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1815 [보유] DNA phenotyping (1) 자이리톨 껌 김단장께서 쓰신 바 자작나무 타르에서 분리한 고대 DNA로 여러 가지 성과를 이루었다는 뉴스가 나온 모양이다. 여기에 대해 필자가 아는 이야기를 조금 보완할까 한다. 신문기사에는 자작나무 타르라고 되어있지만 사실 이건 요즘도 껌으로 씹고 있는 자일리톨 원료가 되는 자작나무 껍데기라 단순히 놀이 삼아 씹는 껌이 아니라 치아 건강에도 도움이 되는 자일리톨 껌씹기를 선사시대에 이미 했다 해서 이 껌은 상당히 오래전부터 화제가 된 껌이었다. 발견된 것도 필자가 알기로 저 껌 하나가 아닌 걸로 아는데 자세한 것은 찾아보지 못하겠다. 아무튼 저 껌에서 껌씹던 이의 DNA를 분리했단 뉴스인데,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다. 최근에는 고인골 치아에 남아 있는 치석. 이걸 가지고 DNA 분석을 많이 하는데. 이 치석을 DNA.. 2025. 4. 13. 횡산대관横山大観이 병풍에 담은 밤사쿠라[夜桜] 아마도 근대 일본 미술에서 사쿠라를 그린 그림 중 가장 유명한 것 아닌가 싶다. 요코야마 다이칸의 "밤사쿠라" 횡산대관横山大観은 よこやま たいかん이라 읽거니와 경응慶応 4년, 1868년에 출생해 소화昭和 33년, 1958년에 沒한 일본 미술가 화가로 본명을 횡산수려横山秀麿, 요코하마 히데마루よこやま ひでまろ라 하거니와 구성旧姓은 사카이 주정酒井, 술도가였다. 상륙국常陸国 수호水戸출신이라, 미토학파 영향 크게 받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근대 일본화단 거장으로 몽룡체朦朧体, 모로타이もうろうたい라 일컫는다.선묘線描를 抑한 独特한 몰선묘법没線描法을 확립했다 하는데 무슨 말임? 암튼 일본 전통화단 거물인갑다. 저 밤사쿠라 보면 일본답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2025. 4. 8. 일본서기에 비친 가야 옆나라 사서의 예를 들어 미안하지만 우리 기록이 소략하니 어쩔 수가 없다. 일본서기에는 가야 관련 기사가 많다. 이 기사들을 보면 느끼는 것은, 가야 제국들이 과연 신라나 백제 같은 시스템을 원하고 있었는가 하는 생각이 많이 든다. 우리는 그리스의 경우에는 왜 폴리스들이 망할 때까지 마케도니아 같은 대왕국을 만들지 않고, 아테네가 전성기였던 그 순간까지도 동맹체제에 기반한 "아테네제국"을 꾸려갔는가에 대한 해답이 있는가. 이는 주변에 이미 강력한 전제국가가 존재하여 벤치마킹을 하려면 얼마든지 할 수 있었음에도 그리스 폴리스들은 그 길을 택하지 않은 것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가야 소국들은 신라 백제 같은 시스템을 그리로 가고자 했는데 못간 것인가 아니면, 그리로 갈 생각이 애초에 없었던 것인가. 일본서기.. 2025. 4. 5. 막말의 사무라이 칼과 칼집 근간 김단장께서 올리는 칼과 칼집의 글에 공감하는 바 많아 글을 조금 같이 올려둔다. 후쿠자와 유키치가 에도시대 말, 즉 막말 시기 칼차는 관습에 대해 쓴 이야기가 있다.원문에서 발췌하여 정리해서 써 보면 이렇다. 칼은 본래 일신을 보호하기 위해 차는 것인데오랜기간 전쟁이 없었기 때문에 점차 칼날은 완전히 없어졌지만 여전히 겉모양만은 꾸미게 된다. 검술도 모르는 주제에 조상 대대로 전해져 오는 습관이라거나 무사의 심벌이라 하면서 칼을 차고 다닌다. 검술을 알지도 못하면서 칼을 차는 자가 열에 여덟아홉이다. 칼로 먹고 산 사무라이들도 막말이 되면 칼을 쓰지는 않아도 칼집을 꾸미고 다녔다. 고도로 아름다운 세공품 칼과 칼집은 전부 에도시대 것이다. 앞에서도 썼지만 에도시대 사무라이는 칼을 함부로 뽑지 않았.. 2025. 3. 30. 이해는 학문의 목적이 아니다 이건 학부 학생의 교육 목표에 해당하는 것이고학문을 하는 사람들은 크리에이션, 창조가 되어야 한다. 조선후기-. 우리가 말하는 많은 그 당시 성리학 논쟁들은이해가 목표였다. 이미 북송 때 다 끝낸 논쟁이 책을 읽다 보니 이해가 안 가그 이야기를 파고들은 논쟁이 대부분이며 철학적 측면에서는 창조된 내용은 없다 단언할 수 있다. 필자는 도대체 조선후기 수백년간 북송학자들의 논쟁의 그림자만 쫒아다닌 일이 이해가 안 가중국철학사의 송대 유학자의 주장을 끝까지 파고든 적이 있는데, 조선이 망할 때까지 이 그림자를 종내 못 벗어났다. 퇴계와 고봉의 논쟁을 대단한 철학논쟁인 듯 미화하지만이런 이야기는 절대로 중국인들에게는 않는 것이 좋겠다. 퇴계와 고봉은 정확히는 북송대 학자들의 이야기가 서로 상충되는 부분이 있어그.. 2025. 3. 27. 왕조실록에는 왜 산불이야기가 별로 없을까 요즘 산불이 너무 커서 많은 분들 상심이 크실 줄 안다. 빨리 진화되어 더 이상 피해가 없었으면 좋겠다. 각설하고, 왕조실록에서 산불을 찾아보면 생각보다 내용이 많지 않다. 산불이 많았는데 별일 아니라 생각해서 채록이 안 되었을 수도 있고, 실제로 많지 않았을 수도 있을 텐데, 어느 쪽일까? 둘 다 가능성이 있지만 필자가 보기엔 후자의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필자가 어린 시절에도 산불은 있었다. 그때 온동네 어른들과 애들까지 모두 산으로 올라가 소나무 가지 꺾어들고 불을 두드려 껐는데지금 생각해 보면 그 산불이 요즘처럼 맹렬하지 않았던 것이일단 산에 나무가 별로 없어 무서울 정도로 타오를 수가 없었다는 생각이다. 조선시대이미 산에 나무가 없어 산불이 나봐야 지금처럼 맹렬하지 않았던 것 아닐까? 조선시대에.. 2025. 3. 24. 이전 1 ··· 8 9 10 11 12 13 14 ··· 303 다음 반응형