분히 먹고 살던 고급무사들이 볼 때는 사무라이도 아.. 2024. 7. 22. [막말인물전-7] 오쿠보 도시미치 소위 말하는 유신 삼걸 중 가장 오래 산 이가 오쿠보 도시미치[大久保利通, 1830~1878)다. 기도 다카요시는 메이지 유신 후 오래 못살았고, 사이고 다카모리도 서남전쟁에서 패배하여 죽었기 때문에 유신삼걸 중 그래도 가장 오래 살아남은 거물급이 바로 오쿠보 도시미치다. 오쿠보 도시미치도 사쓰마 번 어소성여御小姓与 출신으로, 사이고와 마찬가지로 사쓰마 번사의 가장 밑바닥에 해당한다. 사이고와는 출신계급도 같고 성장도 같이하여 서로 매우 친했다고 한다. 하지만 정한론征韓論 국면에서 사이고와 결별하고 서남전쟁에서는 정부군과 사쓰마군으로 완전히 갈려 결국 사이고의 죽음으로 끝났다. 오쿠보 도시미치는 다른 유신 거물들 보다는 오래 살았지만 1878년 암살당했을 때 나이 48세였다. *** previous ar.. 2024. 7. 21. [막말인물전-6] 사이고 다카모리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일본에서 유신 삼걸 하면 기도 다카요시木戸孝允, 오쿠보 도시미치大久保利通, 그리고 사이고 다카모리西郷隆盛[1828~1877]다. 이 중 사이고 다카모리는 일본에서 무사도의 상징처럼 떠 받드는 경우를 본다. 인터넷에 보면 사이고 다카모리 집안에 대해 잡다하게 적어놨는데 西郷氏の家格は御小姓与であり、下から2番目の身分である下級藩士であった。라고 하여 사쓰마薩摩藩 번 무사 신분 중 아래에서 두 번째 계급-. 어소성여御小姓与라고 되어 있다. 이 계급이 어떠냐 하면, 薩摩藩の家臣団の家格は正徳元年までに整備され、御一門(4家、私領主)、一所持(21家 私領主)、一所持格(約20家)、寄合、寄合並(寄合、寄合並をあわせ約60家。「三州御治世要覧」ではこの家格を「家老与」と呼んでいる。以上が上士層で家老を出すことができる.. 2024. 7. 21. 이전 1 ··· 98 99 100 101 102 103 104 ··· 374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