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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2393

미국 관광객을 구별하는 법 이건 사실 조금만 외국을 다녀보면 금방 알 수 있는 일이라 요즘 같이 몰려 나가는 시대에 쓸 필요가 있을까 싶지만 주말이라 여흥 삼아 간단히 적어 본다. 그리스나 이탈리아 등 유럽 유적지를 가 보면 미국 관광객들이 바글바글한데 패권국인데다가 지금 비교할 수도 없이 잘 사니 당연한 일이겠다. 미국관광객의 특징이 있다. 물론 예외는 있지만. 1. 뚱뚱하다 2. 상의는 티셔츠를 걸친다 3. 야구 모자를 쓴 경우가 있다 4. 반바지 5. 가족이 함께 몰려다닌다 6. 많이 먹는다 7. 신발은 구두는 절대로 안 신는다. 조리 질질 끌고 다니면 백프로 미국인. 우리나라도 한때 등산복 패션, 해서 어디나 똑같은 등산복으로 몰려다녀서 이야기가 된 적이 있는데 사실 미국도 못지 않다. 티셔츠 반바지 야구모자에 뚱뚱한 사람.. 2024. 10. 27.
젊었을 때 세상을 누빈 것만큼 성공한다 다윈은 나이 21세 때 비글호를 타고 연구 여행을 했다. 그리고 5년 동안 세계일주를 하며 다양한 생물 종을 접했다. 이 여행이 있었기에 다윈이 있고 종의 기원이 있는 것이다. 서구 학자들의 연구가 스케일이 다른 것은 바로 이렇게 세계를 시야에 넣고 연구를 하며 그만큼 세계를 이해하는 데 시간을 투자하고 있기 때문이다. 젊었을 때 세계를 이해하는 것 만큼 학자로서 성공한다. 우리 세대 열심히 살았던 분들은 아마 우리가 20대 때 지금처럼만 나라 밖을 이해할 수 있었어도 지금보다 훨씬 폭넓은 시야로 더 나은 성과를 낼 수 있었을 것이라는 데 동의할 것이다. 젊었을 때는 무조건 나가야 한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이라거나 우리것이 좋은 것이라거나, 한국 문화를 아는 만큼 더 보인다 등등의 이야기는 세상을.. 2024. 10. 25.
조선시대 셜록 홈즈의 현실 조선시대 살인사건 조사가 무원록이라는 책에 기반하여 매우 합리적 해결을 독려했다는 점이 알려지면서 이에 영향을 받은 극이나 영화들이 꽤 인기를 끌었다. 이런 영화에서는 대개 매우 합리적 추리를 하는 조선의 선비가 셜록 홈즈같은 솜씨로 사건을 해결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소설이나 영화는 과연 어느 정도로 사실에 접근한 것일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조선시대 사망사건 조사는 검험관 임의로 판결을 내릴 수 있을 정도로 허술한 것은 아니었음은 분명하다.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증언과 검시 결과, 무원록의 기술 세 가지가 모두 하나의 결론을 가리켜야 사건이 종결되었기 때문에 상당히 치밀한 논리 전개로 살인사건이 규명된 경우도 드물긴 하지만 있다. 살인을 엄폐하려 한 시도를 검험관이 뒤집어 진범을 잡는 경우도 있다... 2024. 10. 24.
틀림없는 범인도 범인이라 하지 못하는 앞에서 필자는 조선시대 의문사 사건을 종결하는 데는 취조 결과 (혹은 증언) 검시 결과, 그리고 무원록에 기록된 관련 사항 이 셋이 일치해야 비로소 끝난다고 했다. 대개 두 번을 다른 관리가 검시해서 의견이 동일하면 그대로 사건이 종결되었는데 이때 두 번의 검시가 서로 의견이 같다고 하더라도 그것으로 끝은 아니었고, 검시 때 관련자 증언하고 검시 결과가 안맞거나 무원록에 기록된 관련 사항하고 안 맞으면 상부에서 초검과 재검을 물려 버리고 삼검을 다시 지시했다. 이때 삼검이 초검과 재검하고 결론이 다르면 한 번 더 검시를 지시하니 총 네 번의 검시를 서로 다른 관리 (대개 군수) 주재 하에 하게 되는 것이다. 필자가 최근에 읽은 사건은 아주 재미있는데 어떤 양반이 왠 불한당 둘을 만나 맞아 죽었다는 고발이.. 2024. 10. 24.
바보처럼 보이는 그 짓에도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앞에서 조선시대 재판에서 사람을 패는 이야기를 했다. 조선시대 재판에 대한 기록은 구한말 외국인의 기행문에 제법 나온다. 뭐 평이 대개는 안 좋다. 왜 저렇게 패냐. 야만적이다. 대략 그런 이유들이다. 그 기행문을 보면 구한말 관리들은 악귀다. 이런 선입견을 장착하고 구한말 관리들 보고서를 보면 정말 적응이 안 될 지경이다. 재판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당연히 사람을 패고 고문을 했겠지만 문제는 보고서에 기술된 내용에서 범인을 결정하는 과정이 지나치게 정상적이라 처음 보면 적응이 안 될 지경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조선시대 보고서를 보다 보면, 아 이 사람들이 재판을 이렇게 했구나, 이 타이밍에서 고문을 했겠구나, 필이 딱 오는 장면이 나온다. 필자는 조선시대 관리들이 남긴 재판 기록이 백프로 사실이라고 생각.. 2024. 10. 24.
사또 재판의 시말 (2) 언제 주리를 트는가? 대개 우리는 조선시대 재판에는 고문이 일상적이었다 생각한다. 물론 이것이 꼭 틀리다고는 할 수는 없다. 예를 들어 초검과 재검까지는 딱 잡아 떼던 피의자가 삼검 때 갑자기 다 자백한 걸로 조선시대 보고서에 나오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는 필자가 보기엔 잡아다 팬 것이다. 우리는 조선시대 재판관은 재판 중에 패는데 전혀 부담이 없었을 것 같지만, 조선시대 검험을 담당한 관리가 반드시 숙지해야 하는 책이 바로 "무원록無寃錄"이다. 원통함이 없도록 하자는게 책 제목인데 일단 잡아 놓고 패는 것-. 물론 그 시대에 그리 할 수는 있겠지만 조선시대도 역시 내가 사람을 패서 사건을 해결했다고 사또가 자랑스레 말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는 말이다. 조선시대에 관련자를 취조하는 상황을 보면, 대개 사또가 사건을 정.. 2024. 10.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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